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꼴찌 예상 넥센’ 염경엽 감독의 이유 있는 항변

[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꼴찌 예상 넥센’ 염경엽 감독의 이유 있는 항변

  • 기자명 홍윤표 기자
  • 입력 2016.05.0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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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KBO리그는 시즌 초반 한화 이글스의 날개 없는 추락과 극명하게 대비, ‘변함없는 강자’의 면모를 잃지 않고 있는 넥센 히어로즈의 선전에 눈길이 간다.

5월 9일 현재 넥센은 17승 1무 13패로 NC 다이노스, SK 와이번스에 이은 4위다. 선두 두산 베어스와는 겨우 2.5게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굳이 판도를 가른다면 ‘4강 5중 1약’의 구도 속에 넥센은 4강권에서 굳건히 버텨내고 있다.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이어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가 미국 메이저리그로 떠나가고 팀 중심타선을 구축하고 있던 유한 준마저 FA 신분이 되자 kt 위즈로 이적, 전력 약화가 불 보듯 뻔했지만 막상 시즌에 들어가자 우려의 시선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꼴찌 후보로도 꼽혔던 넥센이 ‘얼토당토않은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선전을 거듭하자 ‘신화수분 야구’라는 칭송이 자자하다. 한화의 붕괴는 당초 전문가들의 예상을 크게 벗어난 이변으로 봐야겠지만 넥센의 강세는 이유 있는 이변으로 풀이가 가능하다.

넥센의 야구는 끈덕지고 끈질기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느 팀도 넥센을 만나면 쉽사리 이기지 못한다. 그 중심에 염경엽(48) 감독이 자리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그가 추구하는 야구, 야구관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는 치밀한 야구 설계사다.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척박한 환경에서 염 감독은 불굴의 의지로 팀을 성층권으로 끌어올렸다.

‘심모원려(深謀遠慮)’라는 말은 바로 그에게 적합한 수식어이다. 깊이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는 선수단 운용은 그가 왜 ‘준비된 지도자’인가를 여실히 알게 해준다.

염 감독은 “구단이 좋은 선수를 뽑아주니까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절제된, 그러나 함축성 있는 표현에서 그의 깊은 속을 짐작할 수 있다.

-시즌 전 일반적인 관측은 지난해 강정호에 이어 박병호 유한준 등이 빠져나가 꼴찌후보로까지 예상했다. 어떤 심정이었나.

▲다들 그렇게 얘기해 좀 속상했다. 언론이나 야구인들 모두 꼴찌라고 하니까. 그러나 우리는 (박병호 등이) 빠져나갈 것에 대비했다. 1년 전부터 준비했다. 빠져나가도 4등을 할 수 있다고. 캠프에서 선수들이 열심히 했다. 선수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긍정적인, 더 하고자하는 의지가 뭉치면 무서운 힘이 될 수 있다. 어린 선수들 한두 명 튀어 나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고 봤다. 두려워했던, 걱정했던 4월이었다. 바닥에 있으면, 호구로 잡혀버리면 헤쳐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작 때 잘 버티면 경기를 치르면서 자신감이 붙을 것이고 상대가 우리를 쉽게 볼 수 없게 되면 우리는 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염 감독은 울분을 토해내듯 거침없이 말했다.)

-선수들이 무시당한데 대한 오기나 절박감이 작용했겠다.

▲그렇다. 우리가 왜 꼴등인가. 빠져나갔지만 남은 기둥 선수들이 분위기를 잘 만들었다. 서건창, 이택근, 김민성 등이 ‘우리는 할 수 있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뭉쳤다. 다른 야구를 하면 되니까. 선수들이 잘 움직여주고 있다.

-두산을 ‘화수분’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넥센이 ‘신화수분 야구’를 하고 있다. 신재영, 박주현 등 좋은 투수를 발굴했다.

▲ 아직은 잘 모르겠다. 잘 하고는 있다.

-어떤 기준으로 선수를 발굴하는가.

▲스타가 될 수 있는 선수를 고른다. 나름대로 선수 등급을 매겨 놓는다. 이를테면 A+, A, B+ 3등급으로 구분해 여러 명이 아니라 스타가 될 수 있는 선수 한두 명을 집중해서 키운다. 조상우, 김하성, 고종욱, 박동원이 그런 경우다. 다 키울 수는 없다

-선수를 보는 안목, 눈이 중요하다는 얘기로 이해한다. 눈에 보이니까 키우는 것. 박동원 포수 같은 경우 안방살림을 참 잘한다.

▲골라서 키워야 한다. 우리 팀의 4월은 박동원이 거의 핵심이었다. 아무리 가르쳐도 경기를 하는 것은 포수가 어린 선수들 데리고 이끄는 것이다.

-손전화 컬러링이 ‘돌멩이’다. 염 감독의 ‘마이너 야구인생’을 상징하는 듯하다.

