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갑작스럽게 불어온 지역 영화제 폐지의 바람

[창간특집] 갑작스럽게 불어온 지역 영화제 폐지의 바람

  • 기자명 박영선 기자
  • 입력 2022.11.21 09:00
  • 수정 2022.12.2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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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국제평화영화제 김형석 부집행위원장·프로그래머..."경제적 가치만 생각하면 할 수 있는 문화 행사 없어"

올해 6월 23일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올림픽메달플라자에서 열린 제4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개막식 현장 (사진=평창국제평화영화제 제공)
올해 6월 23일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올림픽메달플라자에서 열린 제4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개막식 현장 (사진=평창국제평화영화제 제공)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영선 기자] 올해 강원도에서 주관하는 영화제 두 곳이 문을 닫았다. 긴축재정을 돌입한 강원도가 강릉국제영화제, 평창국제평화영화제에 보조금 중단 통보를 전한 것이 발단이었다. 강원도는 “4년간 충분한 재정지원을 해왔고, 현재 긴축재정에 따른 대규모 행사 비용 절감 계획을 수립하면서 보조금 지원 중단을 결정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영화제에 투입됐던 사업비를 지역 예술인과 도민이 쉽게 체감할 수 있는 곳에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화계는 강원도의 이와 같은 통보에 유감을 표했다. 2022년은 코로나19로 한동안 침체기를 겪은 극장가가 활력 찾기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해였다. 지난 3년간 개봉하지 못했던 한국 영화들이 관객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관련 행사도 관객석을

전면 개방하며 오랜 시간 기다려온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거리 두기로 인해 힘든 시간을 견뎌온 크고 작은 지역 행사 주최 측 또한 더욱 활성화될 문화 예술 시장을 기대하며 개최를 준비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 지역 영화제를 향한 강원도의 지원금 중단 통보는 수많은 문화예술인의 예상을 뒤엎는 일이었다.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부집행위원장·프로그래머 김형석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부집행위원장·프로그래머 김형석

이에 본지는 평창국제평화영화제의 첫 출발부터 현재까지 자리를 지켜온 김형석 부집행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전문지 ‘스크린’에서 10년 동안 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해온 그는 이후 10여 년 동안 수많은 매체에서 영화 관련 글을 기고하고 영화제 모더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매년 다양한 영화제와 영화 관련 행사를 기획하며 5-60건의 GV(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해온 김형석 프로그래머는 평창국제평화영화제가 4회를 맞이할 때까지 탄탄한 기반을 다지는 데 전력을 다했다.

2022년 4회를 맞이한 평창국제평화영화제는 지난 2018년 첫 시작을 알렸다. 남북 단일팀이 출전하며 화제를 모았던 평창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강원도라는 지역의 정신적 가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때였다.

김형석 프로그래머는 영화제의 출발점에 대해 “당시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 유일한 분단 지역인 강원도에서 분단에 대한 테마를 다룬 영화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남북평화영화제를 개최했고, 2회 때부터 분단을 포함해 더 큰 평화적 가치를 지향하자는 의미에서 ‘평창국제평화영화제’를 진행하게 됐다”라며 행사가 표방하는 근본적 가치인 ‘평화’에 대해 강조했다.

영화제를 시작했을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인프라 구축이었다. 동계올림픽 개최로 관광객을 비롯한 인구 유입이 늘어났지만, 극장이나 문화 시설이 부족했다. 1회에는 극장 문제로 강릉과 평창 두 곳에 나눠서 작품을 상영해야 했으나 상황은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코로나19 방역 문제가 언급되며 긴장감이 조성됐던 2020년과 2021년에도 평창국제평화영화제는 단 한 명의 감염자 없이 안정적으로 행사를 마쳤다.

김형석 프로그래머는 “그간 힘들었지만, 올해 같은 경우 상영관도 확보했고 지역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며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매년 영화제를 찾는 관객 수도 15-20%씩 점차 증가하던 추세였다”라고 밝히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영화제 존폐 여부에 관한 논쟁이 일어날 때마다 일각에서는 행사가 가진 경제적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김형석 프로그래머는 “경제적 가치만 염두에 두고 생각한다면, 할 수 있는 문화 행사는 없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열리는 영화제의 목적은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칸 영화제나 독일의 베를린 영화제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는 지자체나 정부에서 굉장히 많이 지원을 해준다. 영화 산업 발전과 문화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프랑스 정부는 칸 영화제에 전체 운영비의 50%를, 독일은 베를린국제영화제에 80%를 지원해왔다. 인지도가 높은 행사일수록 타 지원책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높은 비율이다.

