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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언 칼럼> ‘백신 전쟁’… 민족주의에서 제국주의로
  • 김주언 논설주간 newmedia54@dailysportshankook.com
  • 승인 2021.04.2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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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정부는 모두 9900만명분(1억9200만회분)의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해 11월 집단면역에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집단면역 형성에 필요한 3600만명의 2.75배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그래도 백신정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치권과 언론은 백신수급 불안에 대한 압박을 풀지 않는다. 야권도 불신을 거두지 않았다. 한국을 비롯한 어느 나라도 ‘백신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백신이 남아도는 미국조차 백신을 외국에 나눠줄 수 없다고 버틴다. 바야흐로 ‘백신전쟁’이 점입가경에 들어선 모양새이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코로나19 재확산과 백신부족으로 아우성이다. 반면 백신을 개발생산해 공급이 넘쳐나는 미국은 백신의 풍요를 즐긴다. 미국은 4명중 1명꼴로 백신을 접종했으며 1차례 이상 백신을 맞은 사람도 인구의 40%에 달한다. 5월 중순이면 백신공급이 수요를 앞지를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미국은 트럼프정부 시절 백신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국방물자생산법을 발동했고 바이든정부도 계승했다. 이에 따라 미국 제약사들이 백신재료를 선점해 다른 제조국가의 백신생산에 차질이 빚어진다. 가난한 나라들은 수입마저 어려워 백신가뭄에 시달린다. 

워싱턴포스트는 “부국과 빈국, 일부 부국 간의 백신접근에 대한 격차를 두고 오랫동안 부글거렸던 논쟁이 끓어 넘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가 지도자나 글로벌 인사들이 소수국가에 백신이 집중되고 나머지 지역은 백신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을 규탄하고 나선 것이다. 나미비아와 케냐 등 아프리카 국가들은 ‘백신 아파르트헤이트(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라고 비판한다. 노벨상 수상자 등 글로벌 인사들은 미국의 정책변경과 백신의 지식재산권 보류를 요청하고 나섰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과학적으로 끔찍하다”고 지적했다.
영국 전 총리와 프랑스 전 대통령 등 정치인과 노벨상 수상자가 함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서한을 보냈다. 코로나19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백신관련 지적재산권 적용을 한시적으로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서한에는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 등 전직 정상 60명이상과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 등 100명 이상의 노벨상 수상자가 서명했다. 이들은 지적재산권 적용을 중단하면 백신제조 속도를 높여 빈곤국가에서 팬데믹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한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남아공과 인도의 제안을 지지할 것을 촉구했다. 남아공과 인도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관련 지적재산권 적용을 일시 중단할 것을 제안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접종할 때까지 바이러스의 새로운 돌연변이는 계속해서 생명을 앗아갈 것”이라며 “상호 연결된 세계경제를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했다. 현재 백신접종 속도로 최빈국들이 집단면역을 달성하려면 최소 2024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국경없는의사회도 미국과 EU 회원국 등 부유한 나라들을 향해 성명을 발표했다. “세계적 전염병으로 제조와 공급의 다양화, 일시적 지적재산권 포기가 왜 필요한지 다시 한번 통감하고 있다. 역사 앞에서 시스템이 아니라 생명보호에 앞장서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역시 변이바이러스가 발생한 남아공과 인도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잠정 포기해달라는 내용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2월 주문된 86억도스의 백신중 60억도스는 고소득 중상위 국가에 집중돼 있어 세계인구의 80%를 차지하는 가난한 나라에는 3분의1도 안되는 양이 공급된다고 지적했다.
미국 연구소 듀크 글로벌 헬스 이노베이션 센터는 미국이 백신공유 프로그램에 대한 자금지원을 늘려야 하며, 과다보유중인 백신을 다른 나라에 기부하고, 백신제조를 개방하기 위해 제약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촉구했다.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등 진보적 상원의원들도 바이든 대통령에게 지적재산권 권리 포기를 요구하는 WTO 제안을 지지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현재 상황을 방치하면 제약회사의 이익이 사람의 생명보다 앞서게 된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개발도상국들은 제약회사들의 지적재산권을 일시 보류하면 세계적으로 백신공급을 신속하게 증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난한 나라들이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의 자체버전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민단체 국제지식생태계(KEI)의 분석결과도 이를 잘 보여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뤄진 백신기술 이전 계약 70건 이상을 분석한 결과, 기술이전이 시작된 이후 초도물량이 공급되기까지 6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백신 플랫폼의 종류나 제조단계와 무관했다.
백신의 부족과 접종 지연, 이로 인한 코로나19 확진과 사망은 지적재산권 등 독점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제약회사들과 이를 비호하는 부자나라들이 만들어 낸 인위적 재난이다. 당연히 백신 제조사들은 지적재산권 공개를 반대한다, 모더나와 화이자는 미국 정부가 백신개발에 자금을 지원하고 기초기술 개발에 도움을 준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몇년 전부터 스스로 mRNA백신 기술개발에 투자해왔기 때문에 정부 영향은 최소라고 주장한다. 정부의 지적재산권 공개압박은 연구개발 의지를 떨어뜨린다는 주장도 곁들인다. 
‘백신전쟁’을 막기 위한 지적재산권 문제는 백신실용화 이전부터 논의됐다. 2009년 신종플루 팬데믹 당시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당시 부유한 국가들이 백신사재기에 나서 공급이 바닥나고 가격은 치솟았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중남미 가난한 국가들은 백신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교훈삼아 코로나19 초기 WHO는 코로나19 기술에 대한 접근 촉진기구(ACT-A)를 출범시켰다. 진단키트 치료제 백신의 신속한 개발과 생산확대, 공평한 접근을 보장하려는 시도였다. 코백스가 ACT-A의 한축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모더나 백신, 최근 임상시험을 완료한 노바백스 백신이 모두 코백스로부터 개발·생산지원을 받았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노바백스 백신은 코백스와 구매 공급 계약이 체결됐다. 반면 모더나 백신은 코백스에 공급되지 않는다. 생산공급량 대부분을 미국과 유럽이 사재기했기 때문이다. ‘팬데믹기간 동안 이윤없이’ 공급을 약속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비해 모더나 백신의 가격은 최고 9배까지 비싸다. 코백스는 ‘모든 국가가 인구의 20% 물량을 받기 전에는 어떤 국가도 그 이상을 받을 수 없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양자간 구매계약을 막지는 못했다.
코백스의 올해 공급목표는 20억도스로 주요 11개 국가에서 남는 물량보다도 적다. 하지만 실제 계약한 물량은 절반인 10억도스에 불과하다. 현재의 추세로는 코백스 조달에 의존하는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의 가난한 국가 대부분은 2023년까지도 광범위한 접종이 불가능하다. 최근 G7이 코백스에 추가공여를 약속했지만 구매할 백신이 부족하다. 세계적으로 백신물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코백스는 부유한 국가들이 남는 백신을 기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백신을 통해 확진자와 사망자를 줄이는 것은 인류가 공통으로 겪는 고통을 줄이는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의무는 없다. 지적재산권의 ‘신화’를 깨뜨리면 백신생산 속도를 늘려 팬데믹 대응이 쉬워진다. 백신과 관련 지식을 세계적 ‘공유재(common good)’로 바꾸기 어렵다면. 잠정 보류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부유한 국가들의 백신사재기로 조성된 ‘백신 민족주의’는 ‘백신 제국주의’로 변질돼가고 있다. 모든 나라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경구를 가슴 속에 새겨야 한다. “모두가 안전해지기 전에는 누구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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