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추신수 "아내의 내조, 돈으로 환산 못 한다"

[인터뷰+] 추신수 "아내의 내조, 돈으로 환산 못 한다"

  • 기자명 이대호 기자
  • 입력 2013.12.3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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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이대호 기자] "가족을 위해 야구를 한다."

추신수는 30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1년 여만에 귀국했다. 올 시즌 신시내티 레즈에서 출루율 4할2푼3리라는 좋은 성적을 올린 추신수는 FA 자격을 얻었고 장고 끝에 텍사스 레인저스 입단을 확정지었다. 추신수는 7년 총액 1억3000만 달러라는 기록적인 금액으로 텍사스 유니폼을 입었다.

30일 오후 2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추신수의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다. 다음은 추신수와의 일문일답이다.

- 올해 출루율이 좋아졌는데 그 비결은 무엇인가

올해 바뀐 게 있었다. TV로 보셨다면 투 스트라이크 되기 전과 된 후 바뀐 게 느껴지셨을 것이다. 예전에는 투 스트라이크가 되든 그 전이든 같은 자세로 타격을 했었다. 올해는 1번 타자를 맡았는데 시애틀 소속일 때 마이너리그 선수들 의무적으로 투 스트라이크에 대해 의무적으로 타격 자세를 바꿔야 하는 룰을 떠올렸다. 그래서 올해부터 투 스트라이크 되면 배트를 짧게 잡고 스탠스도 넓게 가져갔다. 공 1개, 2개를 더 보는 게 굉장히 크다. 투 스트라이크가 되면 배트 짧게 잡고 포수가 잡기 전까지 방어적으로 갔다. 그래서 투 스트라이크 이후 성적이 굉장히 좋아졌다. 게다가 사구도 많았다. 그게 가장 큰 이유다.

- 비행기 타고 한국에 오며 무슨 생각 했나

계약이 될 때가 애리조나 시간으로 새벽 1시 반이었다. 와이프는 자고 있었고 난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13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정말 모든 것이 순식간에 지나간듯한, 13년이 5분 처럼 짧게 지나갔다. 사실 고교졸업 후 미국에 오면서 이 정도까지 목표를 가진 건 아니었다. 단지 메이저리그라는 무대만을 생각했다.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을 얻다보니 사실 '내가 진짜 했나'라고 스스로 물을 정도다.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다. 그래서 와이프와 서로 눈시울도 젖고 눈물도 났다. 계약을 했기 때문에 또 다른 야구인생이 시작되는거라 생각한다.

- 부인 하원미씨의 존재를 금액으로 환산한다면

사실 돈이야 가족을 위해 버는 것이다.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와이프에게 지금까지도 미안하고 마음이 아픈 건 아이가 셋인데 태어나면 경기하러 가느라 옆을 지키지 못했다. 세 번 모두 산후조리를 못 했다. 출산 후 이틀만에 나를 위해 오히려 내조를 한 것이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것 때문에 미안했었다.

- 올해 성적에 만족하나

100% 만족은 못 한다. 3할을 치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서 아쉽다. 포스트시즌 나가서 홈런도 치고 졌지만 상대팀으로 하여금 기억에 남는 경기를 했다. 기록 중 한 가지만 뽑으라면 300출루다. 300출루라는 건 생각도 못 했다. 올해 조이 보토가 시즌 종료 1개월 전 '두 선수가 300출루를 동시에 한 것이 메이저리그에서 손에 꼽는다'라고 하더라. 처음에는 듣고 흘렸는데 나중에는 생각을 하게 됐다. 300출루가 가장 좋은 기록인 것 같다.

- 텍사스 계약 시 가장 우선시했던 조건은

선수들이 FA라는 걸 경험하지 못하고 그만두는 게 절반 이상인걸로 안다. 그런데 내게 이런 기회가 와서 원하는 팀에서 뛰고 싶었다. 이기는 팀에서 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이 어떤 삶을 사는가도 중요했다. 사실 여러 팀이 있었는데, 내년부터 우승에 도전할 수 있고 가족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을 찾다보니 텍사스가 모든 면에서 들어맞았다. 그리고 텍사스가 적극적인 제의를 했었다. 처음부터 내 마음 속에 텍사스가 있었던 것 같다.

- 텍사스로 가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지

월드시리즈가 끝나는 순간 FA 시장이 시작된다. 열 팀 정도가 내게 관심을 드러냈다. 좁혀지다 보니 3팀 정도가 남았다. 양키스도 있었는데 팬들께서 많이들 오해를 하신다. 꼭 양키스라고 해서 뛰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양키스와 같은 팀에서 뛰는 걸 꿈으로 가진 선수지만 마음에 가는 팀이 따로 있었다. 사실 양키스의 제의를 받았을 때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제의를 받든, 안 좋은 제의를 받든 그 자리에서 '예스, 노'를 말할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난 양키스의 제안에 답할 시간조차 없었다.

