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1.07.15 10:34
  • 수정 2021.08.1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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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세대교체를 내걸고 화려하게 등장한 정치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취임 한달여만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여성가족부와 통일부 폐지를 주장하면서 당 안팎의 비난에 직면했다. 이 대표는 ‘작은 정부론’ 취지라고 해명했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에 나섰다. 민주당은 ‘일베식 생각’ ‘MB 아바타’ ‘박근혜 키즈’ 등을 거론하며 공세수위를 높였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준석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공정’을 앞세운 30대 청년 대표에게 걸었던 기대가 거품에 불과했던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커진다.  
이 대표의 가장 커다란 취약점은 말 바꾸기와 합의 번복이다. 자신의 소신대로 발언한 뒤 보수세력의 반대가 나오면 쉽게 말을 바꿔 버린다. 여당인 민주당 대표와의 합의도 당내 인사들의 반대로 번복한다. 자신의 소신대로 밀어 붙이는 추진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합의 이전에 당내에서 의견을 수렴하여 당론을 모으는 과정도 생략하는 성급함도 보인다. 그럴듯한 변명만 남을 뿐이다. 당 대표 취임직후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물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한 통합적 리더십은 실종된 것은 아닌지.  
이 대표의 ‘우왕좌왕 행보’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태도에서 시작됐다. 국민동의청원으로 국회 상임위에 상정된 차별금지법을 놓고 그는 “숙성된 논의가 있었다”며 제정취지에 동의하는 태도롤 보였다. 그러나 다음날 “사회적 합의가 충분치 않고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신중론으로 돌아섰다. 그는 ‘보수진영 내의 기독교적 관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 대표의 발언 직후 보수기독교계에서 “국민의힘은 이준석 개인의 정당인가”라는 비난마저 터져 나왔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비난여론이 이 대표의 후퇴를 이끌어낸 것이다.  
여야 대표의 합의를 번복한 태도는 정치도의에 어긋난다. 송영길 민주당대표와 이 대표는  만찬회동 이후 ‘재난지원금 전국민지급’ 합의를 발표했다. 그러나 100분도 지나지 않아 국민의힘 의원들의 비난이 거세지자 자신의 뜻은 ‘선 소상공인 등에 대한 지원강화, 후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검토’라고 밝혔다. 당내에서 윤희숙 의원은 “민주적 당 운영을 약속해놓고 당의 철학까지 마음대로 뒤집는 제왕이 되렵니까”라고 비판했다. 조해진 의원도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라면 큰 문제”라며 비판에 가세했다.
합의 당사자인 송 대표는 “합의 후 국민의힘 내부 반발이 큰 것 같다”며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은 이념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코로나19로 지친 민생을 돌보는 문제”라고 밝혔다. 특히 “대표가 결단했다면 일단 존중하고 내부적으로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보편적 일처리 방식”이라며 “국민의힘 의원들께서는 이준석 대표의 결단을 존중하고 뒷받침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의 설명과 달리 전날 합의내용이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이었음을 시사한 셈이다.
민주당은 합의번복을 집중 부각시켰다.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은 “전국민 재난지원금 합의를 100분만에 뒤집다니 국정이 장난이냐”고 힐난했다. 윤호중 원내대표도 “이준석 대표는 100분만에 말을 뒤집는 ‘100분 대표’가 되려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특히 합의번복은 “2030 청년세대와의 신의도 저버린 것”이라고 밝혔다. 재난지원금을 전국민 대상으로 확대한 것은 2030청년들과 신혼부부들을 지원대상에 포함시키기 위한 방안인데, 이를 거부한 것은 그들을 배신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여러 사안에 대해 이 대표의 ‘가벼운 언행’을 우려하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대표는 상하이밍 신임 주한중국대사의 예방을 받고 “한국과 중국은 대북문제 등 여러 관점에서 협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는 “민주주의를 짓밟은 중국의 잔인함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중국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제1야당 대표답지 않은 원색적 용어와 이중 행보인 셈이다.
