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민족지’ 자처하는 조선일보의 ‘친일논조’

<김주언 칼럼> ‘민족지’ 자처하는 조선일보의 ‘친일논조’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19.07.2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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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국가에서 야당 언론 학자 누구건 정부와 판결을 비판할 수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누가 보복이 두려워 정부 또는 판결 비판을 못하는가. 그렇지만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주권이 타국, 특히 과거 주권침탈국이었던 일본에 의해 공격받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정부의 입장에 동조하거나 이를 옹호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일부이다. 조수석은 “한국의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 한국 대법원 판결을 비방 매도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일지 몰라도 무도(無道)하다”고 지적했다.
조수석은 일본의 수출규제로 한일갈등이 고조된 가운데 연일 글을 올려 일부 야당과 언론을 비판하고 있다. 조수석이 대통령 비서로서 개인의견을 공개적으로 올려도 되느냐는 논란을 떠나 적확한 지적에는 공감이 간다. 조수석의 말대로 ‘민족감정의 토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그렇다. 한일갈등은 정파적 이익에 따라 다뤄야 할 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일부 보수언론과 야당은 한일갈등을 문재인정부의 책임으로 돌리며 흡사 일본정부를 대변하는 듯한 논조를 보여주었다.
조수석은 이에 앞서 일본 포털에 공급되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일본어 제목을 ‘매국적 제목’으로 규정하고 질타했다. 조선일보 일본판은 ‘북미 정치쇼에는 들뜨고, 일본의 보복에는 침묵하는 청와대’ 등을 제목으로 뽑았다. 중앙일보 일본판에는 ‘반일은 북한만 좋고 한국엔 좋지 않다’ ‘문재인정권 발 한일관계 파탄의 공포’ 등이 제목으로 올라와 있다. 조수석은 “혐한(嫌韓) 일본인의 조회를 유인하고 일본내 혐한감정의 고조를 부추기는 매국적 제목을 뽑은 사람은 누구인가?”라며 격앙하기도 했다.
이들 신문은 원제목을 다른 제목으로 바꿔 일본어판으로 기사를 제공하기까지 했다. 조선일보는 ‘일본의 한국투자 1년새 -40%, 요즘 한국기업과 접촉도 꺼려’를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의 투자를 기대하나?’로, ‘국채보상, 동학운동 1세기 전으로 돌아간듯한 청와대’를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국민의 반일감정에 불을 붙인 한국 청와대’로 바꾸었다.
보수신문이 내세우는 논리는 구한말 친일파 논리나 식민사관과 닿아 있다. 6월 28일자 조선일보 칼럼을 보자. “숨가쁜 국제정세보다 더 구한말 같은 것이 이 순간 한국과 일본의 통치 리더십이다. 지금 일본엔 화려했던 과거를 꿈꾸는 지도자가 등장해 있다.” ‘아베 찬사’이다. 칼럼은 아베 총리를 이토 히로부미에 비교했고 잔혹했던 일본제국주의 침탈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이른바 ‘토착왜구’의 뒤틀린 시각이 한국사회에 온존해 있음을 보여준다. 
한일갈등에서 한국언론이 무조건 한국정부 편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찬반여부는 언론사의 판단에 달려 있다. 그러나 객관적 입장에서 사실에 기초해 보도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가치이다. 감정적으로 정부를 때리거나 비난하는 보도는 정상적 저널리즘이라고 보기 어렵다. 게다가 한일갈등을 다룬 보도에서 문재인정부만 비난하다 보면 자칫 ‘매국언론’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기 쉽다. 
이번 한일갈등의 발단은 지난해 10월 대법의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소송 판결이다. 대법은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강제징용은 반인도적 불법행위이므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이 있었더라도 개인별 위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게 판결요지였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국제법에 어긋난다며 미쓰비시 중공업의 배상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일본정부는 한국에 수출규제라는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한국의 일부 야당과 보수언론이 동조하고 나선 것이다.   
조선일보는 그동안 사설과 칼럼, 외부기고 등을 통해 문재인정부를 비난하면서 일본편을 드는 듯한 논조를 보여왔다. 대법의 판결을 폄하하면서 “외교갈등 때문에 빚어진 정부 발 폭탄”이라며 책임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씌웠다. 게다가 “우리사회 일부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일으키려는 것도 득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과거 한일청구권자금으로 포철을 건립하는 등 한일협정으로 개인배상까지 마무리된 것처럼 일본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언론시민단체들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일보를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도대체 어느나라 신문인지 우리눈을 의심케 하는 보도들을 쏟아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한국정부를 비판하고 일본측을 두둔하는 댓글까지 일본어로 번역해 제공함으로써 일본인들에게 전달되고 있다”며 “일본의 반한감정을 증폭시켜서 한일관계를 악화시킨 책임이 조선일보에 있는 것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언론소비자주권행동은 ‘조선일보 광고 불매운동’에 들어갔다. 언소주는 19일 “매국신문 조선일보 폐간하라! 등 조선일보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며 불매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일본극우 여론전에 이용되고 있는 가짜뉴스 근원지 조선일보 폐간 및 TV조선 설립허가취소‘라는 제목의 청원 동의자는 22일 현재 13만명을 넘어섰다.
자유한국당도 연일 조선일보와 비슷한 논평을 내세운다. 한국당은 “일본 무역보복 조치, 수출 7개월 연속 마이너스, ‘경제 폭망’은 문재인정부가 자초한 일이다”라는 논평을 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회연설에서 “감상적 민족주의에만 젖어 감정외교, 갈등외교로 한일관계를 파탄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일본어판의 ‘관제 민족주의가 한국을 멸망시킨다’거나 ‘국가대전략을 손상시키는 문정권의 감성적 민족주의’라는 제목과 들어맞는다. 심지어 청와대가 의도적으로 반일감정을 부추겨 내년 총선전략으로 활용하려는 속셈이라는 황당한 주장도 나온다.
‘관제 민족주의’는 과거 독재정권의 전유물이었다. 민주화요구 시위가 격렬해지면 한일갈등을 부추겨 벗어나려 했다. 관변단체를 동원해 대규모 집회를 열고 일부 참석자들이 혈서를 써서 일본을 규탄했다. 모든 언론은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창간 기념호 기사제목에 ‘민족’이란 단어를 수십개 올리거나 대대적 ‘극일(克日) 캠페인’에 나서기도 했다. 현재의 논조와 180도 다른 모습이다.
‘민족지’를 자처하는 조선일보의 친일역사는 뿌리가 깊다. 일본왕의 생일인 ‘천장절’(1939년 4월 29일)을 맞아 조선일보가 조간 1면 머리에 올린 사설 ‘봉축 천장가절’을 보자. “광명이 동천에 충일하고 생생한 기력이 모토(牟土)에 편만하여 있다. (…) 춘풍이 신록에 빛나는 이 청상한 계절에 제하여 만민일체로 천장의 가절을 봉축하는 것은 해마다 경하의 염을 새롭게 하고 감격의 정을 깊이 하는 바 있다.” 이런 조선일보가 내년 창간 100주년을 앞두고 다시 ‘친일’로 기울어지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지도 모른다. 
일본의 침략으로 고통을 겪었던 슬픈 역사를 지닌 한국은 일본의 경제압박 앞에 ‘무조건 항복’을 강요받고 있다. 앞으로 강제징용뿐만 아니라 위안부문제, 독도분쟁, 역사교과서 왜곡 등 과거사청산과 관련한 일본의 강경기조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국가의 존립과 민족적 자존심을 위태롭게 하는 이번 사태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조선일보의 도를 넘은 정부비난과 아베 두둔 행태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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