그래도 ‘진실규명’은 계속돼야 한다–한일 민간단체 共助 통해

그래도 ‘진실규명’은 계속돼야 한다–한일 민간단체 共助 통해

  • 기자명 김성 소장
  • 입력 2023.03.1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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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우리나라 외무부 장관이 일본제국주의 시절 강제동원되었던 피해 유족들에게 우리 돈으로 제3자 변제방식으로 배상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로 나아가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자 국내 여론이 들끓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 피해 당사자와 유족 및 관련 단체들은 ‘사죄와 배상 요구를 포기한 것 아니냐’며 정부 발표에 반대하면서 시위에 들어갔다. 여론조사도 ‘부정적’이 앞서있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과 경제계, 미국 대통령·EU 사무총장 등은 찬성하며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기대했다.

과거에도 한일관계 변화는 항상 정치적 격변을 불러왔다. 정부수립 초기인 1949년 이승만 정권이 반민특위를 강제해산하면서 친일파 정리에 실패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상 때에도 박정희 정권이 조문을 꼼꼼히 살피지 않고 서둘러 조약을 체결해 ‘모호한 표현’ 때문에 오늘날까지 문제가 되고 있다. 또 시민·학생 시위가 거세져 계엄령과 위수령·휴교령이 내려졌었다. 2015년에는 한일정부가 일방적으로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발표하여 국민 반발이 커졌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다른 범죄까지 보태져 탄핵되었다. 16~17일 있을 한일정상회담에서 일본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국민의 여론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강제동원 피해, 우리 돈으로 배상” … 일본 시민단체 “식민지 반성 시들” 걱정

정부 발표에 크게 실망한 사람들 중에는 그동안 일본에서 한국인 피해자들의 강제동원과 위안부 소송 등을 도와왔던 일본의 시민단체들이 있다. 그들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정책이 가져온 반인륜적 행태를 고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현장에서 한국인들과 함께 행동했다. 관동대지진 때의 한국인 학살사건 규명운동, 강제동원 피해규명과 보상운동, 여러 제철소와 대본영·철도·도로 건설 현장의 유골발굴 운동, 추모비 설립운동, 재판 지원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벌여왔다. 일본정부가 가지고 있는 명단을 공개하도록 압력을 넣어 성사시키기도 했고, 나가노현에서 3,000명의 한국인 농경대가 혹사당했다는 사실이나, 마쓰모도 대본영이 한국인 노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히로시마에서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인터뷰했던 한 일본인은 “전쟁 중에는 일본인이라고 노동을 강요했고, 패전 후에는 손바닥 뒤집듯이 ‘제3국인이니까 치료할 수 없다’라며 치료에서 배제되었다는 증언을 듣고 식민지 지배의 가혹함과 차별에 화가 났다”고 했다. 일제의 강제동원과 관련된 일본 시민단체의 활동은 2013년 ‘일본 시민의 역사반성 운동 –평화적인 한·일 관계를 위한 제언-’(김광열 공저, 선인)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도 출간되기도 했다.

이들은 이번 한국정부의 발표로 자칫 일본정부가 사죄와 배상을 외면하고, 일본 내에서의 식민지시대 반성도 시들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일본 시민단체들, 피해규명과 소송 지원해 와 … 자료 공개 등에 많은 ‘성과’

설령 중국의 세력 확장 등을 저지하기 위해 한-미-일의 안보결속이 절대 필요해 이번에 대폭 양보하는 결단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은 ‘진실’이다. 국가간에 정치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든 우리는 ‘진실’을 향한 전진은 멈출 수 없다.

지난 6일 우리 정부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해 대폭 양보한 내용을 발표한 바로 그날에도 일본의 장관은 “강제동원은 없다”는 망언을 했고, 일부 일본 언론은 “일본이 이번 한국의 안(案)을 받아들이면 한국 대법원 판결을 인정하는 것이 되므로 이를 취소해야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펴기까지 했다. 이것을 사죄하고 반성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을까? 일본정부에 ‘진정성’이라는 게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이런 일본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정부차원이 아닌 민간차원에서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 세 가지를 제안해 본다.

