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보태기 하나는 하나다

하나 보태기 하나는 하나다

  • 기자명 오세영 교수
  • 입력 2022.08.18 09:47
  • 수정 2022.08.1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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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잘 사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시집을 보내면서 어머니는 딸에게 잘살라고 축원한다. 오랜 실직 끝에 직장을 갖게 된 아버지는 첫 출근을 하면서 식솔들에게 우리도 잘살아보자고 한다. 몇 번의 낙선 끝에 모처럼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정치인은 이제는 잘살게 되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돈과 권력과 성애(관능의 충족)을 갖는 일이다, 그래서 서구 최초의 문학작품으로 알려진 그리스의 대서사시 ‘일리어드’도 그 발단은 이 돈과 권력에 얽힌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세 미녀를 앞에 두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누구인지를 심판하게 된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한 미녀는 아시아의 땅(재력)을 모두 주겠다 하고, 다른 미녀는 전쟁이 일어날 때는 항상 승리(권력)를 보장해 주겠다 하고, 또 다른 미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많은 돈을 가진 재벌이나 힘센 권력을 손에 쥔 사람을 잘사는 사람들로 치부한다. 매일 매일 방영되는 TV 인기 드라마의 내용이 모두 그렇지 않던가. 그렇다. 한마디로 재력과 권력을 장악하려는 자들의 암투, 음모, 갈등 그리고 거기에 개입된 남녀의 정욕에 관한 이야기들이 그 전부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들은 아무리 잘 살아도 돈이 없으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한다. 돈만 있으면 죽어가는 사람도 살려낼 수 있다고 한다. 돈이 신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돈으로 인해서 불행해진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어떤 이는 돈 때문에 이혼을 하고, 어떤 이는 돈 때문에 질병을 얻고, 어떤 이는 돈 때문에 증오의 대상이 되고, 어떤 이는 돈 때문에 교도소를 들락거리고 어떤 이는 돈 때문에 자식을 잃고, 어떤 이는 돈 때문에 불의의 사고를 입어 고생하는 것을 보았다. 아마 여러분들은 그와 같은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또한 권력을 휘두르며 사는 것을 잘사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권력이 없으면 헛것이며. 권력이 있어야 돈도 저절로 따라붙는다고 생각한다. 권력만 지니면 이 세상의 그 무슨 짓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권력으로 인해서 불행해진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어떤 이는 권력 때문에 감옥을 가고, 어떤 이는 권력 때문에 증오의 대상이 되고, 어떤 이는 권력 때문에 자살을 하고, 어떤 이는 권력 때문에 친구를 잃는 것을····· 권력은 본질적으로 폭력의 하나인 까닭에 군림하지 않고서는 소유할 수 없다. 그런데 남에게 군림한다는 것은 곧 고독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권력은 누군가로부터 빼앗은 것이므로 언제인가는 빼앗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또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행복이라 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여자와 함께 사는 것을 잘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름다운 여자가 없으면 허무하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여자만 옆에 있으면 그 어떤 일을 해도 항상 즐겁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 그런 것일까.

나는 관능적인 여자로 인해서 불행해진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어떤 이는 성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부모와 자식을 버리고, 어떤 이는 여성의 미모에 사로잡혀 가산을 탕진하고, 어떤 이는 아름다운 여자 때문에 감옥에 가는 것을 보았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 없는 관능만의 충족은 단순한 감각 이상이 아닌 것, 그런데 감각은 가변적이고 육체적이므로 순간적이다. 이 또한 정신적 충족감이 없으니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한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생존에 필요할 만큼의 재력과 인권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돈과 권력과 성애는 본질적으로 물질의 법칙을 따른다. 그러니 물질만이 아니라 영혼도 소유한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영혼의 충족감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물질은 내가 누군가로부터 그것을 얻었듯이 또한 언제인가는 누군가에게 빼앗길 수 있다. 세속적 본능의 충족을 추구했던 ‘일리어드’의 결말 역시 주인공들 모두 그 생이 파멸로 끝나버렸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영혼의 충족감에 이룰 수 있는가, 그것은 물질의 법칙이 아닌 오직 인간의 법칙을 따를 때 얻을 수 있다. 가령 우리는 학교에서 이렇게 배웠다. ‘하나 보태기 하나는 둘이다.’ 그렇다. 하나 보태기 하나가 둘이라는 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이같은 지식을 신주처럼 모시고 일생을 산다. 이런 지식을 많이 지닌 사람이 출세를 하고 돈을 벌고 권력도 잡는 세상이다.

그러나 엄밀히 들여다보자. 하나 보태기 하나는 꼭 둘인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하나 보태기 하나는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아니 셋도, 넷도 될 수 있다. 우리는 여자 하나에 남자 하나를 보탠 것을 부부라 한다. 그런데 부부는 일심동체, 그래서 아이가 다니는 학교로부터 학부형의 호출이 있을 때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가도 매 한 가지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그런 부부 사이에 아이들이 생긴다면 이제 하나 보태기 하나는 셋이 될 수도, 넷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것이 인간의 법칙이다. 그리고 그 인간의 법칙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사랑인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으로 남에게 무언가를 베풀어 주는 것이다. 아마 여러분들은 어느 때인가 남을 위해서 무언가를 베풀어 준 뒤 가슴이 벅차오르는 어떤 마음의 충족감 같은 것을 느껴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오직 당신만의 소유이다. 당신이 만일 그 아무도 실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것을 실천할 수 있었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보다는 가난한 자가 남에게 베풀 때 얻는 행복감이 더 크다. 그들이야말로 아무도 가지지 않은 것을, 아무도 실천할 수 없는 일을 실천할 수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오세영(시인.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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