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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가 안겨준 ‘기적’의 힘–우크라이나 고려인 귀국작전, 현재 ‘진행 중’
  • 김성 소장 machmj55@naver.com
  • 승인 2022.12.0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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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군을 도왔던 300여명의 아프간인들을 우리 국군 항공기가 아슬아슬하게 탈출시켜 감동을 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민간인 힘으로만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고려인 847명(12월 6일 현재)을 국내로 탈출시킨 ‘기적’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기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민간의 ‘기부’로 847명 귀국시켜 … 올 1천명 목표

오늘(8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288일이 되었다. 러시아군은 미사일과 포탄으로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시설을 집중포격하고 있다. 겨울을 맞이하고 있으면서도 전기 없는 도시, 난방이 안되는 주택에서 생존해야 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처참한 상황이 어떠할지는 상상만 해도 안타깝다.

여기에 한 줄기 ‘기적의 빛’이 비쳐졌다. 광주의 고려인마을이 우크라이나에서 탈출한 고려인들에게 손길을 내민 것이었다. 귀국한 843명 중 600여명은 광주고려인마을(대표 신조야)에 정착했다. 국민이 십시일반 모은 기부금은 7억82,012,352원. 항공권 제공과 거주지 임대보증금과 월세, 긴급 의료지원비 등으로 쓰였다. 광주고려인마을은 연말까지 모두 1,000명을 귀국시키고, 아직도 우크라이나 주변국에서 귀국을 갈망하는 수백 명의 고려인들을 데려오기 위해 모금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광주고려인마을 주민과 자원봉사자들, 광산구청의 센터는 귀국 고려인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거주지 마련, 생활용품 제공, 일자리 안내에 힘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부자들이 보내오는 내용도 다양하다. 무명의 개인부터 단체까지, 심지어는 홈페이지를 보고 외국에서도 참여하고 있다. 어떤 단체나 기업은 항공권을, 또 개인들도 성금은 물론 쌀, 밥솥, 이불, 의류, 배추, 마스크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보내오고 있다.

고려인 마을이 항공권·정착·일자리 지원 주도

광주시 광산구 월곡동에 자리잡고 있는 광주고려인마을에는 영주귀국자와 산업근로자 및 가족까지 7,50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이들의 조상들은 원래 구소련 동북지방에서 살고 있었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18만명이 중앙아시아 척박한 땅으로 강제이주된 뒤 주변국으로 퍼져 나간 동포 후예들이다. 이제는 이들의 한을 풀어주는 게 당연하다. 귀국만 시키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귀국-정착-일자리 마련까지 연결해야 마무리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기금이 필요하다.

‘기부’는 인류에게 보람과 행복을 안겨 준다. ‘기부’는 ‘나눔’이다. 나눔은 그것이 많든 적든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재능, 물질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지만 나의 앞가림에만 치우쳐 깜박 망각하고 살아왔다.

전통 이어온 우리나라 ‘나눔’의 역사

우리에게는 훌륭한 나눔의 역사가 있다. ‘품앗이’는 지금도 농촌사회에서 유지되고 있다. 경주의 최부자는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는 유훈을 후손에게 남겼다. 일제가 나라를 빼앗아 가자 재산을 독립자금으로 내놓았다. 광복 후에도 전 재산을 교육 사업에 기부했다. 구례의 운조루에는 쌀 두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뒤주가 있다. 아래 마개에 타인능해(他人能解 · 누구나 열 수 있다)라고 쓰여있다. 어려운 주민 누구나 식량을 가져가 굶어죽지 않도록 했다.

임진왜란때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의병이 창의(倡義 · 국난을 당해 의병을 일으킴)하면 지방의 부호와 선비들이 돈과 물자를 제공했다. 그러한 전통이 이어져 1907년에는 대구에서 일제가 빌려준 돈을 갚기 위해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어 전국의 유부녀와 하층민인 기생들까지 참여했다.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시작했던 광주고보는 원래 사립학교였다.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고 끝나자 “교육을 통해 독립을 준비하자”며 지역사회 부호와 유림들이 돈을 모아 1920년에 설립했다. 3년 뒤 관립으로 일제에게 빼앗기긴 했으나 지역사회에 국권 회복 정신이 면면히 흘러 독립운동까지 일어난 것이다. 1998년에는 달러가 메말라 국가가 부도날 지경에 이르자 전 국민이 금모으기운동에 나서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세계적인 관심도 받았다. 나눔운동은 이처럼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전통이었다.

외국 도움으로 경제·민주화 성공국가 돼 … 이제부터는 갚아 나가야

우리나라가 외국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일도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국토가 파괴되고 식량난에 빠지자 미국 등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미공법 480호라고 적힌 쌀부대, 미제(美製) 가루분유, 학교에서 나눠준 옥수수빵 등은 필자도 체험했던 원조물자들이었다. 덴마크 등 몇몇 나라는 병원선과 의료장비를 대학병원에 제공해 보건위생을 도왔다. 아동보호를 목적으로 설립된 유니세프(UNICEF · 국제연합아동기금)도 1950년부터 우리를 도와주었다. 그러다가 1994년에 우리나라가 유니세프 사상 처음으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바뀌었다. 이후 우리나라는 경제발전을 이룩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지원받던 나라에서 지원하는 나라’가 됐다. 1980년 5·18 민중항쟁이 발생한 뒤 1997년 국가기념일 제정으로 민주주의가 완성되기까지에도 외국의 선교단체와 인권단체들의 보이지 않는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세계 10위권에 든 나라로써 전통적인 ‘나눔’의 정신을 이어나가야 한다. 지난날 이웃으로부터 받았던 따뜻한 ‘나눔’의 손길을 이제 ‘배려’로 갚아나가야 한다.

주역(周易) 문언전(文言傳)에는 ‘적선여경’(積善餘慶)이라는 글귀가 있다. 좋은 일을 많이 하면 나중에 후손들에게까지 복(福)이 온다는 뜻이다. 꼭 덕(德)을 보자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다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계속되고 있는 고려인에 대한 기적의 귀국작전도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면 좋겠다.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 062-961-1925. 인터넷 : 고려인마을)

김 성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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