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연산, 정업원을 더럽히다

[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연산, 정업원을 더럽히다

  • 기자명 데일리스포츠한국
  • 입력 2019.03.2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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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음무도한 행위의 계기가 된 사찰

[데일리스포츠한국] 조선의 도성에는 왕족, 비빈, 궁녀들의 신앙의 귀의처이자 정진의 도량인 ‘정업원’이 있었다. 개경에 위치했던 이 절은 창건 당시 청룡사로 불렸는데 922년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도선국사의 조언에 따라 개경을 위협하는 지세를 누르기 위해서 지었다고 전한다. (불교신문 2월 6일자 2399호)

고려 시중 이제현의 딸이자 공민왕의 후궁이었던 혜화 궁주 이씨가 머물렀고, 이후 조선의 태조 때부터는 왕실의 후궁이나 왕족이 출가해 머물렀다.

조선이 건국되고 태조 3년에 정업원을 한양으로 옮겼다. 정업원은 조선 초기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는 관급 사찰로 별사전, 노비, 삭료로 운영되었다.

이 절은 궁궐 바로 옆에 위치해 승려들의 도성 출입이 금지된 상황에서도 왕실 사찰로서의 특혜를 누렸다. 사림들은 조선왕실이 지속적으로 호불경향을 유지하는 근원인 정업원을 탄압하고 철폐를 주장했다.

(민덕식, 조선시대의 정업원)

정업원은 주로 남편을 잃은 선왕의 후궁과 왕실의 부녀자, 사족의 부녀자들이 출가해 승적을 이루며 왕실불교를 이끌었고, 절을 총괄하는 주지는 비구니 중에서 대왕대비나 왕대비 등 왕실의 어른이 추천해 왕이 임명했는데 왕실의 부녀자, 선왕의 후궁, 사족의 부녀자 중에서 선발되었다.

연산군일기 50권, 연산 9년(1503년) 6월 13일 무신 1번째 기사에는 연산군이 미행으로 정업원에 난입하여 시자를 시켜 몽둥이로 늙고 추한 여중을 내쫓고 젊고 아름다운 자와 음행을 범 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날 이후 연산군은 왕의 체모를 망각하고 걷잡을 수 없는 황음무도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중략) 이에 앞서 왕이 미행하여 환자(宦者) 5, 6인에게 몽둥이를 들려 정업원으로 달려 들어가 늙고 추한 여중을 내쫓고, 나이 젊은 아름다운 자 7, 8인만 남기어 음행하니, 이것이 왕이 색욕을 마음대로 한 시초이다“

(장악원에서 해금 타는 기녀를 적어 아뢰다.) (계속)

※ 여기 연재되는 글은 필자 개인의 체험과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종교와 종교인 등과 논쟁이나 본지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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