첫째, 식민지 시대에 한국인이 피해를 입었던 수많은 사건들을 각각 분리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진상조사를 요구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일본 교과서 왜곡이나 일본정부 관리들의 망언에 대해서 뭉뚱그려 항의하거나 시위하는 수준에 머물러 왔으나 앞으로는 관동대지진 때 한국인 학살사건의 전말, 광산 노동이나 대본영·철도·도로·댐 공사 중 발생한 사망사고, 야스쿠니신사에 동의없이 합사된 유골의 반환, 우키시마호 침몰사고 등등에 대해 우리 민간인들이 따로따로 문제를 제기하며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개별 사건별로 진상규명 요구를, 일본 민간인들과 연대 강화도

둘째, 일본 시민단체와 보다 강력한 연대를 하여야 한다. 일본 시민단체는 오랜 기간동안 강제동원 한국인의 조사발굴사업, 재판 등을 지원하면서 많은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또 공개하지 않고 있는 일본정부 공탁자료 등 여러 소장 자료를 공개하도록 유도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혹자는 일부 시민단체 회원들이 우리와 이념이 다르므로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지만 이들이 식민지 탄압을 반성하고 세계평화에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제의 탄압에 대해 조사 및 규명작업에는 공동노력을 해야 할 필요도 있다. 진실을 규명한다는 차원에서 한국정부의 손이 미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일본 시민단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셋째, 일본 국민들이 지난날 제국주의 시절에 자행한 자기 조상들의 반인륜적인 행위를 끊임없이 반성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일본정부는 초·중·고교 교과서에서 ‘침략’을 ‘진출’로 바꿔 역사를 왜곡하고, ‘일본군 위안부’나 ‘난징학살’ 같은 반인륜적 사건들을 지우기에 몰두하고 있다. 독일과 전혀 달랐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세대는 일본의 지난 반인류적 역사에 대해서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 따라서 우리라도 일본 국민에게 진실된 역사 알리기 운동을 벌여야 한다. 우리나라가 진상규명 과정에서 출판한 보고서와 책자들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소개함으로써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자기 나라의 과거도 알도록 해야 한다. 홋카이도에서 강제동원 피해 규명운동을 했던 한 일본인은 1945년에 태어나 홋카이도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기까지 18년간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배운 적이 없다고 했다. 결국 1951년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으로 일본의 주권이 회복되자마자 학생들에게 역사를 왜곡하는 교육을 시켜왔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렇게 하여 반성과 사죄하는 마음, 대등한 동반자로서의 자세를 가져야 올바른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가 정립될 것이다.

왜곡된 日 역사 교과서 … 우리가 일본 국민에게 ‘진실’ 알려야

넷째. 한국 대법원이 2012년과 2018년에 내린 판결을 존중하고 유지해야 한다. 2012년 대법원은 한국 법원의 1, 2심 판결이 잘못됐다며, 한일협정은 한국정부의 자국민에 관한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한 것이므로 피해자 개인의 재산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2018년의 판결은 한국 내에 있는 피고(일본 전범기업)의 자산을 처분하여 원고에게 지급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정부가 제3자 변제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대법원 판결과 다르긴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취소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일본도 위헌행위를 한 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헌법 제29조 제1항은 ‘재산권은 이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청구권을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며 헌법의 하위법인 ‘조치법’(1965년 제정)을 근거로 뭉개버렸으니 위헌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국인은 ‘일본국 신민’ 자격으로 강제동원되었다가 피해를 입었다. 이를 입증할 한국인의 모든 명부·통장기록과 유골이 일본에 남아있다. 1952년 당시의 여건으로 보면, 일본정부가 전쟁사상자와 유족에게 50조 엔을 들여 배상할 때 ‘일본국 신민’인 한국인에게도 당연히 배상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를 제외했다. 이게 당연하단 말인가?

피와 땀 어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미불금과 유골, ‘유품’이므로 돌려받아야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조치가 자신의 ‘공약이자 결단’이라고 했다. 그러나 모든 과거사를 덮어버리자, 포기하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일본인 전범과 함께 묻혀있는 한국인의 유골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지않는가? 태평양 섬 곳곳에 방치되어 있는 십만이 넘는 한국인의 유골도 수습해야 한다. 일본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는 더 많은 연금 명부와 공탁금 명부, 우편저금 명부 등 공개되지 않은 서류 등을 밝히는 것도 ‘진실’을 정리하는 작업이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미불금’도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이승에서 목숨을 걸고 일했던 것을 증명해주는 ‘유품’이기 때문에 돌려받아야 한다. 그래서 한일 시민단체가 공조하여 ‘진실’을 추적해야 할 일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김 성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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