- 존 대니얼스 단장은 장기계약을 좀처럼 안 하는 편이다

(보라스가) 금액적인 건 몰라도 기간은 힘들다고 이야기 하더라고 하더라. 벨트레와의 계약에서도 금액보다 기간 합의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더라. 그러다가 마지막에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 물론 장기계약에 부담감 있다. 그것도 어떻게 보면 줄곧 같이 가야 할 고민인데 스스로 잘 다스려야 할 것 같다. 그런 부담감이 없을 수는 없다. 내가 하는대로만 하면 괜찮을 것 같다. 너무 잘하려고 하다보면 안 좋은 모습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 올해부터 좌익수를 보게 됐다

중견수로 옮기는 게 올해 스트레스였다. 그래도 올해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중견수들만큼 하지 못했지만 처음 했던 것치고 잘했다고 생각한다. 코너 외야수를 가더라도 중견수보다는 편할 것 같다. 중견수도 했는데 무얼 못하겠나 싶다. 수비위치, 타순 모두 하나도 걱정 안 한다.

- 왼손투수 대처법은 어떻게 되는가

제 인생에 있어서 힘든 시기를 꼽으라면 2011년 왼손 사구부상이 세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반쪽짜리 선수가 되고 싶지 않았다.기술로도 해결이 안 되는, 정신적인 문제였다. 정신과 의사도 만나보고, 왼손투수 공 잘 치는 타자에게 조언도 구해봤지만 말로는 안 됐다. 그 때는 왼손투수 공을 미리 겁을 먹고 들어갔던 것 같다.

한창 사구 많이 맞을 때는 왼손투수 공이 나한테 날아오는 것같은 느낌까지 받았다. 그래서 힘들었는데 극복했다. 그 때도 가족을 생각했다. '여기서 겁을 먹고 물러서게 된다면 우리 가족은 밖에 나가앉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왼손투수 공이 잘 맞아나가며 자신감을 찾았다. 난 왼손투수 공을 못 친다고 생각 안 한다. 잘 맞은 공도 많았다. 그런데 기록은 그런 걸 잘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러 왼손투수에 약하다는 이야기는 안 봤다. 그러다보니 마음이 좀 더 편해졌다.

- 투수 계속 했었으면 어떻게 됐을 것 같은지

그런 생각도 엄청나게 많이 했다. 투수를 했다 하더라도 팔꿈치수술은 했을 것 같고 메이저리그는 3년만에 갔을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지금 정도의 선수는 되지 못했을 것 같다. (만약 투수를 했다면) 선수생활도 앞으로 어떻게 할지 불투명했을 것같다. 메이저리그 빨리 올라가는 것 외에는 지금보다 나아지는 게 없을 것 같다.

- 텍사스는 우승을 노리는 팀인데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지

정말 내년 스프링캠프가 기다려진다. 올해 내가 신시내티에서 한 것만 한다면 텍사스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래서 텍사스에서도 7년이라는 장기계약을 내게 제시한 것 같다. 몸만 건강하다면 내가 원하는 기록은 따라온다고 믿고 있다.

- 신시내티에 좋은 선수가 많았는데 그들과 이야기하며 도움이 됐는가

신시내티에 정말 좋은 선수가 많다. 조이 보토, 브랜든 필립스 등 모두 경기를 대하는 자세가 정말 진지하다. 내일 투수, 3일 뒤 투수 모두 분석할 정도다. 타격코치가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열심히 했다. 그런 걸 보면서 많이 놀랐다. 그래서 '이기는 팀은 정말 다르구나' 싶었다. 신시내티 있으면서 느낀 건 지는 팀은 '이겼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데, 이기는 팀은 '이긴다'는 믿음이 먼저였다. 경기에 임하는 자세를 많이 배웠다.

- 몸에 맞는 공은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가

난 공을 절대 피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타석에 바싹 붙는 것도 아니다. 비디오도 보고 심판과 이야기도 해 보는데 결코 아니다. 상대 선수들이 먼저 이야기하길 '바짝 붙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맞는가'라고 말할 정도다. 투수들은 내가 좋아하는 코스를 피해가려고 몸쪽에 더 붙이려고 한다. 그렇지만 내가 몸에 맞는다고 해서 타격폼을 바꿀 필요가 없지 않나. 앞으로도 공이 오면 피하지 않을 것이다.

- 팀 동료가 된 다르빗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르빗슈는 상대를 해 봤지만 메이저리그 탑 클래스의 선수임에는 분명하다. 내게는 좋은 점이 그런 투수를 만나지 않기 때문에 기쁘다. 마이너리그에서 배운 것처럼 내가 먼저 다가가서 친해지고 싶다. 이와쿠마 선수는 좋은 공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잘 쳤던 기억이 있기에 한국-일본 선수라는 관계를 떠나 잘할 자신이 있다.

