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고 트리오는 왜 이제야 뭉쳤는가?

광주일고 트리오는 왜 이제야 뭉쳤는가?

  • 기자명 이선호 기자
  • 입력 2014.04.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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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이선호 기자]KIA 김병현(35)이 트레이드를 통해 고향팀 유니폼을 입으면서 광주일고 트리오가 새삼 주목 받고 있다.

김병현은 지난 10일 넥선-KIA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97년 2월 광주일고를 졸업한 이후 17년만의 귀향이다. 김병현이 입단하면서 1년 선배 서재응(37), 1년 후배 최희섭(35)과 19년만에 광주일고 트리오가 뭉치게 됐다. 세 선수는 90년대 중반 광주일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고교시절 모두 초고교급 선수였고 타이거즈 미래의 주축들이었다. 해태는 당시 세 선수를 모두 고졸 우선지명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단 한 명도 유니폼을 입히지 못했다. 96년 졸업생 서재응은 인하대. 97년 졸업생 김병현은 성균관대, 98년 졸업생 최희섭은 고려대 유니폼을 입었다.

이유가 있었다. 해태는 돈이 없었고 해외진출 바람까지 불었고 대학과의 스카우트전에서 패했다. 서재응이 광주일고를 졸업할 때 KIA는 투수 김상진, 내야수 장성호, 포수 황성기가 입단했다. 제시 계약금도 김상진 수준인 1억 원.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데려와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재응은 대학에서 메이저리그행을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김병현은 역동적인 투구폼, 두둑한 배짱투구로 미래의 소방수로 꼽혔다. 당장 소방수로 기용해도 통할 것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당시 3억 원이면 잡을 수 있었지만 해태는 돈이 없었다. 2억원과 재학중 ML행 허용 조건을 내건 성균관대에 내주었다. 임창용이 소방수로 존재감을 드러냈던 시점이기도 했다.

최희섭은 김응룡 감독이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미래의 간판타자로 생각했던 해태는 없는 살림에 3억원을 제시했지만 최희섭은 고려대를 택했다. 최희섭의 부모는 프로보다는 대학을 생각했다. 이렇게 세 선수는 해태와 인연을 맺지 못했고 나란히 뉴욕 메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시카고 컵스로 진출했고 아트피처, BK, 빅초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인상적인 활약을 했다.

이들이 해태의 유니폼을 입었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궁금하다. 타이거즈 전통을 잇는 주축 선수로 활약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IMF 직격탄을 맞은 해태는 역사속으로 사라졌고 동시에 주축선수들이 대거 다른 팀으로 옮기면서 전통은 퇴색됐다. 2001년 KIA 타이거즈가 뒤를 이었지만 주축 프랜차이즈 스타 부족으로 상당한 애로를 겪었다.

세 선수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고 KIA의 적극 구애로 최희섭이 2007년, 서재응이 2008년 KIA에 입단했다. 두 선수는 2009년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드디어 월드시리즈 우승반지까지 낀 김병현은 2012년 넥센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처음으로 한 팀으로 뭉쳤다. 그러나 모두 30대 중후반의 나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

세 선수 모두 예전의 기량이 아니고 주축 선수들은 아니다. 서재응은 중간투수로 나서고 있으나 성적이 썩 훌륭하지 못하다. 최희섭은 무릎 수술 이후 재활을 하고 있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김병현은 넥센에서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선동렬 감독은 중간투수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과연 19년만에 뭉친 이들이 힘을 모아 고향 팀을 이끌 수 있을 것인지 팬들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sunn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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