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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영화 흔적] ③ '일'하고 싶은 사람들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와 ‘나, 다니엘 블레이크’
  • 박영선 기자 djane7106@dailysportshankook.com
  • 승인 2022.08.0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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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박영선 기자] 코로나 19로 한동안 극장 문이 닫혔다. 이제 극장 관람의 시대는 가고, OTT의 시대가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극장 관람 체계에 의지했던 영화 생태계는 큰 혼란을 피할 수 없었다. 엄청난 흥행이 기대됐던 상업영화들은 무기한 개봉을 미뤘고, 독립영화는 더 험난한 시간을 견뎌야 했다. 일상을 환기할 짜릿한 쾌감과 재미를 선사하는 것 못지않게, 우리가 구태여 들여다보지 않은 현실을 스토리와 영상으로 풀이해 감동시키는 것 또한 영화의 힘이다. 이번 특집에서는 이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크고 작은 이야기를 담아낸 국내외 독립·예술 영화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일’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자 자아 실현의 통로다. 우리는 모두 일하지 않고 살 수 없다. 우리는 노동을 통해 삶을 운영한다. 이렇듯 ‘일’은 살기 위해 필수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일’은 생존을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현시대에 이르러 ‘일’은 종류와 방식이 다양해졌고, 정형성을 탈피했다.

‘하고 싶은 것’을 직업으로 삼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일’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타협점인 경우가 많다. 이번 특집에서 다룰 영화는 이 간극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찬실이는 복도 많지’다. 아울러 ‘일’도 구직도 모두 할 수 없는, 제도의 사각지대에 빠진 주인공 다니엘의 이야기를 담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도 함께 다룬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사진=찬란 제공)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독립예술 영화로 유명한 지 감독의 전담 프로듀서 찬실(강말금). 그런데 어느 날, 지 감독님이 돌아가셨다. 그 길로 백수가 된 찬실은 짐을 이고 높은 언덕길 끝에 위치한 원룸으로 이사를 갔다. 지 감독 영화 전문 PD였던 찬실은 꿈은 둘째 치고 당장 먹고 살 돈이 없다.

찬실은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 평소 친한 배우 ‘소피’의 가정부로 일한다. 영화판에서 설 자리를 잃었지만, 찬실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그 주위를 맴돈다.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찬실은 영화가 가장 좋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사진=찬란 제공)

좋아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된 찬실은 ‘하고 싶은 것’ 대신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소피의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자신과 잘 통할 것 같은 ‘영’과 잘 되어 보고도 싶지만 무엇 하나 쉽지 않다. 영화는 직장을 잃게 된 한 여성의 일상을 덤덤한 시선으로 비추고, ‘찬실’은 톡톡 튀는 캐릭터로 몰입도를 높였다.

카메라는 찬바람을 맞으며 동네를 정처 없이 걷는 찬실을 쫓는다. 아버지는 찬실을 위로하기 위해 “지 감독 영화, 사실 별로였다. 잠이 많이 왔다.”라는 손편지를 보내오지만, 그마저도 찬실의 마음을 비껴간다. 그는 급기야, 무례한 영화사 대표에게 “대표님은, 제가 어떻게 일했는지 모르시잖아요.”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항변하기에 이른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사진=찬란 제공)

작품에서 찬실을 위로하는 것은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를 ‘장국영’(김영민)이다. 집주인 할머니(윤여정)의 집과 찬실의 주변에 신출귀몰 하는 남자는 찬실에게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집요하게 묻는다. 영화를 할 수도, 다른 일을 할 수도 없는 찬실이 편히 머무르는 공간은 집주인이 그간 숨겨둔 주인 없는 방뿐이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DVD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찬실의 얼굴은 짝사랑에 실패한 사람처럼 슬프면서도, 눈에는 형형한 빛이 남아 있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산나물 처녀’, ‘겨울의 피아니스트’를 연출한 김초희 감독의 작품이다. 개봉과 동시에 부산국제영화제 3관왕, 청룡영화제·부일영화상·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휩쓸며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배우 강말금은 ‘찬실이는 복도 많지’ 이후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오징어 게임’, 드라마 ‘군검사 도베르만’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약하며 충무로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 했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사진=찬란 제공)

배우 윤여정의 출연도 눈에 띈다. 윤여정은 2020년 열린 ‘찬실이는 복도 많지’ 언론배급시사회에서 "나는 역할은 탐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김초희라는 사람을 잘 안다”라며, “60살이 넘어서는 사치하고 살기로 결심했다. 내가 생각하는 사치는 좋아하는 사람 거 하고, 싫어하는 사람 거 안 하는 거다. 돈 상관없이 하리라고 결심했다"라는 말로 영화를 출연하게 된 계기를 밝히기도 했다.

