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신뢰도에 대한 변명

언론 신뢰도에 대한 변명

  • 기자명 김위근 언론학박사
  • 입력 2023.01.12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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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대한 시민의 비판과 질타가 매섭다. 제4부로서 언론의 역할과 필요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크게 우세하다. 언론이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사회 갈등을 증폭시킨다는 주장에 반하는 논거를 찾기가 오히려 어렵다. 날선 공격과 조롱으로 언론인의 사명감과 자부심은 끝 모를 나락으로 떨어졌다. 플랫폼 뉴스서비스가 언론의 전통적 기능을 대체하는 현실은 언론사 개념마저 바꾸고 있다. 디지털 대전환으로 극히 일부를 제외한 수많은 언론사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이러한 언론 위기를 증명하는 다양한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다. 이제 언론산업에 대한 장밋빛 미래는 냉소의 대상이 될 뿐이다.

소위 ‘87년 체제’ 이후 우리 언론은 양적․질적으로 급속하게 성장한다. 1990년대부터는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인터넷 기술이 언론산업에 도입된다. 우리나라 최초 언론사닷컴은 1995년, 인터넷신문과 포털 뉴스서비스는 2000년이 시작이다. 이때만 하더라도 인터넷이 언론산업에 크게 기여해 공론장을 확대하고 민주주의를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일상화된 언론 위기 시대다. 우리나라 언론 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언론 신뢰도다. 이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매년 발간하는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서 제시된 뉴스 전반에 대해 신뢰하는 응답자의 비율이 가장 대표적이다.

2022년 발간된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 따르면, 뉴스 전반에 대해 신뢰하는 응답자 비율에서 우리나라는 30%로 조사대상 46개국 중 40위에 그쳤다. 2021년은 32%로 46개국 중 39위, 2020년은 21%로 40개국 중 40위였다. 올해도 분명 매우 낮은 순위일 것이다. 이를 근거로 언론은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의 언론 위기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도한다. 정치권은 우리 언론의 형편없음을 보여주는 수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시민 역시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증거라고 조소한다. 저널리즘 원칙과 언론 윤리를 지키지 않아 구현되지 못하는 저널리즘 가치는 언론 신뢰 회복 또는 제고를 요원하게 만든다.

포털사이트, 소셜미디어 등 플랫폼의 뉴스서비스로 때문에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클릭 경쟁에 뛰어든다는 핑계는 통할 수 없다. 시장 수요를 넘어선 경쟁적 언론환경으로 광고수익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 탐사보도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주장은 언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자극적 뉴스를 집중적으로 이용하는 시민의 특성으로 인해 자신이 생산한 양질의 뉴스가 이용되지 않는다는 논리는 비겁하다. 이러한 우리 언론 현실의 원인 및 결과를 설명하는 데 항상 등장하는 지표는 단연코 언론 신뢰도다. 언론인, 언론학자, 언론비평가 등 수많은 언론 전문가는 우리 언론 위기의 원인을, 그리고 결과를 낮은 언론 신뢰도로 꼽는다. 우리 언론 신뢰의 현실은 비난 받아 마땅하나, 과연 현재와 같이 조사되고 측정되는 언론 신뢰도가 풍부한 현실 설명력이 가질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명사 ‘신뢰’는 ‘굳게 믿고 의지함’을 뜻한다. 매우 추상적인 신뢰라는 단어는 언론을 설명하는 핵심 용어다. 언론은 신뢰를 기반으로 하며, 언론산업은 곧 신뢰산업이다. 언론 신뢰는 언론 이용과 매우 유의미한 상관관계에 있다. 특정 언론사의 뉴스를 많이 이용하면 해당 언론사를 신뢰하게 되며, 특정 언론사를 신뢰하면 해당 언론사의 뉴스를 많이 이용하게 된다. 신뢰는 상대적이다. 특정 언론사를 신뢰한다는 것과 다른 언론사를 신뢰한다는 것을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신뢰는 다차원적이다. 특정 언론사를 신뢰한다는 것은 해당 언론사 전체를 신뢰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그 일부를 신뢰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신뢰는 상호관계 속에서 역동적으로 형성된다. 현재 과거 신뢰했던 언론사를 현재 신뢰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 반대도 언제나 가능하다. 신뢰는 누적적이다. 특정 언론사를 신뢰했지만 지금은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러 불신이 쌓여 어느 임계점을 지났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복합적 개념이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신뢰는 언론 신뢰도 측정에서 단일 문항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을 어느 정도 신뢰합니까?”, “…을 신뢰합니까, 아니면 신뢰하지 않습니까?” 등이 신뢰도 측정에 사용되는 전형적인 문항이다. 이러한 단일 문항으로 측정된 언론 신뢰도는 지표로서 의미는 있지만, 신뢰라는 용어에 함축된 복잡한 의미를 드러내 설명하지 못한다. 2022년 발간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서도 언론 신뢰도로 일컫는 뉴스 전반 신뢰도 역시 단일 문항으로 측정됐다. 여기에서 언론 신뢰도가 가장 높은 국가는 69%의 핀란드였고 다음이 남아프리카공화국 61%, 포르투갈 61%, 나이지리아 58%, 덴마크 58%, 케냐 57% 등 순이었다. 언론 신뢰도 국가 순위에서 우리나라 30%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한 국가 중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언론 관련 환경, 정책, 산업, 이용, 집중 등은 국가마다 모두 다르다. 이러한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언론 신뢰도 순으로 국가를 나열하는 것은 잘못된 통계 관행이다.

언론은 사회를 바라보는 창이다. 모든 시민은 언론을 통해 사건과 이슈를 확인하고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직접 경험에 의한 사회참여가 불가능한 현대사회에서는 언론을 통한 간접적 사회참여가 거의 전부다. 따라서 시민이 평가하는 언론 신뢰 수준, 딱 그만큼이 전반적 사회 신뢰 수준이다. 즉 언론 신뢰도는 모든 사회 부문 신뢰도의 총합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볼 때 우리나라는 불신사회에 가깝다. 언론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낮은 신뢰도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1 언론수용자 조사’에서 언론인 신뢰도는 정치인, 고위공직자 등보다는 높고 교육자, 경제인 등보다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권의 낮은 언론 신뢰도에 대한 비판이 민망해진다. 언론 신뢰도를 제고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다른 국가와 비교해 우위에 서기 위함이 아니다. 전반적인 우리 사회 신뢰 수준의 향상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김위근(언론학박사·퍼블리시 최고연구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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