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의 꿈

갈매기의 꿈

  • 기자명 오진곤 교수
  • 입력 2023.03.1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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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성인이라면 21년 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2002년 월드컵 경기장의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문구를 선명하게 기억할 것이다. 그 문구처럼 대한민국은 월드컵 4강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그 해, 월드컵 기간동안 대한민국 삼천리 방방곡곡을 메아리쳤던 “대~한민국 짝짝짝!” 구호는 요즘도 국제대회에 출전한 대한민국 선수단을 응원하기 위해 곧잘 소환되곤 한다.

미국 작가 리처드 바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 Jonathan Livingston Seagull>이란 책이 있다.

주인공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꿈에 관한 이야기이다. 조나단은 오직 먹이를 구하기 위해 하늘을 나는 다른 갈매기들과는 다르다. 창공을 가르고 날아가는 비행 그 자체를 즐기고 사랑하는 갈매기이다. 결국 조나단은 무리와 친구, 심지어 가족에게도 무시당하며 추방당한다. 먹이만 구하며 살아가는 갈매기 세상의 전통을 깨버렸기 때문이다. 추방을 당한 후에도 창공을 나는 비행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던 조나단은 치앙이라는 스승을 만나 더욱 성장하게 된다.

완전한 속도를 꿈꾸는 조나단에게 “이미 그곳에 도착해 있음을 아는데 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이야”라는 조언을 치앙은 해 준다. 비행 기술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더욱 성숙해진 조나단은 역시 추방당한 다른 갈매기들을 제자로 키운다. “끊임없이 남에게 사랑을 베풀라”는 치앙의 말을 기억하며 자신이 키운 제자들과 함께 조나단은 무리에게로 돌아간다. 무리들은 그들의 화려한 비행에 관심을 갖게 된다. 조나단은 끊임없는 수련을 통해 완전한 비행술을 터득한다. 무한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초현실적인 공간으로까지 날아올라 마침내 자신의 꿈을 실현하게 된다.

태안의 만리포 해수욕장을 방문하면 우리를 반기는 많은 갈매기를 만날 수 있다. 만리포 해수욕장 인근엔 괭이갈매기 서식지가 있다. 괭이갈매기는 바다를 주 무대로 살아가는 바다새이다. 잠수 능력이 뛰어나 사냥을 잘하는 가마우지 새에 비하면 갈매기의 사냥 능력은 거의 없다. 괭이갈매기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 곁을 서성이며 먹이를 포착한다. 만리포 해수욕장 편의점에서 갈매기 먹이로 새우깡을 들고나오면 녀석들은 바로 눈치챈다. 수백 마리의 갈매기 떼가 새우깡을 먹기 위해 모여든다. 가히 장관이다. 손가락 사이에 새우깡을 하나 끼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하강하며 채어 물고 날아간다. 거의 곡예 수준이다. 새우깡을 즐기는 무리와 달리 다은 소수 무리는 새우깡에 전혀 관심이 없다. 물가를 서성이며 바닷물 속의 먹이를 직접 찾고 있다. 아마도 사람들에게 길들여지는 것이 싫은 조나단 리빙스턴 같은 갈매기 무리가 아닌가 싶다.

괭이갈매기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의 특징은 부리의 위아래에 있는 붉은색 띠이다. 알에서 부화 된 새끼는 생사의 길목에 바로 직면하게 된다. 새끼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자기 둥지를 이탈해 이웃 둥지를 잘못 침범하는 것이다. 다른 어미 새의 무차별 공격을 받아 죽는 일이 다반사다. 괭이갈매기 새끼의 가장 중요한 생존 조건은 자기 어미의 목소리를 인식하는 것이다. 부화 후 3~4일 정도면 어미 울음소리의 인식이 가능하다. 어미는 적자생존에서 살아남는 새끼를 선택한다. 괭이갈매기는 양육강식의 집단생활과 태풍 등 험난한 자연재해의 시련을 극복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누구라도 꿈을 먹고 산다. 어떤 이들은 그 꿈을 이루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꿈인 채로 살아가기도 한다. 194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열다섯 살의 한 소년이 자기 집 식탁에서 할머니와 숙모가 나누는 이야기를 우연히 엿듣는다. 할머니는 숙모에게 "이것을 내가 젊었을 때 했더라면..." 이라는 이야기를 반복하신다. 그것을 엿들은 소년은 ‘사람이 노인이 되어가면서 후회를 하는구나. 나는 커서 후회는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소년은 노란색 종이를 꺼내 맨 위에 '나의 인생 목표'라고 쓴다. 그는 살아가는 동안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배우고 싶은 것 등 인생의 꿈들을 하나씩 기록한다.

그는 무려 127개의 목록을 작성한다. 자신의 꿈의 목록을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그는 가능한 것부터 한가지씩 정복해 나간다. 그의 첫 번째 꿈은 나일강 탐험이다. 그가 47세가 되던 해 127개의 꿈의 목록 중 104가지를 완벽하게 실현한다. 1972년 <라이프>라는 잡지에 ‘한 남자의 후회 없는 삶’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된다. 당시 <라이프> 잡지는 사상 최고의 판매 부수를 기록한다. 1980년, 그는 우주 비행사가 되어 달에 감으로 125번째 목표를 달성한다. 마지막 두 가지는 결혼해서 자녀를 두는 것과 21세기를 살아보는 것이다. 다섯 자녀를 둔 그는 지난 2013년 생을 마감함으로 127개의 꿈을 모두 달성한다. 그는 미국의 탐험가 존 고다드(John goddard)이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꿈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고 손으로 적고 발로 실천한다는 존 고다드. 이들의 공통점은 생각하고 도전하고 실천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매달리지 말고, 멀리 미래를 내다보며 꿈을 꾸면서 살아갈 것을 말하고 있다. 올해는 표고버섯 농사를 시작하는 것을 나의 꿈의 목록에 추가한다. 오늘도 아내와 함께 밤 안개 속 달빛만으로 비추는 신비스런 밤길을 꿈속처럼 걷는다.

오진곤(서울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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