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혐오와 배제’, ‘공포와 불안’ 부추기는 또다른 재난

<김주언 칼럼> ‘혐오와 배제’, ‘공포와 불안’ 부추기는 또다른 재난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0.02.12 10:55
  • 수정 2020.02.1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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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원지 중국 우한(武漢)은 한국과 인연이 깊은 도시이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 김원봉 장군이 무력투쟁을 위해 조선의용대를 창설한 곳이 바로 우한이다. 지난해에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특별기획 문화공연 ‘백년의 봄 IN 우한’이 열리기도 했다. 3개 도시가 통합되기 이전의 우창(武昌)은 신해혁명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1911년 청 황실의 철도국유화에 반대해 ‘보로운동’(철로를 지키자는 운동)이 일어났고 만주족을 축출하고 한족을 부흥시키자는 ‘멸만흥한(滅滿興漢)으로 번져 청 왕조를 무너뜨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청조 멸망 이후 등장한 1926년 국민당 우한정부가 출범했다. 중일전쟁 발발 이후 1937년 수도 난징이 함락되자 우한으로 퇴각해 사실상 수도가 되었다. 이듬해 일본에 함락됐다가 1945년 일본이 항복하면서 국민정부가 점령했다. 국공내전이 끝날 무렵인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우한을 장악했다.1966년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홍위병들의 내전으로 수백명이 사망하는 혼란을 겪기도 했다. 중국 정치세력들은 우한을 장악하기 위해 힘을 기울였다. 중국 대륙의 중남부에 위치한 우한은 중국을 상징하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유서깊은 도시 우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으로 봉쇄됐다. 우한은 중국 대륙 교통의 허브이다. 철도와 도로, 고속도로는 물론이고 장강 물류의 중심인 내륙 항구이다. 텐허공항은 중국 항공노선의 허브공항이기도 하다. 육해공 교통의 중심지인 셈이다. 이런 곳에서 확산속도가 빠른 폐렴이 발생했으니 도시를 봉쇄한 조치는 이해할 만하다. 세계 각국이 앞다퉈 우한에 거주하는 자국 국민을 귀환시켰다. 한국도 교민 700여명을 전세기로 귀국했다. 우한이 ‘유령도시’로 변모한 것이다. 을씨년스러운 도시 풍경은 전시를 방불케 한다.
우한을 ‘유령도시’로 만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전염력이 매우 강해 아시아는 물론, 유럽 아메리카까지 확산됐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을 포함한 동물에 호흡기 및 소화기 질환을 일으킨다. 현미경으로 관찰했을 때 왕관(코로나)모양의 돌기가 나타나 붙여진 이름이다. 빠르게 변이하기 때문에 효과적 대처가 어렵다. 초기증상이 가볍고 잠복기가 길어 쉽게 전염된다. 대부분 박쥐 등 동물에게 유행하지만, 인간에 전염되는 변종이 생기기도 한다. 인수(人獸) 공통전염병의 병원체이다.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치명적일 경우도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원인인 대표적 질환이 사스와 메르스이다. 사스처럼 치명적 질환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독감(인플루엔자)처럼 극악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8년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세계에서 6억명이 감염돼 2500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스나 메르스 등 아종을 제외한 대부분의 코로나바이러스는 감기증상을 보이거나 별다른 증상없이 지나쳐버린다. 문제는 대유행과 치사율이 높은 변종이 발생해 세계에 공포와 패닉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이에 해당하는 지 여부는 좀더 살펴보아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의 확산은 재난에 가깝다. 미확인 정보는 위기를 부추기고 사람들을 공포와 패닉 상태로 몰고 가기 십상이다. 특히 가짜뉴스의 확산은 재난을 가속화시킬 우려가 크다. 또다른 형태의 재난을 불러오는 것도 커다란 문제이다. 집단적 인종차별이나 혐오와 배제가 그것이다. 특히 총선을 앞둔 국내에서는 상황대처를 정쟁의 도구로 삼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중국인 혐오’ 발언을 내뱉기도 한다. 우한 교민의 격리장소를 둘러싼 일부 지역주민의 반발도 정치인의 선동혐의가 짙다.   
