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 이래도 좋은가

대학입시 이래도 좋은가

  • 기자명 오세영 교수
  • 입력 2022.11.2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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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통계는 아니지만 이 지구상에는 약 7000여개의 언어가 통용되고 있다고 하니 7000여 민족들이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여러 이견들이 없지는 않으나 일반적으로 민족이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종족을 일컫는 용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가장 교육열이 강한 민족은 어떤 민족일까. 당연히 한민족일지니 이는 OECD가 최근에 발표한 국제학업성취도 평가(PISA 2018)에서 우리 청소년들이 전 세계국가들 중 읽기 2위, 수학 1위, 과학 3위에 오른 것, 전 세계의 그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 한국인의 문맹률이 가장 낮다(1%)고 지적한 유네스코 보고서만을 예로 들어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이 세계, 그 어느 민족국가보다도 입시 경쟁이 심한 나라, 이 세계의 어느 국가보다 사학 열풍에 몸살을 앓는 나라, 이 세계의 어느 국가보다도 가정 경제에서 지출하는 교육비가 많은 나라, 이 세계의 어떤 국가보다도 학생들의 학습시간이 긴 나라, 이 세계의 어느 국가보다도 정부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큰 나라, 그런 나라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 아닌가. 그래서 그런지 최근 어떤 외신外信은 전 세계의 청소년들 가운데서 유독 한국 학생들에게 근시 환자가 많은 이유가 어두운 전등 불 아래서 밤을 새워 공부하는 한국학생들 특유의 면학풍토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같은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평가하는 매우 중요한 행사 하나가 매년 시행되고 있다. 국가가 주관하는 소위 대입 수능고사가 그것인데 그 누구나 대학에 진학하려는 자는 필히 이 고사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올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누가 그 어떤 현학적인 주장을 펴서 합리화한다 하더라도 실제 한국의 학교교육이란 이 국가 시행 수능고사에서 상위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 시험공부를 시키는 교육,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면 대학입시의 관문이라 할 그 ‘수능고사’란 또 무엇인가. 간단히 학생들이 지닌 바 —창조적인 사고력이나 문제 해결의 능력이 아닌— 지식의 부분적 수준을 요령껏 체크하는 시험으로 그 전형적인 문제 양식이 소위 ‘객관식 5지 선다형’ 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다. 즉 어떤 내용을 물은 뒤 그에 대한 속임수의 4개 답과 한 개의 정답 그러니까 그럴듯한 도합 다섯 개 답들을 늘어놓고 정답 하나씩를 찾아내게 하는 방식이다. 그러니 아주 당연하게도 이같은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문제를 풀어가는 사유의 논리나 깊이, 혹은 창조적 상상력의 개발과 같은 정신활동과는 별 관련이 없는, 사물에 대한 어떤 기계적 분석이나 지식의 암기 같은 것들에 전념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좀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숨긴 보물 찾기 놀이나 투전 판의 찍기 도박에서 어떻게 해야 패를 잘 잡을 수 있는지 그 요령을 습득시키는 두뇌 훈련과 별 다름이 없는 행위라 할 것이다.

실제로 요즘 수능 고사장에 가보면 많은 수험자들이 —정답을 맞추기가 애매할 경우— 볼펜이 가는데 따라 답안지에 동그라미를 쳐 넣는 방식으로 시험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문제 풀이를 운수소관에 맡기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학생들이 미래에 어찌 지조 있는 한국의 교양인이나 창조적 사고를 지닌 지식인으로 성장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대부분 시류편승, 기회주의, 이기주의, 요령주의, 물신주의에 오염된 도구적 인간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나라가 —특히 최근의 대선판에서 너무도 적나나하게 드러났듯— 정의와 불의, 진실과 허위, 선과 악, 염(廉)과 치(恥)의 분별이라는, 인륜의 그 가장 근본적인 도리를 저버린 채 대중 최면의 팬덤 현상을 부추기거나 오직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진영의 이득을 좇아 패거리를 짓고 싸우는 것에 영일이 없는 사회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은 누구나 익히 경험했던 바와 같다.

그렇다면 인간이 죽고 물질만 풍요롭게 만드는 이같은 국민교육에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이 세계에서 가장 교육열, 학구열이 강한 나라라고 추켜세워진 우리 대한민국 학교 교육의 실상이란 이처럼 사실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한시 바삐 지금의 학교 교육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교육, 가치 있는 삶이 존중되는 참 교육으로 그 방향을 틀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다른 많은 방안이 있을 수 있겠으나 필자로서는 현행 대학 수능고사의 객관식시험 출제 방식을 과감하게 주관식 시험 출제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그 무엇 보다도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물론 주관식 시험출제방식의 도입에는 당연히, 답안지 채점 상의 객관성 확보와 같은, 문제들의 제기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 구더기 무섭다고 간장 아니 담을 수 없다하지 않던가. 설령 발효과정에 다소 구더기가 생긴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건강한 식단을 위해서 된장이나 간장만큼은 필히 담가 먹어야 한다. 대학의 수능 시험 역시 이와 다를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보다 인간다운 인간, 올바르고 바람직한 교양인으로 길러내기 위해서 이 정도의 부작용 쯤은 감내할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만일 그같은 소명의식으로 우리가 이를 진심껏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또한 국민전체가 하나 되는 점진적인 보완책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서서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그럼에도 물론 —여러가지 이유에서— 이의 전면적인 개혁은 쉽게 이루어지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럴 경우 우리는 이를 우선 인문학분야에서부터 조심스럽게 시행해 나가면 어떨까. 그 교육의 목적이나 학문의 성격상 인문학은 여타의 다른 학문 즉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 기타 응용과학들과 그 본질이 확연하게 달라 주관식 시험 출제와 그 운용이 비교적 용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문학은 그 도야의 목적이 실 생활에 필요한 기술이나 지식과 같은 것들의 습득과는 거리가 먼, 인간다운 인간, 바람직한 인간을 길러내는데 있다. 둘째 인문학적 명제란 그 성격상 본질적으로 어떤 획일적이고도 단일한 답이 있을 수 없다는 것 등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객관식 4지(5지) 선다형’이라는 시험 출제 방식을 처음 개발한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이 정작 그들의 대입 수능고사(혹은 자격고사) —예컨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에서 문학이나 철학 등 인문학 분야 만큼은 애초부터 이같은 객관식 시험 출제 방식을 배제하고 대신 주관식 시험 출제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오세영(시인.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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