이 대표의 뜬금없는 여성가족부와 통일부 폐지론은 국민의힘 안팎에서 비난받고 있다. 그는 보수진영이 내세우는 ‘작은 정부론’에 기반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반대의견이 쏟아졌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정부의 효율성 측면에서 없애야 할 첫번째가 여가부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조수진 최고위원도 ”문제의 원인은 제도가 아니라 운용에 있다“고 비판에 나섰다. 통일부 폐지 주장도 마찬가지이다. 권영세 의원은 “통일부가 할 일은 당장 통일을 이뤄내는 것이 아니라 분단을 극복하는 과정 중에서 남북간 교류협력을 담당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통일부 폐지론’이 자칫 ‘반통일 세력’으로 몰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민주당에서는 이 대표를 향한 난타가 이어졌다. 김영배 최고의원은 “여가부와 통일부 폐지 주장은 불필요하고 무책임한 논란을 빚고 있다”며 ‘박근혜 키즈’ ‘일베식 생각’ ‘MB 아바타’ 등을 거론하며 비판에 나섰다. 이인영 통일부장관은 “당론이라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통일부를 폐지하라는 부족한 역사의식과 사회인식에 대한 과시를 멈추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강병원 최고의원은 “이준석 대표의 어그로(시비걸기) 정치가 가관”이라며 “철학의 빈곤에서 기인한 여가부와 통일부 폐지론”이라고 단정지었다.
이 대표의 이러한 주장은 그의 저서 ‘공정한 경쟁’(2019년)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여성이나 청년, 약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제도는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모두가 자유로운 세상은 정글”이고, “정글의 법칙, 약육강식의 원리… 그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본다. 그는 젠더문제를 이슈화해 반페미니즘 정서를 자극하고 ‘이대남(20대 남자)’을 지지층으로 결집시키는 방안을 당선전략으로 내세웠고 성공했다. 여성할당제 폐지는 그의 대표적 주장이다. 여성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여가부 폐지의 근원이 됐다,
이 대표는 통일문제도 효율성 여부로 판단한다. 통일방안도 북한붕괴를 통한 흡수통일뿐이라는 맹목적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 북한을 재활용할 대상으로 여긴다거나 국가나 체제로 인정하지 않고 우리 체제에 편입시킬 생각이나 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책에서 “저는 통일의 방법이 체제 우위를 통한 흡수통일 외에 어떤 방법이 있을까 싶다”며 “조금 극단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통일 교육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인식이 통일부 폐지로 이어진 것이다. 
결국 이 대표는 이대남의 분노와 박탈감을 부추기는 정치를 한다는 지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대남의 주목도가 높은 여성차별과 통일문제를 의도적으로 내세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주장은 국민의 보편적 동의를 얻기는 어렵다. 정부조직 개편은 명확한 철학과 비전을 갖고 추진해야 할 주제이다. 공공영역에서 능력우선주의를 적용하는 것도 무리한 발상이다. ‘국대(국민의힘 대변인) 토론배틀’ 처럼 정부부처를 성적으로 존폐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준석 대표를 ‘젊은 트럼프’로 비유하는 사람도 많다. 거친 말과 비합리적 주장을 내세우는 트럼프와 세련된 말과 비합리적 주장을 배격하는 이준석은 스타일에서 다르다. 그러나 그들의 언행은 똑같다는 것이다. 이들은 ‘역차별’을 지적하며 ‘공정경쟁’을 주장한다. 미국의 저학력 백인 중하류층과 한국의 2030세대 청년층이 기성세대에 가진 불만을 이용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들은 소수인종과 이민자들 때문에 정당한 몫이 줄어들었다고 분노한다. 이준석을 지지하는 2030세대, 특히 이대남은 여성이나 약자 우대정책으로 공정경쟁이 무너졌다고 주장한다.
이 대표는 세대교체의 기치를 내걸고 새 정치를 세우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한 협치도 약속했다. 세련되고 합리적인 언행으로 정치판을 바꿀 것으로 기대했던 ‘혹시나’가 트럼프를 뺨치는 ‘우파 포퓰리즘’의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난 ‘역시나’로 바뀌고 있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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