2021년 6월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일대에서 열린 제3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GV(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평창국제평화영화제 제공)
2021년 6월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일대에서 열린 제3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GV(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평창국제평화영화제 제공)

그렇다면 지역 영화제의 필요성에 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해 볼 수 있을까. 그는 “영화제는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영화제는 영화 혹은 문화적 이벤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일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에서는 지역 문화 단체들이 결합해 기댈 수 있는 하나의 ‘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제는 기회가 적은 지역 주민들에게 다채로운 영화를 접하고, 창작자를 직접 만나게 하는 능동적인 매개체이기도 하다. 영화를 상영한 뒤 제작진을 만나 소통하는 자리는 그 작품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김형석 프로그래머는“강원도는 워낙 땅은 넓은데 인구가 적다. 의외로 그곳 사람들이 영화를 많이 보지만, 평생 동안 영화를 만든 감독을 직접 만날 기회가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그런 자리를 만들면 유명한 영화가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이 객석을 꽉 채우고, 정말 수준 높은 질문들이 나온다”라며 지역 영화제가 문화 체험 기회를 확장시키는 데 미친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강원도는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지원금 중단을 전달하며 해당 사업비를 지역·청년 예술인에게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김형석 프로그래머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의문점을 내놓았다. 그는 “영화 제작을 지원하는 것만큼 영화를 어떻게, 어디에서 상영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강원도 지역에 단편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많다. 미디어 서클, 대학의 동아리 등에서 만다는 영화들이 일 년에 몇 십 편씩 나온다. 하지만 이 작품들이 상영되기 쉽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원금을 받아 영화를 만드는 데서 그칠 수 없지 않은가. 틀어줄 곳이 필요하다. 다소 미흡한 구석이 있더라도, 상영료가 많지 않더라도 그런 작품들을 틀어줘야 한다. 만들고 난 이후에, 어떻게 마케팅하고 만든 사람과 관객을 만나게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라고 짚었다. 특히, 평창국제평화영화제에서는 그간 ‘시네마틱 강원’이라는 섹션을 통해 강원도 지역 영화를 소개하는 플랫폼 역할을 해왔다.

올해 6월 27일 진행된 제1회 지역영화네트워크 명랑운동회 (사진=평창국제평화영화제 제공)
올해 6월 27일 진행된 제1회 지역영화네트워크 명랑운동회 (사진=평창국제평화영화제 제공)
2022년 6월 진행된 제4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의 지역 영화 지원 프로그램인 '시네마틱 강원' 현장 (사진=평창국제평화영화제 홈페이지)
2022년 6월 진행된 제4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의 지역 영화 지원 프로그램인 '시네마틱 강원' 현장 (사진=평창국제평화영화제 홈페이지)

영화제가 영화산업에 ‘플랫폼’으로서 선명한 가치를 지니는 데는 영화인들 사이에 네트워크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김형석 프로그래머는 “이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영화와 감독 그리고 배우와 스텝이 계속 발굴되는 것”이라며, “(영화제는) 이들이 실력을 인정받고, 성장하며 좋은 작품을 만드는 토대다. 지난해 없어졌지만, ‘곡성’의 나홍진 감독과 ‘부산행’, ‘반도’의 연상호 감독 또한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 새롭게 주목받은 인물들이다. 단편을 만들 때 그렇게 주목을 받고, 심사위원으로 나온 선배 감독들이 끌어 주는 거다. 이런 식의 커뮤니티는 국가에서 아무리 돈을 많이 들여도 조성될 수 없는 환경”이라고 전했다.

크고 작은 영화제를 통해 형성된 네트워크가 지금 영화 산업의 중심에 있는 영화인들에게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만큼, 영화제의 가치를 단기적인 수치로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논의할 점이 많은, 국내 다양한 영화제의 상당수가 최근 개최 중단 선언을 했다. 미장센단편영화제, 인디다큐영화제 등 영화팬들의 지지를 받아온 행사는 물론이고, 지역의 소규모 영화 관련 문화 행사들이 문을 닫았다. 팬데믹 이후 문화 예술계는 업계 정상화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강원도가 내린 예산 지원 중단 통보는, 폐지된 두 개의 영화제뿐 아니라 영화계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지자체의 단독적인 통보가 행사의 존폐를 판가름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김형석 프로그래머는 지자체의 예산 책정과 전달 방식에 대해 “영화계에서도 지금 굉장히 충격을 많이 받았다. 매년 치렀던 연속성 있는 행사들을 문화 지자체장이 행사 보조금을 중단하라는 뜻을 밝히면 그냥 중단이 되는 거다”라고 말했다. 지자체장의 의사에 관해 단체가 지닐 수 있는 법적인 안전장치나 조례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예를 들어, 법적으로 그런 연속성을 지닌 문화 행사를 지자체장이 함부로 축소하거나 지원을 없애지 않고 도의회 혹은 시의회에서 논의하고, 관련 문화단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칠 수 없는 것”이라고 전하며 안타까움을 밝혔다.