- 내년 텍사스에서 역할은 어떻게 되는가

워싱턴 감독님께서 내게 '1번타자, 좌익수로 생각한다'고 말씀 하시더라. 감독님은 지명타자를 한 명만 고정적으로 하는 게 싫다고 하셨다. 저나 벨트레, 필더 등 매일 뛰는 선수들을 위해 로테이션으로 돌리고 싶다고 하셨다. 나도 타순은 상관 없다.

- 미국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무엇인가

생활 자체가 힘들었다. 야구만 하다가 왔다. 야구 하나만 보고 왔었기에 난 아무것도 없었다. 이 길 하나만 보고 오다보니 사회생활도 익숙치 않았다. 친구도 없이 혼자 생활하다 보니까 외로웠다. 외로움이 가장 컸었다. 그래서 마이너리그에 있는 선수들과 자주 이야기한다. 확실히 자리를 잡았으니 이제 그런 선수들을 돌아봐야 할 것 같다.

- 추신수 선수의 성공요인은 노력인가 재능인가

운동은 타고나는 것 같다. 난 하나를 가르쳐주면 빨리 배웠고 그 앞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어떤 걸 원하는지 읽으려고 노력했다. 처음 미국와서 말을 못 알아들어 코치의 제스쳐만 보고 배웠는데, 그러면서 그런 습관을 들였다. 내 철칙은 스스로를 평가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노력을 많이 했는지 평가는 못하겠다.

- 선수생활을 하며 벽에 부딪혔을 때는?

팔꿈치 수술을 했을 때다. 가족이 생기며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며, 확실하게 날 받아줄 수 있는 한국팀에 갔으면 말도 통하고 편하게 살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갈 결심까지 했는데 와이프가 날 말렸다. 그때 수술해서 재활하고 있을 때였다. 실밥도 뽑기 전이다. 와이프가 날 잡아주면서 뭔가 모르는 힘이 생겼다. 재활 정말 열심히 했다. 한 2개월 정도 빨리 복귀했었다.

- 이제는 베풀 때라는 이야기를 한 걸로 안다

더스티 베이커 감독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야구를 즐기라고 하는데 사실 즐기는 선수가 없지 않는가. 야구를 즐기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우리는 이미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고 선택받은 존재다. 무얼 더 원하는가.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 야구를 즐기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많이 가지는 게 뭐가 중요하냐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제는 시작해야겠다'라고 마음이 바뀌었다. 아직 자세하게 계획은 안 나왔다. 그렇지만 하나씩 할 생각이다. 올해는 체류하는 시간이 짧아서 많은 걸 하지는 못 하지만 구체적으로 할 것이다. 순간이 아닌 구체적인 방안을 생각 중이다.

- 워싱턴 감독에 대한 느낌은?

느낌이 좋다. 계약을 하기 전 감독님이랑 단장님 등 텍사스 관계자 다섯 명이랑 이야기를 했다. 당시 받은 느낌은 '베이커 감독님이 앞에 앉아있다'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두 분이 많이 닮아있다. 워싱턴 감독님은 선수들 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 번 안 뵈었지만 느낌이 굉장히 좋았다.

- 후배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난 어릴 때부터 목표가 있었다. 정말 그 목표를 세우고 진지하게 내 인생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운동을 했다. 난 어릴 때 다른 건 못해보고 야구만 바라보고 살았다. 내가 못 해본 공부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읽고, 지식도 많이 쌓았으면 좋겠다. 하나만 이야기하자면 목표다.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하면 분명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다.

- 메이저리그에서 더 많은 걸 이루고 한국에 돌아올 생각이 있는가.

이제 7년 계약을 했는데 아직 생각해본 적 없다. 배트를 휘두르고 공을 던질 수 있을 때까지는 메이저리그에 있을 것 같다.

- 등번호 17번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7번은 내게 의미있는 번호다. 초등학교 때부터 17번이었다. 1년 정도 잠시 다른 번호 달기도 했지만 쭉 달았다. 누군가 17번 쓰는 선수 있었다면 다른 번호를 달았을 것 같은데 운이 좋게 마침 그 번호가 비어 있었다. 텍사스에서도 내게 먼저 '17번을 달겠냐'고 이야기를 해와 너무 좋았다.

- 향후 국가대표팀에 합류할 의사가 있는가

남은 건 아시안게임인데 아쉽게도 시즌과 맞물릴 것 같다. 실력이 되는 한 언제든 나가고 싶다. 병역혜택도 아시안게임을 통해 받았다. 나를 위해 희생한 동기, 선수, 후배, 코칭스태프를 위해서라도 한 번은 갚아야 할 것 같다.

- 새해 목표가 있다면

이제 옮겨다니지 않고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 명예의 전당까지는 갈 수 없다는 걸 안다. 메이저리그에서 건강할 때까지 마흔 살까지 뛰는 게 목표다. 개인적으로는 200-200, 300-300을 해보고 싶다. 무엇보다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

cleanupp@osen.co.kr

<사진> 백승철 기자 baik@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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