▲감독이 된 후 1년 남짓 지나 MBC 방송을 듣다가 가사가 너무 좋아서…. 제 인생과 비슷한 것 같다. (루저 인생 소리를 듣는 것은)제가 열심히 안 살면서 그렇게 만들었다.(웃음)

(‘돌멩이’의 가사 한 부분은 이렇다. ‘흙먼지가 날리고 비바람이 불어와/ 뼈 속까지 아픈데 난 이를 악문다/ 아등바등 거리는 나의 삶을 위해서/ 내 맘 둘 곳 찾아서 난 길을 떠난다/ 굴러 난 굴러간다/ 내 몸이 부서져 한줌의 흙이 되도/굴러 난 굴러간다/ 내 사랑 찾아서 내 꿈을 찾아서……’)

-이 시대에 적합한, 필요한 지도자 스타일은 무어라고 보는가.

▲미국, 일본 야구를 복합한 한국적인 야구를 하고 싶다. 언제까지 미, 일 따라 할 것인가. 한국적인 야구를 만들어서 호주나 중국이 우리를 따라할 수도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건방지다고 할 수 있겠지만, 감독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스몰 볼도 있고, 빅 볼도 있다.

-염 감독이 생각하는 한국적인 야구는?

▲일본야구와 미국야구가 다 들어 있는 섬세한 야구다. 뛰는 것도 있고, 지키는 야구도 있고, 한국 야구는 다양하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야구가 재미있을 수도 있고.

-목동에서 고척돔으로 옮기면서 넥센이 발 빠른 선수 위주로 선수단을 재편하려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박병호나 강정호가 없다. 구장 규모에 맞춰 체질개선을 하고 있는가.

▲빠른 야구를 하려고 한다. 우리는 스타일을 바꿨다. 디테일하고, 점수도 지키면서 많이 뛰고, 타선에 뛰는 애들을 4명씩 넣는다. 뛰는 야구에 중점을 뒀다. 보다 빠르고 재미있는 야구. 가급적 번트를 하지는 않는다. 빠르고 공격적인 야구를 추구한다.

-넥센은 쉬운 팀이 아니다. 이유가 있는가.

▲그렇다. 그런 야구를 만들고 싶었다. 팀이 쉬우면 안 된다. 상대 팀이 호구로 생각한다. 많이 빠져나갔지만, 그래도 상대팀이 ‘넥센하고 상대하면 갑갑하다, 준비할 게 너무 많다’, 그런 팀을 만들려고 했다. 지금 잘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는 우승이 목표가 아니겠는가. 감독으로서 넥센은 힘든 구단이다. 선수들이 계속 빠져나가고, 그 때마다 팀 색깔을 다시 만들어야하고. 우승에 장애가 될 수 있다.

▲그건 구단이 운영하는 방식이다. 그게 싫으면 내가 이 팀을 떠나야 한다. 감독 처지로선 팀 상황에 맞춰 운영하는 게 맞다.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감독을 하면서 좋은 것만 경험하면 감독을 오래하는 데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엄청난 경험을 하고 있다. ‘팀을 만드는’ 경험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거의 김시진 감독님이 좋은 자원들을 만들어준 것 같고 그것을 제대로 작동하게끔 만들어서 성적도 내봤고, 지금 많은 공부를 하는 것이다. 이제 4년째다.

-마지막 목표 우승, 이 과정들이 사실 힘들 텐데.

▲3년을 잡았다. 내가 이 팀에 계속 있다면 내후년 정도. 방망이로 우승하기에는 힘들다고 느꼈다. 방망이로는 영원한 강팀은 없다는 것, 지금까지는 투수력과 지키는 야구가 되면서 5년 연속 강팀이 되었다. 방망이로 한 번을 할 수는 있겠지만, 삼성과 해봤는데 방망이로는 안 되겠더라. 방망이로는 우승하기 힘들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방망이는 좋은 투수를 만나면 죽는 카드다. 포스트시즌에서는 좋은 투수들을 계속 만나니까 지키는 게 첫 번째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투수를 키우려고 초점을 맞췄다. 올해는 잘 되고 있다, 내년에는 조상우, 한현희가 수술 후 돌아온다. 투수 왕국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상우나 한현희가 빠지면서 우려가 컸다.

▲(조)상우가 빠진 건 걱정 안했다. 상우가 마무리 투수였으면 충격이었겠지만. 경험 차원에서 상우를 선발로 넣었다. 10승을 바란 건 아니었다. 쉽지 않다고 생각은 했지만 상우가 하고 싶어 해서 시켜줬다. 길게 봤을 때 상우는 선발로 가야하는 투수다. 뭔가 느껴보라고 미리 시켜준 것이다. 부상이 와서 1년을 쉬라고 했다. 나중이 중요하다. (한)현희 (수술)도 계획적이었다. 현희는 MCL을 갖고 있었다. 고교 졸업 후 들어오자마자 수술해서 성공하는 경우는 10%도 안 된다. 어느 정도 수준을 올려놓고 수술을 해야 한다. 그러면 수술 후 그 자리를 대부분 지킨다. 현희 한테 “한 단계 올려야 한다. 홀드왕도 하고, 국가대표도 하고 군대도 갔다 오고 수술해라”고 말했다. 혹사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우리 팀 계획이었다. 생각을 하고 괜찮다고 판단해 계획대로 했다.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큰 그림을 그려놓고 움직인 것인가.