영화제 측이 강원도의 예산 관련 소식을 아예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대화를 시도하고자 했으나 통보 직전까지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 “계속 면담 요청을 했다. 지자체 쪽에서 영화제의 예산을 줄여야 한다, 그렇다면 줄이고 개선이 필요하다, 라고 하면 개선안을 만들어 대화를 하려고 했었다”라고 지원 중단을 통보받기까지의 과정을 전했다. “그런 자리라도 한번 거친 다음 ‘영화제를 더 이상 못하게 됐다’라는 얘기를 들었다면 덜 답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8월에 그냥 지원 중단 통보를 받은 것”이라며 깊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강형석 프로그래머는 “앞으로 꽤 긴 기간 동안 강원도에서 누군가 영화제 개최를 구상하거나 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도가 2019년 함께 프로젝트를 세우고 유지한 행사를 하루아침에 뒤집어버렸으니, 보증할 수 있는 게 없는 거다”라며 앞으로에 대한 우려도 밝혔다.

결국 지자체의 예산이 중단됐고, 최종적으로 평창국제평화영화제는 더 이상 행사를 진행할 수 없게 됐다. 사무국은 오는 12월 사라지지만, 법인은 유지한다. 김형석 프로그래머는 여기 그치지 않고 영화제 법인을 통해 도울 수 있는 다양한 지역의 지속가능협의회, 문화 단체와 하께 할 수 있는 영화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이미 평창국제평화영화제는 지난달 21일부터 23일까지 춘천에서 ‘차근차근 상영전’을 개최하며 또 다른 출발을 알렸다. 춘천 지역의 지속가능협의회와 함께 개최한 ‘차근차근 상영전’에서는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 영화 ‘나는 보리’, ‘동물, 원’을 비롯해 켄 로치 감독의 ‘미안해요, 리키’와 같은 작품도 상영했다. 그뿐만 아니라 ‘21PARTY’, 춘천 예술인과 함께 하는 ‘RERE’ 프로젝트, 음악 공연도 함께 했다. 작은 규모였지만 영화와 지속 가능한 가치를 모두 돌아볼 수 있는 축제를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2021년 진행된 제3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작품 상영 현장 (사진=평창국제평화영화제 제공)
2021년 진행된 제3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작품 상영 현장 (사진=평창국제평화영화제 제공)

2022년 한국 영화산업은 대외적으로 큰 성과를 거뒀다.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송강호를 비롯하여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배우 이정재가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국제시장에서 이미 한국 문화의 위상은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았다.

때문에, 김형석 프로그래머는 지자체와 국가가 영화 산업이 가진 ‘미래 가치’에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족한 제작비와 서툰 완성도를 지녔을지라도, 그 작품은 모든 미래 영화인들의 첫 단초이며 아직 다듬어지지 못한 원석일 것이다. 더욱이, 서울과 수도권에 많은 인프라가 집중된 상황에 그 혜택이 닿지 못한 지방 창작자에게 지역 영화제는 중요한 발판이 된다.

이번에 폐지 결정을 내린 두 곳의 영화제가 시사하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강원도에서 재정 긴축이 시급한 사안이라고 밝혔지만, 충분한 소통 없이 지원 중단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점은 문화예술계의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설령 같은 결론에 이르렀더라도, 소통 과정이 어떠했는가에 따라 평가와 전망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굳건한 팬층이 있더라도 하나의 축제가 계속 지속될 수는 없다. 지자체의 환경에 따라, 재정 긴축에 따라 사라지고 생겨나는 행사도 다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 행사가 안정적인 연속성을 갖고 개최 되어야 하는 이유를 ‘경제적 가치’에 치중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문화가 시민들의 삶에서 경제적 가치를 기준으로 소비되지 않듯이 말이다.

 

박영선 기자=djane7106@dailysports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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