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고 삼가라’는 형벌관리들이 새겨야 할 책 ‘흠흠신서’

‘삼가고 삼가라’는 형벌관리들이 새겨야 할 책 ‘흠흠신서’

  • 기자명 김삼웅 논설고문
  • 입력 2022.12.0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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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선생이 쓴 500여 권의 저술 중에는 책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흠흠신서(欽欽新書)’가 있다. ‘흠(欽)’이란 글자는 ‘공경할 흠’ 자이다. 이 책은 ‘목민심서’, ‘경세유표’와 함께 일표이서(一表二書)로 알려지고 다산의 학문의 핵심 중의 하나로 꼽힌다.

다산은 책의 서문에서 “흠흠이라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삼가고 또 삼가는 것(흠흠)은 본디 형벌을 다스리는 자의 기본이다”고 밝히고 있다. 200년 전인 1822년 다산은 전라도 강진 유배지에서 이 책을 지었다. 백성의 형벌을 다스리는 공직자들은 ‘삼가고 삼가’는 자세로 사법업무에 임하라는 가르침이다.

오늘에 치면 사법 경찰과 수사와 기소권을 갖고 있는 검사들이 사건을 다룰 때 신중하고 공정하게 처리하라는 선철(先哲)의 주장이다.

내용도 200여 년 전의 학자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담았다. 흠흠신서의 내용을 요즘의 법률적 논리로 본다면 형법과 형사소송법상의 살인사건에 대한 형사소추에 관한 절차나 전개과정에 해당하는 부분이지만, 여기에는 법률적 접근만이 아닌 법의학적ㆍ형사학적인 측면을 포괄하고 있으며, 사건의 조사와 시체 검험 등 과학적 접근까지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흠흠신서는 1819년에 완성하여 1822년(임오년)에 30권 10책으로 묶은 법률 관련 저술이다. 저자는 임오년에 쓴 서문에서 저작의 의도를 말하고 있다.

“내가 전에 황해도 곡산부사로 있을 때 왕명을 받들어 옥사를 다스렸고, 내직으로 들어와서 형조참의가 되어 또 이 일을 맡았었다. 그리고 죄를 받아 귀양살이 하며 떠돌아다닌 이후로도 때때로 형사 사건의 정상을 들으면 또한 심심풀이로 형사 사건을 논하고 죄를 판정해 보았는데, 변변치 못한 나의 이 글을 끝에 붙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전발지사(剪跋之詞)로 3권이다. 이들은 모두 30권인데, 흠흠신서라 이름지었다.”

그가 관리 시절 한때 곡산부사와 형조참의가 되어 죄인들을 다스리는 일을 하였다고 하여, 유학자 출신이 어떻게 이토록 일반은 물론 관리들의 범죄행태를 꿰고, 결코 누구라도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범죄의 진상을 규명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는지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정약용은 관직에 있을 때나 귀양살이를 하면서, 본인을 포함하여 수 많은 사람이 억울한 죄명을 뒤집어 쓰고 목숨을 잃거나 곤장을 맞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배지에서는 관리들의 횡포로 ‘죄인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듣고 보았다.

백성들과 하급 관리들의 잘잘못을 가려야 할 목민관들의 행태를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사대부(士大夫)는 어려서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할 때까지 오직 시부(詩賦)나 잡예(雜藝)만 익혔을 뿐이므로 어느날 갑자기 목민관이 되면 어리둥절하여 손쓸 바를 모른다. 그래서 차라리 간사한 아전에게 맡겨버리고는 감히 알아서 처리하지 못하니, 저 재화(財貨)를 숭상하고 의리를 미천히 여기는 간사한 아전이 어찌 법률에 맞게 형벌을 처리하겠는가.”

그래서 쓴 책이 흠흠신서이다. 책의 ‘서문’ 첫 대목에서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고, 형률의 집행에 ‘흠흠’할 것을 역설하는 휴머니스트의 모습이 돋보인다.

“오직 하늘만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또 죽이기도 하니 사람의 생명은 하늘에 매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목민관이 또 그 중간에서 선량한 사람은 편안히 살게 해주고, 죄지은 사람은 잡아다 죽이는 것이니, 이는 하늘의 권한을 드러내 보이는 것일 뿐이다.

사람이 하늘의 권한을 대신 쥐고서 삼가고 두려워할 줄 몰라 털끝만한 일도 세밀히 분별해서 처리하지 않고서 소홀하게 하고 흐릿하게 하여, 살려야 되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죽여야 할 사람은 살리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태연히 편안하게 지낸다. 더구나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얻고 여자에게 미혹되기도 하면서, 백성들의 비참하게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도 그것을 구휼할 줄 모르니, 이는 매우 큰 죄악이 된다.”

1권의 목차 중에 일부를 찾아본다.

강제 자백이 사실대로 바로잡히다/꿈에 알려 주어 시체를 찾다/꿈에 알려 주어 다친 자죽을 알아내다/대신 구속된 죄수가 사실대로 바로잡히다/뜻밖에 걸린 재앙이 사실대로 바로잡히다/덮어쓴 억울한 허물이 밝혀지다/억울한 누명을 덮어씌우기를 금지하는 법조문/꾸미고 속여서 이익을 보려고 고발한 자의 반좌율/얼굴빛을 살펴 살인자를 알아내다/소리를 듣고 살인자를 알아내다/우물을 헤아려 보고 살인임을 알아내다/새를 쏘려다 잘못하여 사람을 맞히다/채소를 훔치려다 잘못 사람을 찌르다/메추리를 잡으려다 잘못 살인을 하다/새를 잡으려다 잘못 사람을 죽이다.

검찰 출신이 대통령이 되고 국가 핵심기관에 검사출신들이 배치되면서 ‘검찰공화국’이니 ‘검찰직할체제’니 하는 여론이 나돈다. 또 법 집행과 재판이 ‘유검무죄 무검유죄’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법집행의 ‘성역’은 갈수록 벽이 높아지고, 어떤 쪽은 대충 넘어가고, 다른 쪽은 “머리카락을 불어가며 흉터를 찾는”다는 ‘취모멱자(吹毛覓疵)’식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과연 오늘의 형사법 집행이 공정한지,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뿐만 아니라 ‘압수수색’이 남용되고 있다는 항변이 거세다. 법집행자들은 200년 전 다산이 그토록 당부했던 ‘삼가고 삼가라’는 말씀을 새기면서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공정하게 행사해야 할 것이다.

김삼웅(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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