▲그렇다. 현희도 우리가 뺀 거다. 적극적으로 쓸 수도 있지만, 그러나 결국 선수 자신이 수술하고 싶을 때 해야 한다. 내가 더 이상 끌고 가봤자 아프다고 할 수 있고 무너지게 된다. 알고 있어서 수술하라고 했다.

-걱정했던 4월을 넘겼고 5월도 잘 보내고 있다. 계획대로 팀이 움직이고 있는가.

▲좋은 계획, 좋은 가정대로 가고 있는 것 같다. 5월을 잘 버티면 그 이후에는 힘이 생길 것 같다. 이제는 5월만 +로 찍으면 어린 선수들이 자신감이 붙어 늘게 된다. 확실하게 안정적이지는 않아도 자신들이 믿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좀 더 지킬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한 달 한 달을 넘기면 우리는 점점 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마무리 김세현은?

▲1년 동안 나와 손혁 코치가 매달렸다. 마무리 투수로 생각하고. 조상우랑 중간에서 쓰려고 했다가 실패했다. 마지막에 선발로 돌렸다가 아파서 끝났다. 세현이에게는 나와 손혁 코치가 매우 큰 공을 들였다.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가. 배짱이 좋은가.

▲그렇다. 세이브라는 책임감이 생기니. 배짱보다는 세이브를 거두면서 좋은 과정, 첫 경기에서 블론, 그 다음에 어려운 경기를 잡고, 또 어려운 경기를 잡고, 그러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눈빛이 변했다.

-고비마다 선수를 곧바로 바꿔버리지 않는 넥센이나 두산은 선수들의 힘을 잘 길러준다.

▲내가 바라는 욕심이 아니라 그 선수가 어느 정도 할 수 있을까. 경기에 나가서 세이브를 거뒀지만 블론도 6~7개 할 수 있을 거야, 그 기준을 세워뒀다. 그때까지는 놔둔다. 그걸 선수가 이겨내면 올라서는 거고 못 이겨내면 안 되는 선수다. 어느 정도 기다려줘야 한다. 한두 번 못했다고 빼버리면 그 선수는 못 쓰는 거다. 결국 감독이 버텨줘야 한다. 밖에서 왜 쓰느냐, 이러쿵저러쿵해 빼버리면 그 선수는 할 수 없다. 오지환 하고 박병호를 놓고 보면 차이가 있다. LG가 4년 동안 밀어줬기에 지금의 오지환이 있다. 박병호도 기다려줬다면. 그러나 아직 4번에 가서는 안 될 타자를 4번에 보내니 선수가 못 이겨낸 것이다. 과정이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4번을 칠 수 없다.

-강정호나 정의윤, 이진영 이런 타자들은 잠실구장이 넓어서 불리한 점이 있었을 것이다. 잠실을 벗어나 홀가분한, 부담이 줄어들어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것인가.

▲잠실에서 정의윤을 7, 8번에서 키웠다면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정의윤이한테 높은 자리에서 높은 목표를 해내라고 하니, 안 되는 것이다. 단계별로 올라가야 한다. 홈런타자라도 정확성부터 가르쳐주고 그 이후에 홈런을 치게 해야 한다. 강속구 투수, 파워 피처의 실패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게 “이친구는 구속이 150(킬로미터) 나오니까 투구 폼 건드리지 마라”라고 하면 150만 던지다가 끝나는 거다. 스트라이크를 못 던지고. 그렇게 끝난 선수가 한두 명이 아니다. 키우는 데 시간이 걸리고 과정이 있다. 제구력부터 가르쳐야 한다. 강속구는 죽지 않는다. 파워 히터도 마찬가지다.

-올해 어려운 팀은?

▲NC하고 두산. 열심히 싸워야 한다.

염경엽 감독은 매력적인 지도자다. 잡초 같은 야구 인생이었지만 선수를 보는 눈, 원석을 옥석으로 다듬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선수들의 성취동기를 자극할 줄 안다. 넥센은 모기업에 기대어 팀을 꾸려가는 다른 9개 구단들과 달리 스폰서십으로 꾸려가는 유일한 야구단이다. 가장 프로다운 구단이다.

그 구단에서 염 감독은 환경에 맞는, 이른바 맞춤형 선수단 운영으로 한국 프로야구 판에서 일정한 경지에 올랐다. 그의 진화는 바로 한국야구 발전의 진화이자 자양분이 될 것이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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