국내에서 확진환자가 늘어나면서 중국인 혐오가 기승을 부린다. 박쥐까지 먹는다느니, 위생관념이 떨어져 더럽다느니 하며 노골적으로 폄훼한다. 중국인 밀집거주 지역에서는 “너네 나라로 가라”는 대자보가 나붙기도 한다. 일부 언론은 이를 더욱 부추긴다. ‘중국인이 공짜 치료를 노리고 한국에 몰려오고 있다’거나 ‘중국이 코로나바이러스를 수출하고 있다’는 식이다. 심지어 ‘우한 폐렴’이란 인종주의적 용어를 WHO가 명명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명명한 데 대해 ‘친중국 정부’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중국인 입국금지를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60만 명을 훌쩍 넘어선 것을 ‘집단광기’로 규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로 확산된 마당에 중국인만 입국금지한다고 해서 차단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중국이 발원지이기는 하지만, 환자가 중국인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따라서 중국인 혐오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인종주의적 편견은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유럽 등에서 동양인들을 “코로나바이러스”로 부르는 것도 그중 하나이다. 한국인도 서양에서는 중국인이 당하는 것처럼 똑같은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4월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신종 코로나 재난’을 정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당 의원들은 “중국인 입국 금지”는 물론, “중국 관광객 본국 송환” 등 혐오를 부추기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후베이성 방문자 입국금지 이후 황교안 대표는 중국 방문자의 입국을 제한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민경욱 의원은 “세금 한푼 안낸 중국인들이 무상치료를 받기 위해 발병사실을 숨기고 입국한다”며 “세금을 허무하게 낭비하는 무능정권을 규탄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당은 2015년 메르스사태 때 초동대응 실패로 지지율 하락의 쓴맛을 본 적이 있다.
더욱 커다란 문제는 가짜뉴스가 극성을 부린다는 점이다. 유튜브에는 의도적으로 연출된 환자이송 장면이나 가짜 피가 묻은 마스크를 보여주는 동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 가짜뉴스는 방역에 차질을 빚을뿐더러 공포를 불러와 사회혼란을 부추길 뿐이다. 따라서 가짜뉴스의 생산과 유포는 ‘중대한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오죽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가짜뉴스의 차단을 직접 지시하고 나섰겠는가. 방송통신심의위는 가짜뉴스 심의를 결정했으나 야당 추천 위원들은 “가짜뉴스 여부는 결과를 두고 봐야 한다”며 집중심의에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매우 전염성이 높지만, 얼마나 치명적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3주 동안 확진자는 세계 23개국 1만7000명을 넘어섰다. 300명을 웃도는 사망자중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중국에서 발생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실제 감염자는 1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며 ‘대유행(pandemic)’사태에 임박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망자가 발생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메르스나 사스보다 전염력은 강하지만, 치사율은 낮은 편이기 때문이다. 현재 치사율은 2%수준으로 메르스(38.6%)나 사스(9.4%)에 비해 낮다.
독감에 비해서도 덜 치명적이다. 미국에서는 독감(인플루엔저) 감염자 1900만 명 중 18만 명이 입원했다. 이중 사망자가 1만 명을 돌파했다. 이번에 유행하는 독감은 30대의 건강한 성인도 합병증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할 정도로 독하다. 폐렴이나 뇌염 심근염이 생길 수 있고 장기부전으로 치명적이기도 하다. 11번째 확진자가 나와 사망자가 하나도 없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미국 독감을 압도하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컬하다. 게다가 미국인의 입국을 제한해야 한다는 국내 정치인의 목소리는 전혀 없다. 
신종 감염병의 확산으로 세계적 재난상황을 맞았다. 그러나 질병재난과는 또다른 재난이 국제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인종주의적 편견과 혐오, 배제가 그것이다. 게다가 미확인 정보와 허위조작 정보가 극성을 부리면서 막연한 공포와 불안이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재난을 정쟁수단으로 악용하는 정치인들도 등장했다. 한국이 우한같은 ‘유령도시’로 변모하지 않으려면 국민 모두 예방수칙을 지키고 방역에 협조해야 한다. 호들갑을 떨지 말고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 “공포와 혐오가 아니라 신뢰와 협력”이라는 문대통령의 지적이 옳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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