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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향짙은 만추에 ‘사군자’를 생각한다
  • 김삼웅 논설고문 machmj55@naver.com
  • 승인 2022.11.0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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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이태원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부상자들의 조속한 쾌유를 바랍니다.〉

계절의 순환은 어김이 없어 국화꽃 향내 짙은 가을이 저물고 있다. 우리 선대들은 매화ㆍ난초ㆍ국화ㆍ대나무를 일러 사군자(四君子)라 불렀다. 이른 봄의 추위를 무릅쓰고 가장 먼저 피는 매화, 깊은 산중에서 은은한 향기를 멀리까지 퍼뜨리는 난초, 가을에 늦더위와 추위를 이겨내고 피는 국화, 모든 식물의 잎이 떨어진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계속 유지하는 대나무, 이들 네 가지 식물 특유의 장점을 군자, 즉 덕과 멋과 지절ㆍ학식을 두루 갖춘 사람의 인품에 비유하여 사군자라고 부른 것이다.

흔히 사군자는 수묵(水墨)으로 친다. 수묵은 흑색이 아니라 만색의 합색(合色)이며 또 무채(無彩)인 것이다. 흑(黑)을 색으로 말한다면 까마득한 우주의 현색(玄色)이랄 수 있다. 우리 화가들은 사군자를 즐겨 쳤다. 일반적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하지만, 난은 친다고 한다. 떡을 치는 모습을 상기한다. 화가들 뿐만 아니라 우리 겨레는 사군자를 좋아하여 집 마당에다 심고 가꾸었다. 유교적 충절과 지조, 청빈이 사군자를 아끼는 우리 선비들의 정신적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매화 - 한 해의 새 출발을 알리는 것이 매화다. 설한 중에 눈밭을 헤치고 가장 먼저 피어나는 매화, 그 가지 위에도 사뿐히 눈이 얹혀 있지만 매화는 보시시 눈을 털며 새생명의 찬란한 빛을 세상에 비추는 것이다.

매화의 아름답고 고귀한 자태는 문자로 표현하기보다 역시 그림이 적합했을 지 모른다. 차가운 눈바람 속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나는 매화는 모든 식물이 아직 겨울잠에서 깨어날 생각도 하지 못할 때 밝고 맑은 향기를 품어 내며 꽃을 피운다.

그 성품이 고결하고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는 의지가 있으니 절개 있는 선비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매화는 ‘끈기의 식물’이다. 따라서 끈기와 기운이 없으면 매화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매화를 그릴 때는 먼저 뜻(義)을 세우고 그 자세가 엄숙해야 한다. 마음 속에 뜻과 그림의 형상이 새겨진 뒤 벼락같이 낙필(落筆)하여 몸통, 줄기부터 가지, 꽃, 꽃술의 순서로 그려가야 한다. 때문에 뿌리 등 여섯 부분(根ㆍ幹ㆍ枝ㆍ楩ㆍ條ㆍ化)으로 나뉘는 생태의 기법을 철저히 터득해 둬야 한다.

“매화꽃 다 진 밤에 / 호젓이 달이 밝다

구부러진 가지 하나 / 영창에 비취나니

아리따운 사람을 / 멀리 보내고

빈방에 내 홀로 / 눈을 감아라

비단 옷 감기듯이 / 사늘한 바람결에

떠도는 맑은 향기 / 암암한 옛 양자라

아리따운 사람이 / 다시 오는 듯

보내고 그리는 정도 / 싫지 않다 하여라.(조지훈)”

난초 - “매화는 찬 기운으로 꽃이 피어 그 품위가 맑고 난초는 고요함이 꽃이 되어 기품이 깊고 그윽하다”라 하여 옛 사람들은 매화와 난초를 비교하였다. 사군자 중에서 대나무는 마디가 있지만 꽃이 없고, 매화는 낙화 후에야 잎이 돋우나 난은 아름다운 꽃과 푸른 잎 그리고 그윽한 향을 겸비하였으므로 예부터 문인묵객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난은 종도 다양하지만 그만큼 이명도 많다. 유향(幽香), 향조(香祖), 왕자향(王者香), 도량향(都梁香), 태백향(太白香), 지란(芝蘭) 등으로 높여 불렀다. 그윽한 계곡이나 골짜기에 홀로 향기를 뿜는 난은 고결한 선비가 명수돈행(明修敦行)하는 것과 같아 이욕과 공명을 초개같이 여기는 선비의 자세로 비유되었다. 이것이 곧 군자다운 난의 아름다움이라 여겼다.

“빼어난 가는 잎새 굽은 듯 보드랍고

자주빛 굵은 대공 하양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래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淨)한 모래틈에 뿌리를 서려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받아 사느니라.(이병기)”

국화 - 오래 전부터 만향(晩香)이니, 오상화(傲霜化)니, 선선상중국(鮮鮮霜中鞠) 등으로 상찬되어 왔으며 지절과 정절의 꽃으로 알려져 왔다. 이명도 여러가지여서 제녀화(帝女花), 중양화(重陽花), 절화(節花), 금화(金華) 등으로도 불렸다. 원래 본성이 서방(西方)을 좋아하기 때문에 동쪽 울밑에 심어 동리가색(東籬佳色)이라는 별명도 생겨났다.

우주의 삼라만상이 시들고 퇴락해 가는 계절에 홀로 피어나는 국화의 모습은 마치 우리에게 모진 세상 풍상을 한껏 겪고 살아왔으면서도 스스로의 생을 늘 의젓하고 겸손하게, 너그러우면서도 정절있게 극복한 조용하고도 맑은, 한 품위 있는 선비와 은자의 모습을 연상케 해준다. 국화는 흔히 묵국(墨菊)으로 그려지는데, 묵국은 화려함보다 오히려 오연한 자태를 더 높이 쳤다. 절개를 높여 본 한국인의 정신을 담은 것이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춘풍 다 보내고

낙목한천에 네 홀로 피었는가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 뿐인가 하노라.(이정보)”

대나무 - 조선시대 윤선도는「오우가」에서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곧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저리도 사시에 푸르니/그를 좋아하노라”고 하여 대나무를 벗삼았고, 서거정은『사주집』(四住集)에서 “굽지도 않고 곧고도 발라서 천지간에 맑기가 으뜸” 이라고 대나무의 기상을 상찬했다.

대나무는 푸른 탈속의 취향으로 인해 사군자 중의 군자로 불려왔다. 사시에 푸르러 곧고 굳은 절개가 충의열사에 비유되고 직선적이며 기개가 호연지기하여 많은 문인 문객들이 즐겨 그렸다.

“눈 맞아 휘어진 대를 뉘라서 굽다턴고

굽은 절(節)이면 눈 속에 푸를 소냐

아마도 세한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원천석)”

김삼웅(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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