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스포츠한국
HOME 칼럼 오세영 칼럼
정치가 무엇이길래
  • 오세영 교수 machmj55@naver.com
  • 승인 2022.10.27 09:26
  • 댓글 0

인문학이란 한마디로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모든 인문학자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화두를 놓고 이를 해명하기 위해 전 생애의 노력을 기울인다. 인간이 무엇인지를 알고 난 후에야 인간다운 삶을 지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물론 고래로부터 보편적인 몇 개의 해답들이 있어왔다. 이성적인 동물,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 지적 호기심을 갖는 동물, 혹은 유희를 즐길 줄 아는 동물 등……

필자는 이제 이중에서도 세상에 널리 알려진 명제 하나를 살펴보고자 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인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저서 ‘정치학’에서 언명했다는 “인간이란 정치적 동물이다”라는 바로 그 정의이다.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 했으니 —이 말대로라면— 인간은 당연히 모두 정치를 해야만 할 것 같다. 따라서 이 세상에는, 그 어떤 민족보다도 열열히 정치를 숭상하고, 정치를 큰 명예로 여겨 지자체의원, 군수, 시장, 교육감, 도지사, 국회의원, 대통령 등 정치 권력을 손에 잡는 일로 일생을 보내고자 하는 우리 한국인들만큼 그의 가르침에 충실한 제자는 아마 없을 듯하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나라에서는 학자도, 예술가도, 노동자도, 군인도, 율사도, 기업가도, 농민도 그 누구나 웬만큼 그 직에서 일정 부분 성취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면 그 즉시 모두가 정치행이다. 그래서 정치권력으로 가는 기차역 플랫폼은 어디를 가나 항상 만원으로 붐비고, 그 어떤 때나 일대 아수라장을 이루기 마련이다. 본업이 학자인 교수도 교수로 만족하지 않고 장관이나, 학장이나 총장이 되려하고 총장이 되면 또 국무총리나 대통령이 되려 한다. 그뿐인가. 예술과 문학이란 정치의 도구라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자, 정치 권력에 빌붙어 곡학아세하는 자, 건듯하면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를 들고 나와 정치 행동의 중심에 서려고 하는 자를 유명인으로 받들어 모시는 우리 문화계의 풍토 역시 이와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이 ‘정치적’이라는 용어는 결코 그런 뜻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이 언명에 이어 곧 ‘정치’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뜻하는 말이라고 분명히 토를 달아놓았기 때문이다. 즉 그가 말하는 정치란 우리가 통속적으로 이해하는 그런 좁은 뜻의 정치가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단지 인간과 인간이 서로 무리(공동체)를 짓고 살기 위해 맺는 어떤 관계를 지칭하는 말일 뿐이다. 따라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할 때의 그 정치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그 직으로서 행하는 정치만이 아니라— 가령 농민이 농사를 잘 지어 이웃들의 식량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일도, 교사가 자신의 제자들을 훌륭한 인재로 키워 인간 삶을 향상시키는 일도, 노동자가 흠이 없는 제품을 성실하게 제작해서 공동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일도, 예술가가 인간을 정신적으로 감화시켜 인간다운 인간으로 이끌어 주는 일도 다 정치라는 의미로서의 ‘정치’다. 이 모두 인간과 인간이 서로 관계를 맺고 협업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 그러니까 이 모두 ‘인간’을 위해 서로 협력해서 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정치적 동물이라’는 명제를 ‘정치적 동물’이라 하지 않고 굳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의역해서 사용하는 이유이다.

그렇다.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옛 동양에서도 일찍이 사람이란 서로 어떤 ‘사이(관계)’를 맺는, 혹은 맺을 수 밖에 없는 존재 즉 ‘人間’이라 정의했고 사람을 뜻하는 한자어 ‘人'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아 양자(두 사람)가 서로 등을 기대고 의지해야만 지상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상형문자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다시 모두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가. 이제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았음으로 답은 분명해졌다. 그것은 한마디로 바람직한 공동체를 영위하는 것, 달리 말해 넓은 의미의 정치가 이상화 하는 세계의 실현에 기여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엉뚱하게도 그와 다른 길을 가고 있지 않은가. 모두 좁은 의미의 정치 즉 권력과 재력과 명예와 쾌락을 추구하는 삶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는 지난 대선 기간에 충분히 실감한 바 있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는 아무런 부끄러움이나 비판적 성찰 없이, 공동체의 윤리가 무너져도, 인간다운 삶이 훼손되어도, 무작정 자기 진영의 행위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옹호했던 것을…… 그래서 세상의 학문이라는 것도 인간이 바로 서는 길을 가르치는 인문학 같은 학문은 천시하거나 추방해버리고 모두 실제 누릴 수 있는 물질적 이득과 관련된 법학이나 경제학이나 정치학 따위를 숭상하고 있지 않는가,

기왕에 필자는 앞서 한자어 ‘人’과 ‘人間’이란 말을 인용했으니 이제 이 말의 뜻을 좀 더 살펴 결론을 맺어볼까 한다. 일찍이 공자는 ‘人’을 ‘仁’이라 했다. 그런데 ‘설문해자(說文解字)’의 풀이로 보면 ‘仁’은 사람(人)과 둘(二)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합성문자이니 공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는 이같은 이상적 인간관계란 무엇보다 ‘어짊’을 그 본질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역시 그렇게 단순한 해석으로 그칠 일만은 아니다. 그래서 주자는 이를 ‘인간의 인간 다움’ 혹은 ‘이로써 인간이 인간이 되는 이치’라고 주석했다 하지 않는가. 그러니 우리 모두 한번 깊이 성찰해보야 할 일이다. 최근 그 바닥을 모르게 타락해 가고 있는 이 좁은 의미의 청치로 인해 이미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버린 이 시대 우리의 병든 사회에서 과연 우리 어떻게 하면 인간다운 인간의 사회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인지를……

오세영(시인·서울대 명예교수)

<저작권자 © 데일리스포츠한국,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세영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