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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은 최고의 덕목…귀 있는 자 들어라
  • 오세영 교수 machmj55@naver.com
  • 승인 2022.11.1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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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오직 인간만이 갖고 있는 전유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인간을,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언어란 무엇인가. 상식적으로 말하자면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와는 반대로 인간은 언어(langue)라는 정신적 코드가 있는 까닭에 생각이나 정보를 생산해서 말(parole)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이 언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생각을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인간 다운 인간, 보다 고상한 인간, 보다 고귀한 인간일수록 높은 수준의 언어를 소유한다. 아니 소유할 수 밖에 없다.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는 품격 있는 언어의 구사자를 존경하지 않던가. 동양에서는 옛부터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조차 있었다.

그 품격이야 어떻든 언어는 기본적으로 화자와 청자, 양자가 각기 자신들의 의사를 상호 소통하는데서 성립한다. 그런데 인간의 의식이란 본질적으로 대상을 지향하는 정신 현상임으로 말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이 하는 말을 잘 듣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간난 아이가 말을 배우는 과정을 예의 관찰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언어의 습득 역시 말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그 스스로 혼자 말하는 자는 없다. 그러니 우리, 매사에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에 앞서 먼저 귀를 활짝 열어제치고 상대방이나 타인, 아니 이 우주가 들려주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가만히, 주의 깊게 아니 격의 없이 진심을 기울여 귀를 열면 말만이 말이 아니고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말이다.

사람들은 인간만이 말을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인간의 말’일 경우는 그러하다. 그러나 인간이 아닌 이 세상의 모든 것들도 그들 자신의 말을 한다. 풀은 풀들의 말을 하며, 바위는 바위들의 말을 하며, 강물은 강물들의 말을 한다. 슬픔과 분노를, 기쁨과 사랑을 그들은 그들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은 홀로 살수 없다. 홀로 살 수 없다는 것은 누군가와 더불어 산다는 것, 누군가와 더불어 산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끈에 서로가 묶여 산다는 것이다. 그러니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사물들도 언어를 가져야 한다. 인간이 언어의 끈으로 서로를 묶듯, 어린 딸이 내게 “아빠” 하고 부르면 내가 아빠라는 끈으로 묶여지듯 사물들도 언어의 끈에 묶여 더불어 산다. 그러므로 현명한 자는 귀를 열어 인간의 언어만이 아닌 사물들의 말도 들어야 할 진저.

하늘의 말은 기상이다.

청명한 날씨는 기쁨이며, 흐린 날씨는 슬픔이다. 활짝 개인 날씨라 하지 않던가. 인간은 기쁠 때 활짝 개인 얼굴을 한다. 잔뜩 찌프린 날씨라 하지 않던가. 인간은 또 슬플 때 찌프린 얼굴을 한다. 무척 졸리나 보다. 봄에 아른 아른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꿈꾸나 보다. 동쪽 산마루에 실없이 떠오르는 무지개, 사랑에 빠졌나 보다. 먼 하늘의 흐르는 흰 구름. 어제는 하루 종일 비 내리더니 오늘은 온종일 싸락눈이 뿌렸다. 어제 흘리던 눈물과 오늘 싸늘하게 노려보는 눈빛.

대지의 말은 초목이다.

봄 동산의 난만하게 어우러진 꽃들은 파티에 초청된, 성장한 여인들이 아니던가. 내가 살던 고향의 복숭아꽃, 살구꽃 그리고 아기 진달래는 평안과 안식을, 그 언덕 너머 잘 자란 보리밭은 순탄한 번영을 약속해준다. 그러나 가뭄으로 시들어 버린 작물, 당신의 그 무서운 저주. 해충으로 죽어가는 소나무, 병마에 시달리는 당신의 육신. 오늘 밤에는 살랑 살랑 훈풍이 분다. 달빛 아래서 이루어지는 숲들의 로맨스, 그 속삭임.

바다의 말은 파도이다.

바다는 파도로 말한다. 조용한 파도는 무심한 마음이다. 태풍에 휩쓸린 파도는 물 불을 가리지 않는 격노. 흔히 노도와 같이 성난 마음이라 하지 않던가. 일격에 방파제를 무너뜨리고 포구를 휩쓸어간 해일, 일격에 큰 선박도 침몰시켜버리는 그 격분, 그러나 오늘은 잔잔한 수면 위에 돛배 하나를 실었다. 황혼의 반짝거리는 은빛 물결과 눈부시게 하이얀 돛 폭. 그네의 꿈꾸는 미래.

꽃들의 말은 향기다.

꽃들은 귀가 아닌 우리들의 코에 대고 속삭인다. 무슨 말을 하는지 고개 숙여 코로 향기를 맡아 본다. 은은하게 가슴을 적시는 향기, 당신이 그립다는 말, 코 끝을 톡 쏘는 향기,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말, 상큼하게 얼굴을 간질이는 향기, 잊지 말아달라는 말. 장미는 요염한 향기로 당신을 유혹한다. 매화는 싸늘한 향기로 당신을 훈계한다. 독 버섯은 매운 향기로 당신을 저주한다. 꽃들은 향기로 말하는 것이다.

말만이 말이 아니고 이 세상 모든 것이 말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인간의 말만이 아닌 사물의 말도 들을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다. 하늘이 들려주는 말을, 땅이 들려주는 말을, 꽃과 새와 별이 들려주는 말을…… 왜 파도는 밀려왔다 쏠려가는 지를, 왜 숲은 잎을 피우고 또 떨어뜨리는 지를, 왜 강물은 쉬임 없이 어디론가 흘러가는지를……

그렇다. 그래서 현자는, 아니 시인은 인간의 말만을 듣지 않고 이렇듯 사물의 말까지도 들으려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권력에 눈이 먼 정치인, 그 정치인들에 곡학아세하는 어용 지식인, 그들의 선동과 기만에 놀아나서 패거리 짓기, 팬덤 현상에 빠진 일반 대중은 또 어떤가. 우리 국회에서 일상으로 일어나고 있는 말의 성찬, 정치 잇슈화를 노리는 각 정당의 논평, 각종 사회관계망 서비스에서 회자 되고 있는 그 수많은 억설과 참언 실로 헤아릴 수 없는 언어의 왜곡이 판을 치고 있지 않은가.

민주주의란 수 만 년의 인류 역사가 계발해 낸, 아직은 이 지상에서 최선의 인간다운 정치제도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가장 고귀하고, 가장 품격이 있고, 가장 진실한 언어의 소통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런 까닭에 근대 민주사회에서는 —절대 군주의 명령을 일사 분란하게 따르는— 중세의 봉건 왕정과 달리 상대방과 격의 없이 대화를 주고 받는 토론을 그 무엇보다도 중요시 하게 여긴다. 내 소신을 주장하기에 앞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우선 진지하게 듣는 그 경청이야말로 최고의 덕목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 정치인들은 그 무엇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합리적으로, 정확히 듣는 수련부터 미리 쌓기를 바란다. 하찮다고 생각하는 시인에게서 정치인이 배워야 할 덕목들 중의 하나이다. 어느 성인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귀 있는 자 들어라.

오세영(시인·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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