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연산군과 장녹수의 만남

[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연산군과 장녹수의 만남

  • 기자명 데일리스포츠한국
  • 입력 2019.03.2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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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녹수, 천민에서 정 3품까지 오르다

[데일리스포츠한국] 천출 기생인 장녹수(張綠水)는 연산군의 총애를 받아 정 3품 소용으로까지 신분이 상승했다.

그녀의 이름은 연산군 8년(1502년) 11월 25일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국조문과방목〉에 의하면 그녀의 부친인 장한필은 1469년(예종 1년)에 실시한 증광시에서 병과 4위로 합격해 19년 후인 1488년(성종 19년)에 종 5품인 문의 현령으로 재임했다. 그녀는 부계혈통으로 양반의 핏줄을 이어받았지만 어미가 공노비라 조선시대의 신분제도인 ‘일천즉천(一賤則賤: 부모 중 한쪽이 천민이면 그 자식 역시 천민이 된다)’의 법령에 따라 천민으로 태어났다.

산군이 무오사화를 일으켜 조정에서 사림을 일소한 후 강력한 왕권을 행사해 즉위 8년째를 맞은 1502년 제안대군 이현의 저택에서 장녹수를 처음 만난다.

그 무렵 연산군은 여진족이 창궐하는 평안도와 함경도 일대에 성을 쌓고 국방을 강화하고, 음란한 남녀를 사형에 처한다는 강력한 법령을 제정한 후 원자 이황을 왕세자로 봉하여 정치적 안정을 도모했다.

풍류를 즐겼던 연산군은 부왕인 성종에게 왕위를 빼앗긴 예종의 둘째 아들이자 평생 한량인 제안대군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당시 제안대군은 왕위에 거론되던 종실들의 최후를 지켜보며 대궐은 바라보지 않고 초연하게 살고 있었다.

연산군은 숙부인 제안대군에게 동병상련을 느껴 종종 미행을 나가 그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회포를 풀었다.

미행을 나갔던 어느 날 그는 숙부의 집에서 우연히 빼어난 음률과 교태가 넘치는 연상의 여인 장녹수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가 연산군을 처음 만났을 때는 이미 서른이었고, 아들도 하나 낳은 상태였다.

연산군은 타고난 미인은 아니지만 방년 16세 아이와 같이 앳되 보이는 목소리가 맑고 청아한 그녀를 보자마자 한 눈에 반해 궁궐로 데려가 종 4품 숙원에 봉했다. (계속)

※ 여기 연재되는 글은 필자 개인의 체험과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종교와 종교인 등과 논쟁이나 본지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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