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아름다운 청년’, 50년만에 ‘전태일 3법’으로 부활

<김주언 칼럼> ‘아름다운 청년’, 50년만에 ‘전태일 3법’으로 부활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0.10.1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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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청계천 전태일다리(버들다리)에서 '전태일 추모의 달' 선포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4일 서울 청계천 전태일다리(버들다리)에서 '전태일 추모의 달' 선포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50년 전인 1970년 11월13일 22살의 재단사 전태일이  외친 말이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청계천 평화시장 앞에서 가슴에 근로기준법 책을 품고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살아 있으면 72살의 노년기에 접어들었을 젊은 청년의 피끓는 외침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도 청계천에 울려 퍼진다. 그렇다면 현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나아졌는가.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위해 바보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근로기준법을 가르쳤다. 인간답게 대접받을 권리를 모르고 기계처럼 살아가기 때문에 스스로 바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당시 박정희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에서 이렇게 썼다. “2만여명 중 40%를 차지하는 시다공들은 평균연령 15세의 어린이들로, 성장기에 있는 이들은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 타격을 입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영세민의 자녀들로 굶주림과 어려운 현실을 이기려고 하루 90원 내지 100원의 급료를 받으며 하루 16시간의 작업을 합니다.”
탄원서는 이어진다. “평균 20세의 숙련여공들은 대부분 햇빛을 보지 못해 안질과 신경통, 신경성위장병 환자입니다. 호흡기관 장애로, 또는 폐결핵으로 많은 여공들은 생활의 보람을 못 느낍니다. 응당 기업주는 건강진단을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을 기만합니다. 한 공장의 30여명 직공 중 겨우 2명이나 3명 정도를 병원에서 형식상 진단을 마칩니다. X레이촬영 시에는 필름도 없이 촬영하며 사후지시나 대책이 없습니다. 1인당 300원의 진단료를 기업주가 부담하기 때문입니까?”
그는 3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1일 작업시간을 14시간에서 10~12시간으로 단축하고, 1개월 2일 휴일을 일요일마다 쉬도록 희망했다. 시다공의 수당 70~100원을 50%이상 인상해달라는 요구도 포함됐다. 당시 짜장면 한그릇 값(10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당을 올려달라는 최소한의 요구였다. 특히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탄원서는 박대통령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정부대책은 없었다. 언론은 철저히 외면했다. 반면 국립공원에서 크낙새가 죽었다는 내용은 크게 다뤘다. 조권(鳥權)이 인권(人權)보다 앞섰다는 웃픈 현실이었다. 
전태일의 죽음은 한국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몰고 왔다. 대학생과 지식인들은 비참한 노동자들의 현실에 충격을 받았다. 노동자와 도시빈민의 삶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대학생들은 야학을 만들어 노동자들을 교육시키는 데 앞장섰다. 일부는 공장에 취업해 노동조합을 조직하기도 했다. 정부와 언론은 이들을 ‘불온한 위장취업자’로 낙인찍었다. 노동운동도 활기를 찾아 곳곳의 현장에서 파업과 농성이 이어졌다. YH무역 노조의 신민당사 점거농성은 무참하게 진압됐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전조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전태일의 산화이후 5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외침은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현장 노동자 10명 중 4명은 근로기본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직장갑질 119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9,9%가 근기법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엠브레인 퍼블릭, 직장인 1000명,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p) 일터에서 가장 지켜지지 않는 법규는 ‘노동시간과 휴가’(51%), ‘임금 및 연장야간휴일 수당, 퇴직금 체불’(48%)이었다. 모성보호(보건휴가, 산전후 휴가, 육아휴직 등)가 준수되지 않는다는 응답도 32.8%였다.
1953년 제정된 근기법은 1997년 새 법이 제정 공포된 이후 24번 개정됐다. 5인 이상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장은 정당한 근로계약 아래 제대로 된 임금을 받고 적정한 근로시간과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헌법에 명시된 기준마저 제대로 준수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이 법마저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의 상황이다. 구의역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그랬듯 이들 중 하루에 7명이 산재로, 1명이 과로사로 죽는다. 법 밖의 노동자, ‘위험한 전태일들’은 50년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들의 현실은 반세기전 평화시장 여공들의 열악한 상황을 빼닮았다. 비정규직은 ‘21세기 시다’이고, 일당 50원을 받던 견습공은 현재의 알바이다.
전태일열사 50주기를 맞아 노동계가 나섰다. 정기국회에서 ‘전태일 3법’을 통과시키겠다는 각오이다. 전태일 3법은 중소사업장이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사업장 규모나 고용형태에 따른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산업안전법 상의 차별을 해소하는 법안이다. 모든 노동자에게 근기법을 적용하고 특수고용직 등 모든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용자와 원청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전태일 3법은 국회로 공이 넘어갔다. 지난달 22일 20만명의 국민동의를 얻었기 때문이다. ‘30일내 10만명’이라는 꽤 높은 청원의 벽을 넘었다. 전태일 3법은 이제 국회 환경노동위의 심사를 받는다. 그러나 이 법에 관심을 보이는 정당은 정의당 등 진보정당들뿐이다. 정부와 민주당은 아직 관심 밖이다. 더구나 야당인 국민의 힘은 딴죽을 걸고 나섰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노동과 임금 유연성 제고를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을 정부 여당에 제안한 것이다. 기업을 위해 ‘쉬운 해고’와 ‘자유로운 임금삭감’을 보장하자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양대 노총은 즉각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국제기준에 현격히 미달하는 노동관계법을 다루자는 발상은 어디에서 나오나”라고 지적했다. “어떤 방식이든 재벌과 자본의 배를 불리기에 혈안이 돼 있는 김 비대위원장과 만나서 얘기할 용의가 있다”고도 밝혔다. 한국노총도 “보수야당의 ‘조자룡 헌칼’과 같은 노동법 개선을 언급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지적했다. “쉬운 해고와 임금삭감을 ‘개혁’이라고 불렀던 ‘도로 박근혜당’으로 되돌아가려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내놓았다.
민주노총은 “재벌과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입법거부와 편법, 꼼수가 판을 치며 법안발의 취지와는 상관없는 누더기 법안을 만드는 다양한 시도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이를 방어하기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민주노총은 “전태일 3법은 10만명의 국민동의 청원에 의한 발의인 만큼 입법 발의자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반영하라”며 “법이 정한 기일 안에 개정과 제정 발의 취지에 맞게 원안의 훼손 없이 입법하라”고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의원들을 대상으로 입법취지를 설명할 계획이다. 또한 일자리위원회와 사회복지위원회 등 정부위원회에 의제별 노정교섭도 요구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10월 한달 동안 주 1회이상 전국 1인시위를 벌인다. 10월24일에는 ‘전태일 3법 쟁취 및 ILO핵심협약 비준 쟁취, 노동개악 저지, 비정규직 철폐’ 결의대회를 열 예정이다. 특히 전태일 50주기 다음날인 11월14일에는 전태일열사 50주기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한다.
50년 전 청년 전태일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청춘을 불살랐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한 불길이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현재에도 노동기본권은 온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수많은 노동자가 해고되거나 임금이 삭감돼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다. 노동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지, 재산축적을 위한 자본권력에 고용된 것은 아니다. 시뻘건 불빛 속에 사그러진 전태일 육신은 청계천 그 자리에 동상으로 부활했다. 그의 영혼은 아직도 한국사회에 떠돌고 있다.  

김주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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