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수염나고도 여물드는 옥수수’

청년과 ‘수염나고도 여물드는 옥수수’

  • 기자명 김삼웅 논설고문
  • 입력 2022.07.2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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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바야흐로 옥수수의 철이다. 적당히 익은 옥수수를 베어먹는 맛이란 삼복 중의 별미에 속한다. 옥수수는 우리 토산품으로 전국 어느 곳에서나 잘 자란다. 척박한 땅도 비옥한 땅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선지 우리 문인들은 옥수수를 무척 아끼고 관찰했다.

“옥수수밭은 일대 관병식(觀兵式)입니다. 바람이 불면 갑주(甲胄) 부딪히는 소리가 우수수 납니다.”―이 상 ‘산촌여정’

“아이는 옥수수를 좋아했다. 옥수수를 줄줄이 다음다음 알알이 뜯어먹는 맛이 참 재미도 있다. 알이 배고 줄이 곧은 자루면 엄지손가락 켠의 손바닥으로 될수록 여러 알을 한꺼번에 눌러 밀어 얼마나 많이 붙은 쌍둥이를 떼어 낼 수 있나, 누이와 내기하기도 했었다.” - 황원 ‘별’

“알이 치열(齒列)처럼 꼭꼭 박혀 있는 것도 단정하고 예쁘게 보이나 한 이삭이 여느 것의 곱절은 되게 탐스럽다.”―안수길 ‘북간도’

옥수수는 쌀이나 밀을 압도할 만큼 단위면적 당 생산량이 많고 수확 기간도 짧으며 토질ㆍ 수질을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 뿐만 아니라 복잡한 가공과정이 없으며 삶아 먹거나 구워 먹기가 쉽다. 또한 소나 돼지의 사료로도 많이 활용되는 식품이다.

전기구적 이상기후로 쌀과 밀의 수확량이 크게 감소하는 터에 옥수수는 인류의 대체식량으로 각광받고 있다. 병충해에도 강한 편이다. 과학적인 근거는 충분하지 않지만 알맹이 하나를 심으면 가장 많은 열매를 맺는 것도 옥수수가 아닐까 싶다.

옥수수는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는 단성화이다. 옥수수수염이라 부르는 것이 옥수수의 암꽃이며, 옥수수대 위쪽에서 피는 벼처럼 달리는 이삭이 수꽃이다. 옥수수는 풍매화라서 바람이 불면 수꽃의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 암꽃에 들러붙어 수정한다. 벌과 나비의 도움 없이도 자연수정이 가능한 것이다.

옥수수를 소환한 데는 까닭이 있다. 옥수수의 비극인지, 생태 현상인지, 옥수수는 여물이 들기도 전에 수염이 난다는 사실이다. ‘옥수수의 비극’은 한국의 정계와 대학가에서도 빚어지고 있다.

지난해 6월 11일 전당대회에서 36세의 젊은 나이에 제1야당 당수로 등극한 이준석 국민의 힘 대표가 당 중앙윤리위원회에서 ‘당원권 6개월 정지’의 의결과 함께 대표의 직무권한이 정지되었다. 경찰이 수사 중인 성 상납이라는 죄상이 사실로 드러날 지 여부에 따라 그의 정치생명은 좌우될 것이다.

꼰대정당이라 불리던 보수정당에서 혜성같이 나타나 쟁쟁한 정치인들을 꺾고 대표가 되어 대선과 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런데 ‘성 상납’이라는 용납하기 어려운 전과가 사실이라면 본인은 물론 모처럼 열린 청년 정치에 큰 타격이 될 것이다. 여권 내부의 음모론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배경이 섥혀 현 시점에서는 경찰의 수사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경우는 크게 다르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선대위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박지현씨는 20대 여성으로 전통 야당의 맥을 잇는 원내 제1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의 직위에 올랐다. 이 역시 초유의 일이다. 그런데 8월의 당대표 선거에는 후보등록 자체가 무산되었다. ‘입당 6개월’이라는 당규 때문이다. 그는 이를 수용했다.

앞의 두 청년 정치인과는 다른 청년들 얘기다. 지난 6월 연세대생 3명이 대학내 집회를 하고 있는 청소ㆍ경비노동자들을 형사고소한데 이어 민사소송까지 제기하여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고소장에서 청소ㆍ경비노동자들이 지난 4월부터 시급 400원 인상과 사워실 설치를 요구하는 시위를 계속해 학습권이 침해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수업료와 정신적 손해배상, 정신과 치료비 등 638만원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이 금액은 그들이 고소한 청소노동자들의 4개월 치 급여에 해당된다. 누구나 권리가 침해당하면 피해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이것은 헌법적 가치에 속한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에 속한 사람들의 생존권 보장 요구를 학생들이 ‘학습권’을 내세워 거액의 송사를 제기한 것이 과연 사회정의와 사회통념상 합당한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자신들의 학습권이 노동자들의 생존권보다 우선한다는 특권의식이라면 지나치다. 비록 소수의 학생들이지만 양식에 반한다는 거센 비판이 일었다. 아무리 법치만능주의 시대라 해도 상식의 선이란 게 있게 마련이다. 더욱이 이들은 정의와 상식을 가치로 배우는 대학생이 아닌가.

여기에서 ‘옥수수의 비극’ 즉 여물이 들기도 전에 수염이나는 옥수수의 비극을 다시 생각케 한다.

실제로 옥수수는 여물이 들기도 전에 수염이 나는 것은 오랜 생존의 과정에 속한다. 이를 사람들이 비정상의 시각으로 바라볼 뿐이다. 분명한 사실은 옥수수는 수염이 나고서도 튼실 하게 여물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당이 어려울 때 영입되어 써먹고, 두 차례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는데, 토사구팽되었다고 생각하는 이준석 대표는 ‘죄 없음’이 밝혀진다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입당 6개월’의 당규에 걸려 뜻을 펼 기회를 갖지 못한 박지현 전위원장은 출발선의 좌절을 극복한다면 잠재력으로 보아 보다 넓은 광장이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정치인들과 청소노동자들 소송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옥수수의 비극’을 넘어 옥수수는 수염이 나면서도 여물이 드는 ‘옥수수의 생태’를 배웠으면 싶다.

“청년이여, 청년이여, 항상 정의와 더불어 있어라. 만약 정의의 관념이 그대 속에서 희박하게 되면, 그대는 모든 위험에 빠지게 되리라”―에밀 졸라.

“한 청년을 유능하게 훈련하는 공은 성(城) 하나를 전취하는 것보다 뛰어난 일이다.”―P. 멜란히토.

김삼웅(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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