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제 그만 지하철에서 나가라

[기자수첩] 이제 그만 지하철에서 나가라

  • 기자명 우봉철 기자
  • 입력 2022.12.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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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세권에 산다. 집에서 5분만 걸으면 4호선 혜화역이다. 사무실이 있는 충무로까지는 지하철로 8분이면 도착한다. 출근까지 약 15분이 소요되는 셈이다.

그러나 최근 1년은 지하철 탑승이 쉽지 않아 출근하는 데 40~50분이 걸린다. 사람들이 지하철 대신 버스로 몰리다 보니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서도 비집고 올라갈 자리가 없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택시를 잡아타는 게 요즘 내 일상이다.

왜 8분 거리를 택시 타고 출근하느냐. 1년째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을 촉구하며 지하철 시위 중인 전국장애인차별연대(전장연) 회원들 덕분이다. 시위 초기, 얼마나 지연되겠나 싶어 탔다가 40분 가까이 만원 열차에 갇혀 있던 뒤로는 전철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번 주 아침 출근길도 마찬가지였다. 오는 9일까지 또 지하철 시위를 예고하는 모습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이번에는 지하철 운행에 큰 지장을 주는 ‘지하철 탑니다’와 달리 지연 의도가 없는 선전전이라는데, 역당 20~30초간 정차하던 것을 시위를 보장하기 위해 1~2분간 정차하게 되면 꼬리를 물고 운행하는 지하철 특성상 지연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역마다 지연이 누적되면 뒤쪽에 있던 열차 탑승객은 또 발을 동동 구르게 되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이들이 장애인 교통권 보장 및 탈장애인시설 요구 관철을 위해 시위를 벌이는 건 (집회 신고만 잘 한다면) 자유다.

그러나 방식이 잘못됐다. 전장연 시위로 인해 실질적 피해를 입는 건 일반 국민들이다. 정부 정책에 불만이 있으면, 국회나 청와대로 찾아가 불만을 호소하면 된다. 왜 정부가 자신들에게 굴복할 때까지 죄 없는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가.

또 민폐를 떠나 지하철 운행을 방해하는 엄연한 불법 시위, 즉 범죄행위다. 전차교통방해죄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받을 수 있으며, 이 외에도 업무방해죄, 재물손괴죄, 집시법 위반, 철도안전법 위반, 옥외광고물법 위반, 경범죄처벌법 위반 등 화려하다.

정부가 귀 막고 시위를 외면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국회는 이들의 요구 사항을 예산에 일부 반영했다. 현재 예비심사를 거친 국회 상임위별 예산안에는 정부안보다 약 6600억원 넘게 증액된 전장연 측 요구사항이 담겨 있다.

국토교통위원회에 특별교통수단 도입 보조 운영비 등을 정부안 대비 631억원 증액된 868억원, 보건복지위에 장애인 활동지원비 등을 정부안 보다 5490억원 증액된 2조 5400억원, 환경노동위원회에 장애인 고용관리 지원을 위해 정부안 보다 274억원 증액된 2438억원 등이 그것이다. 자신들의 의견이 일부 반영됐음에도 여전히 시민들을 볼모로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혹자는 말한다. 장애인들이 겪는 고통에 비하면 출근길 고통은 잠깐이지 않냐고. 하지만 왜 내가, 다른 일반 시민들이 출근길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움직이지 않는 열차 속에서 회사에 늦을까 발을 동동 구르면 ‘아, 장애인 이동권 개선이 꼭 필요하구나’라는 마음이 샘솟을까? 적어도 난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약자 지위를 이용해 되려 시위 방식을 합리화하고, 비판자들을 ‘약자 혐오’로 매도하는 행태가 갑질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시위는 시민이 가진 기본적 권리다. 그러나 권리를 행사하면서 타인에게 불편을 초래하고 피해를 준다면, 권리를 누릴 자격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전장연은 이제라도 이를 깨닫고 애꿎은 시민들을 볼모로 한 불법행위를 중단하길 바란다. 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힘없는 일반 시민들에게 더 이상의 피해를 주지 않길 바란다.

우봉철 기자 wbcmail@dailysports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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