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박한 ‘고향 언어’가 가르쳐 준 인생 좌우명

질박한 ‘고향 언어’가 가르쳐 준 인생 좌우명

  • 기자명 김성 소장
  • 입력 2023.01.19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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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귀향차량 물결로 도로가 꽉 찰 것이다. 고향이 도대체 무어길레 이렇게 우리를 그것으로 향하게 하는 걸까.

고향은 어머님의 포근한 손길처럼 정(情)이 느껴지는 곳이 아닐까. 또 마음의 위안을 주는 곳 아닐까. 그래 비록 상세한 고향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가슴 속에선 사랑의 강물이며, 눈물의 샘이며, 버리려고 해도 버릴 수 없고, 잊어버리려고 해도 잊혀지지 않는 곳이 아닐까. 고향의 산과 들, 강은 실제 모습은 빈약하고 구질구질하더라도 우리의 마음 속에서는 어떤 이름난 명승지보다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다. 그런 감정이 여전히 남아 있기에 줄을 서는 것 아닐까.

고향은 사랑의 강물, 잊혀지지 않는 위안처

그러나 시대에 따라 고향의 모습이나 귀성행렬은 각기 다른 느낌이 담겨있게 됐다.

60여년 전까지만 해도 어린 시절을 고향에서 보냈던 어르신들의 머리 속에 고향은 쌀밥은 커녕 보리밥조차 배불리 먹을 수 없었던 곳이었다. 진달래꽃 피어나던 봄철에 밥칡이나 나물죽으로도 뱃속을 채울 수 없었지만 그런 허기졌던 어릴적 기억이 떠올라 오히려 향수에 잠기게 하고 있다. 농번기철은 마을에서 가장 활기 넘치는 때였다. 흥으로 시작해 흥으로 끝났다. 어마어마한 깃발이 장대에 매달려 펄럭이고 농악대가 모심는 농민들을 위해 흥을 돋우었다. 비록 가난하긴 했지만 정(情)이 넘쳤던 마을 풍경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골의 풍경은 필자도 겪어 본 적이 있었다. 1982년 4월 경남 의령에서 경찰관의 총기난사 사건으로 95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여 취재를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가는 길이 대부분이 비포장이었다. 명색이 삼성·LG·효성 재벌의 창업주가 태어난 곳이고 바로 옆 군(郡)이 당시 대통령의 고향이었는데도 비포장길에 비까지 내려 대단히 불편했다. 마을에는 우체국에 전화선이 단 하나밖에 없어 기자들이 길게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려 본사에 기사를 불러주어야 했다. 겨우 40년 전만 해도 이러했다. 하여 당시에는 시골에서 도로포장과 전기설치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였다.

형식적 귀향 … 情이 사라진 공간으로 변해가

40년이 흐른 뒤인 오늘날의 고향은 또다시 크게 변했다. 자동차만 지나가면 먼지로 뒤덮였던 도로는 아스팔트로 말끔히 포장되고, 정겨웠던 초가지붕은 민속촌 외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널따란 논에서 사람들이 모여 모내기하는 모습은 사라지고 트랙터가 모내기와 추수를 대신하게 되었다. 20년 전 만해도 보기 힘들었던 비닐하우스가 이제는 끝없이 펼쳐져 토마토 고추 오이 딸기 수박 등을 계절을 가리지 않고 수확해 도시에 내다 팔게 되었다. 농촌주택에도 도시의 아파트와 다름없이 TV·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 생활가전이 들어찼고, 동네 마을회관에는 냉난방시설에 체력단련 운동기구까지 배치돼 혹한기와 혹서기에는 노인들이 아예 여기에 기거하면서 식사까지 해결하고 있다. 고향이라고 찾아간 도시인들은 골목길에서 낯선 이방인 취급을 받기 일쑤가 됐다. 도시인들은 명절 연휴에 고향에서 하룻밤만 자고 가족끼리 호텔이나 유원지 팬션에서 휴식을 보내는 게 일상화 됐다. 아예 외국여행을 떠나는 가족들도 늘어나고 있다.

지역연고를 내세워 지방에 와 고위관료를 지낸 사람들 대부분도 임기가 끝나면 훌쩍 서울로 떠나버려 지역발전을 도와줄 멘토가 없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자 고향으로 돌아와 목수로 말년을 보냈던 미국의 지미 카터 같은 사람은 언제나 나타날지 모르겠다. 하여 고향의 골목은 단 하루 북적였다가 순식간에 적막강산으로 변하고 마는 게 오늘날 고향의 명절 풍경이 되었다. 살기는 분명 좋아졌으나 따스함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풍년식탐’, 토속음식 통한 고향의 지혜 가르쳐줘

그러나 자세히 찾아보면 가슴에 와닿는 고향의 언어가 살아있기도 하다. 고향을 떠나올 때 할머니가 손자에게 질박한 사투리로 해 주시던 말씀이다.

“아가,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더 도둑놈 되드라. 맘 공부를 해야 헌다. 인간 공부를 해야 한다. 착실허니 살고 놈 속이지 말고 뼈 빠지게 벌어 묵어라. 놈의 것 돌라묵을라고 허지 말고 내 속에 든 것 지킴서 살아라. 사람은 속에 든 것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벱이니 내 마음을 지켜야제 돈 지키느라고 애쓰지 말거라” (황풍년 ‘취재수첩’에서 발췌)

부동산 투기에다 제 몫 챙기기에 아득바득 혈안이 되어 이제 별세계 사람이 되어버린 도시인에게는 곰팡이 냄새 나는 말씀 같아서 망각하고 지내 왔지만 고향을 찾아갈 때는 그 말씀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이것도 아직까지 살아있는 고향의 모습이 아닐까.

황풍년은 전라도 사투리를 지키고자 평생을 여기에 몰두해온 작가이자 기획자이다. 전라도의 말과 멋과 내음이 물씬 풍겨나는 《전라도닷컴》이라는 잡지를 발간해 오고 있다. 황풍년은 전라도 토박이들의 단순한 사투리만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토속 음식 솜씨가 뛰어난 전라도 ‘어매’들과의 대화를 통해 27가지 토속음식 요리 과정과 그들의 가난했던 인생살이, 험한 세상을 살면서 터득한 지혜들까지 모아 《풍년식탐》(2013. 도서출판 르네상스)이라는 단행본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찬바람 불고 마음이 스산할 때, 문득 인생이 허무해질 때, 서럽도록 고향이 그리울 때, 정신의 허기를 따스하게 채워줄 애틋한 어머니의 밥상과 인생이야기를 모으고 싶었다고 했다.

고향사랑기부제 참여로 ‘마음 연결’ 기회 갖길

전라도 순천에서 쟁기로 밭을 갈던 할아버지가 해 준 이야기는 오늘날 고향의 가르침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쟁기질은 먼 디를 보고 허는 것이여. 코 앞만 보고 허다가는 이랑이 꾸불텅꾸불텅 허게 되야. 멀리 보가 나가야 이랑이 똑바른 거여. 이랑이 굽은 것은 소탓이 아니여. 사람 탓이제!”

올해부터 고향사랑기부제가 시작되었다. 작은 정성으로라도 이 제도에 참여하면서 고향의 소리나마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김성(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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