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 기자명 오세영 교수
  • 입력 2022.09.01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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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어느 외신은,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을 피운다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찾는 일과 같다’고 했다.(영국 <더 타임스>의 기사) 독재 권력에 의해 인권이 유린되기 다반사였고 1인당 국민소득 60불이 채 되지 못했던 한국전쟁 직후의 그 황폐했던 50~60년대, 너무 가난해서, 너무 고달파서, 너무 천대를 받아서 그랬을까. 점심을 굶고 주린 배를 움켜쥐며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우리들은 그래서 항상 ‘아는 것은 힘이다’라는 경귀를 입에 달고 살았다.

금과옥조였다. 교실의 벽이나, 동사무소의 게시판이나, 골목에 서 있는 전봇대나, 달리는 버스의 차창이나 눈에 뜨이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 이 표어가 붙어 있었다. 그뿐인가. 학교장님의 훈화나, 부모님의 질책이나, 동네 아저씨의 격려나 여하튼 그 시절의 대한민국 어른들은 아직 청소년들이었던 우리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였다. “아는 것이 힘이다.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비행기의 피폭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학교. 혹시 남아 있다하더라도 교실 대부분이 군 막사나 병영으로 차출되어버렸던 까닭에 우리들은 교정의 큰 느티나무 기둥에 칠판을 걸어놓고 그늘진 맨땅에 주저앉아 공부를 했다. 멍석이나 가마니가 깔린 바닥은 호사였다. 수업 도중에 가끔 북진하는 미군 비행기 편대의 귀청을 찢는 폭음, 운동장에서 군사 훈련을 하는 군인들의 기합, 승전을 독려하는 길가 시위대의 격앙된 구호 소리로 주의가 산만해지기라도 할라치면 그때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아는 것이 힘이다. 공부 열심히 해라.”’

보고 듣는 모든 것이 그랬다. 그래서 자의건 타의건, 되는 공부건 아니 되는 공부건 어떻든 ‘주린 배를 움켜쥐고’ 우리들은 그 공부라는 것을 열심히 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전쟁 같은 공부였다. 아니 전쟁 바로 그것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당시의 대한민국은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하나는 총을 들고 전선에서, 다른 하나는 펜을 들고 학교에서…… 지금도 매해 반복되고 있는 그 치열한 대학 입시 경쟁을 보면 안다. 그래서 오늘날도 우리들의 대한민국은 그로부터 확립된 이 철통같은 전통을 이어받아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그 공부라는 전쟁을 하고 있지 않은가.

어떻든 상급학교는 진학을 해야 했고 그 진학을 위해선 실력을 길러야 했다. 실력이 부족하면 편법이라도 써야 했다. 조기 등교나 방과 후 과외를 하고, 가정교사를 두고, 학원을 다니고, 족집게 과외 선생을 모시고, 영어 사전을 매일 한 장씩 찢어 먹어 삼키고,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부도덕한 방식으로 스펙을 쌓아 그로써 수시응모를 도모하고…… 그리하여 간신히 턱걸이라도 해서 소위 일류대학 입시에 붙게만 된다면 한 생의 삶을 그런대로 보장받지 않았던가. 출세의 가도를 달릴 수 있지 않았던가. 국가적으로는 그 ‘공부’라는 범국민적 전쟁의 전리품으로 이제 세계의 10대 강국, 1인당 개인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서는 나라가 되어 있지 않는가. 그러니 참으로 맞는 말이었다. ‘아는 것은 힘이다’.

그렇다. 자타가 공인하듯 시방 우리들은 단군 이래로 가장 잘 사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먹거리가 넘쳐나 음식 쓰레기의 처치가 큰 환경문제로 대두한 나라, 집집마다 자가용 승용차를 평균 두 대 이상씩 가지고 있는 나라, 유행에 뒤졌다 하여 엊그제 구입한 새 옷을 오늘 거리낌 없이 버리는 나라,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과체중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나라, 피서철엔 해외로 나가는 항공편 티켓을 구하지 못해 난리를 치는 나라, 수백 수천 만원을 호가하는 명품들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구입하는 나라, 그런 나라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그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누구는 남부럽게 살 수 없다 하여 11살 된 자식과 동반 자살을 결행하고, 누구는 관능과 쾌락의 결과로 태어난 자신들의 간난아이가 짐이 된다하여 강보로 감싸 질식사시키고, 누구는 치매 든 자신의 노모를 굶겨 죽여 냉장고에 숨겨두고, 누구는 일하지 않고 편히 돈을 벌기 위해 순진한 소녀들을 성 노예로 삼아 착취고, 누구는 돈을 강탈하려고 자신의 친구를 흉기로 살해, 그 훼손한 시신을 쓰레기처럼 강물에 버리고, 누구는 퇴폐적인 삶에 이성이 마비되어 자신의 친딸을 성폭행하고…… 이는 너무도 일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이서 이제는 그 어떤 분노조차 느낄 수 없게 된 오늘의 한국, 매일 매일 접하는, 상스런 우리 사회의 뉴스들이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지난 대선 기간에 분명히 보았다. 정치인이건, 기업인이건, 지식인이건, 성직자이건, 노동자이건, 예술인이건, 문화인이건, 관료건, 율사건, 시중의 장삼이사(張三李四) 궁중의 고관대작이건, 이 모두 각자 한통속이 되어 그 누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그 누가 무슨 탈법을 자행해도, 그 누가 무슨 사회악을 범해도, 그 누가 거짓으로 곡학아세(曲學阿世)를 해도, 그 누가 국가를 거덜내도 내 편이면 잘한 일, 네 편이면 못한 일, 내 편이 하는 일은 정의, 네 편이 하면 불의, 그리하여 도무지 정・부정, 의・불의, 진위, 선악의 판단, 아니 그 기준 자체가 아예 사라져 버린 지가 오래된 사회, 그것이 바로 우리 사는 현실이 아닌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떠도는 글들을 한번 읽어보라. 스스로가 자신들을 개, 돼지라고 자조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으므로 이제 선진국이라고 주장한다. 치열한 입시 경쟁의 그 왜곡된 학구열을 마냥 우리 민족이 지닌 고유한 덕목이라고 자찬해 마지않는다. 그렇다. 아는 것이 힘이 되어 우리는 이제 이렇게 되어버렸다. 오직 먹고 사는 데 필요한 학문과 지식, 오직 남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 정략과 기술, 너는 죽든 말든 오직 나만은 잘살아야 하는 명분과 합리, 오로지 그런 것을 진리로 여기고 불철주야 공부를 해서 드디어 우리는 이 지경이 되었다. 그러니 이제 진지하게 한번 반성해 볼 일이다. 지금보다 더 큰 힘을 갖기 위해서 이 같은 공부를 필히 계속해야 하겠는가. 더 이상 지식의 축적만을 위해서 공부를 해서 되겠는가. 더 이상 남과 싸워 이기기 위하여, 남과의 경쟁해서 승리를 거두기 위하여 공부를 해선 되겠는가.

아주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제 우리는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아닌 된다. 우리의 현실이 그러하다.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살까를 알기 위해, 무엇으로 살까를 알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서 단 한편의 시라도, 단 한편의 소설이라도 읽어보기를 권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작은, 이같이 하찮은, 죽어가는 목소리일지라도 이렇게 인문학의 중요성, 인문정신의 발양을 한번 외쳐보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들어라. 아는 것은 힘이 아니다. 아는 것은 인간이다. 아니 인간이어야 한다.

오세영(시인.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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