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역사공부 좀 하시라?

제발 역사공부 좀 하시라?

  • 기자명 김삼웅 논설고문
  • 입력 2022.10.2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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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지켜보거나 겪은 연치라서 그런지, 어지간한 일에는 담담하게 넘기는 편이다. 한데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1일 “조선은 안에서 썩어문드러져 망했다.”는 기사를 보면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여당 대표이면서 국회부의장이기 때문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그것도 부의장의 신분으로 이같은 발언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충격이 컸다.

그는 페이스북에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고 적었다. 이어서 “조선왕조는 무능하고 무지했다”고 주장하며 “일본은 국운을 걸고 청나라와 러시아를 무력으로 제압했고, 쓰러져가는 조선왕조를 집어 삼켰다. 조선은 자신을 지킬 힘이 없었다.”고 덧붙혔다.

그동안 일부 학자나 보수단체에서 가끔 해온 말이고, 일본의 극우세력의 단골 메뉴여서 별로 관심을 접었는데, 집권당 대표가 쓴 글이어서 충격이 컸다. 필자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파문은 이어져 역사학계와 시민단체로 번지고 있다. ‘식민사관’이란 비판이 일자 그는 발언의 사과나 취소가 아니라 “제발 역사공부 좀 하시라. 그건 식민사관이 아니라 역사 그 자체”라고 되받았다.

조선왕조 후기의 군주와 대신들은 그의 말이 아니라도 무능하고 무지했으며 부패했다. 삼정(三政)의 문란과 특히 민씨 척족의 매관매직은 공직의 근간을 뒤흔들고 나라의 곳간을 텅 비게 만들었다. 국방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삼남민란에 이어 1894년 동학농민혁명으로 폭발하였다.

우리나라는 고려후기부터 끊임없이 나타난 왜구들의 분탕질에 시달렸다. 그때는 ‘왜구’들이어서 일본정부의 행위가 아니라고 일단 접어두고, 근세에 이르러 일제의 침략에 맞서 싸운 한일전을 살펴보자.

일본은 1868년 운요호사건을 시발로 “조선을 정벌하자”는 이른바 ‘정한론’을 국시처럼 내걸고 강화도조약, 제물포조약, 한성조약으로 이어지는 침략의 마수를 뻗쳤다.

1894년 동학농민군은 ‘광제창생’과 ‘척왜척양’을 기치로 내걸고 봉기하였다. 국정개혁과 일본ㆍ서양세력을 쫓아내 없앤다는 것이 혁명의 목표였다. 그동안 일본은 조선에서 야금야금 못된 짓을 너무 많이 저지르고 있었다.

동학군의 ‘폐정개혁’에 놀란 일본은 한국에 파병했다. 청국 이홍장과 이토 히로부미가 맺은 ‘톈진조약’을 근거로 삼았지만, 주권국가에 멋대로 들어온 것은 침략행위인 것이다. 막강한 일본군은 스나이더소총과 무라타소총, 여기에 대포까지 끌고 온 데 비해 동학군은 낡은 화승총과 죽창이 전부였다. 전문가들은 양국의 화력 수준이 25 대 1 수준이라 분석한다. 동학군은 황토현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점차 일본군의 화력에 밀려 정진석 위원장의 선거구 이기도 하는 공주의 우금치 전투에서 참패했다. 동학농민군은 20~30만 명이 일본군에 희생되었다.

동학혁명군이 진압되었는 데도 일본군은 물러가지 않고 서울에 눌러앉았다. 그리고 일본군과 대륙낭인을 동원하여 명성황후를 죽이고 시신을 불태워 우물에 버렸으며 경부철도 부설권 등 각종 이권을 챙기고 한일의정서→을사늑약→한일신협약→군대해산→일본군의 남한의병대학살→한국병탄으로 대한제국을 멸망시켜 식민지로 만들었다.

일제가 을사늑약 이래 대한제국의 국권을 탈취하는 데 5년이나 걸린 것은 우리 의병들의 치열한 항쟁때문이었다. 의병의 항쟁은 곧 한일간의 전쟁이다.

비록 조선왕실은 무력하게 굴복했으나 민중은 거세게 저항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의열지사들이 구국전선에 나섰다. 제2기 의병(1905~1907)부터 살펴보면, 최익현ㆍ신돌석ㆍ민종식ㆍ정환직ㆍ정용기ㆍ유시연 의병장이 있었고, 제3기 의병(1907~1909)에는 이강년ㆍ허위ㆍ민긍호ㆍ전해선ㆍ이은찬ㆍ김수민ㆍ한봉주ㆍ안규혼ㆍ기삼연ㆍ심남일 의병장, 제4기 의병(1909~1910)에는 홍범도ㆍ이범윤 의병장이 크게 활약하였다. 의병전쟁에서 20~30만 명이 희생되었다.

침략자 일본군과 싸운 우리 의병은 한일전쟁인데, 일본은 ‘전쟁’이란 말을 쓰지 않고 ‘출병’이란 용어로 호도한다. 조선출병, 만주를 침략하고도 만주출병 또는 진출이란 둔사로 표현하는 등 늘 그런 속임수를 써왔다. 그래서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고 한 것일까.

역사를 왕조사로 보느냐 민중사로 보느냐의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의 민중사는 결코 일제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기미년 3‧1혁명을 비롯하여 봉오동ㆍ청산리대첩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신흥무관학교, 조선의열단, 한인애국단 등의 투쟁은 위대한 독립전쟁이었다. 일본과의 전쟁이었다. 이런 데도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적이 없다”고 할 것인가.

세계 어느 나라의 망국사에 비해 손색이 없는 우리의 독립운동사를 일제와 친일세력의 잡기인 식민사관으로 인식한다면 매우 잘못된 시각이다. 해방 80주년을 앞둔 이제까지 우리 사회 일각에 이같은 식민사관이 활개치는 것은 부끄럽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우리의 항일전은 무장항쟁 말고도 수많은 우국지사들이 독립전선에 피를 뿌렸다. 나철 등의 을사오적 처단투쟁, 전명운ㆍ장인환의 친일외교관 스티븐스 처단, 이재명의 이완용 처단미수,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 등 일일이 헤일 수 없다.

또한 국내외에서 조직된 항일단체의 투쟁은 독립운동사에 생생히 남아 있다. 이같은 위대한 우리 독립운동사를 무능하고 유약한 군주와 부패ㆍ무지한 대신들을 중심으로 하는 왕조사 중심으로 인식하지 말고 “제발 역사공부 좀 했으면” 싶다. 역사는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다.(함석헌)

김삼웅(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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