윤여정은 작품에서 딸을 잃고 뒤늦게 한글을 배우는 집주인으로 분했다. 그는 극중에서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라는 시를 완성한다. 영화를 그만 둘 결심을 세웠던 찬실이 할머니가 서툰 문법으로 써내려간 시를 보고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크리스토퍼 놀란 보다 오스 야스지로를 더 좋다는 찬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다가도, 맡은 일은 ‘애써서’ 해내는 주인공의 모습이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찬실은 “돈 빌려줄까?”라는 동료의 말에 “아니. 일해서 벌어야 한다!”라 외치는 사람이다. 과연 그는 비로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을까?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스틸컷 (사진=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한 남자가 공무원과 대화하고 있다. 공무원은 질병 수당 지급을 위해 사전 조사를 하고 있다. 그는 ‘혼자서 50미터 이상 걸을 수 있는지’, ‘윗주머니까지 양팔을 올릴 수 있는지’, ‘전화기의 버튼을 누를 수 있는지’,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은 적 있는지’ 등을 묻는다. 사지는 멀쩡하지만 심장 문제로 조사를 받는 남자는 답답하다. 미리 제출한 서류에 다 포함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대답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에 지쳤다. 그의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 다니엘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심장병으로 평생 해온 목수 일을 그만뒀다.

다니엘은 일하고 싶다. 그러나 의사 소견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다. 질병 수당을 받고 싶지만 조건 미달로 탈락해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 차선책으로 구직 수당을 받기 위해 이력서를 쓰지만 질병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는 악순환을 마주한다. 게다가 모든 서류 양식은 인터넷으로 작성해야 한다. 평생 목수 일을 하며 컴퓨터를 사용해 본 적 없는 다니엘은 결국 도서관 이용시간 내에 신청서를 완성하지 못한다. 그런 다니엘에게 던져진 질문은 “놀면서 보조금이나 받겠다는 거예요?”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스틸컷 (사진=영화사 진진 제공)

다니엘과 같은 동네에 사는 미혼모 케이티 또한 비슷한 상황이다. 갑작스럽게 런던 집에서 쫓겨난 케이티는 다니엘과 비슷한 이유로 수당을 받지 못한다. 며칠 동안 한 끼도 먹지 못한 케이티가 지원 식품 판매점 구석에서 손으로 통조림 음식을 먹는 장면은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을 현실로 끌어당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미안해요, 리키’를 연출한 켄 로치 감독의 작품으로, 제69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대부분 직업 배우가 아닌 다른 직업에 종사하던 사람들로, 리얼한 연기를 보여주며 극을 이끌었다. 그간 꾸준히 노동자와 복지에 대해 이야기 해온 켄 로치 감독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통해 현대 복지 제도의 사각지대를 집중 조명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스틸컷 (사진=영화사 진진 제공)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제도와 씨름하던 다니엘은 결국 수당 신청을 포기한다. 대신 그가 향한 곳은 센터의 외벽. 다니엘은 스프레이로 “나 다니엘 블레이크. 굶어 죽기 전에 항고일 배정을 요구한다. 상담 전화의 구린 대기음도 바꿔라.”라고 적는다. 그와 같은 실직자와 길을 지나는 시민들은 외벽 앞에 앉은 다니엘에게 박수를 보낸다.

 

편집자의 말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개인적 갈등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면,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사회 제도적 허점을 선명히 들추는 작품이다. 두 작품은 ‘일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던’ 주인공의 고투는 관객들에게 안타까움과 동질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다니엘의 투쟁에서 그간 몰랐던 제도의 허점을 본다. 작품은 엄격한 기준과 심사는 불공정을 막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지만, 거기서 비롯된 모순과 비효율성을 짚는다. 관객은 그 장면을 통해 다니엘과 케이티의 허기를 함께 느낀다.

영화 잡지와 비디오를 모두 처분하려던 찬실은 다시 노트북을 열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나만 포기하지 않으면 인생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 속절없이 무너져 바닥을 쳐도 나에게 손을 뻗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찬실이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여기 있다. 찬실은 이 점을 곱씹으며 랜턴을 들고 동료들과 검게 잠긴 숲을 걷는다.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에요”라고 정의 내린 찬실. 보름달을 보며 ‘우리가 믿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찬실의 기도는 일에 대한 애정과 꿈을 잃지 않은 한 어른의 간절한 희망을 보여준다.

 

박영선 기자 djane7106@dailysports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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