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인문학이다

  • 기자명 오세영 교수
  • 입력 2022.07.21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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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이란 모르는 그 무엇에 대해 알고자 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어원적으로 영어의 ‘science’, 독일어의 ‘Wissenschaft’가 다 그러하다. 한국어 ‘학문’도 배울 ‘학學’ 물을 ‘문問’자의 합성어 아닌가.

그렇다면 인간이 알고자 하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리의 인식기관이 접하는 이 세상 모든 사물들일 터이니 이를 세세히 열거하려는 시도 자체가 부질없는 일, 다만 우리는 그 범주를 세 가지 영역 정도로 나누어 살펴볼 수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첫째, 나 자신을 포함한 인간이다. 먼저 자신을, 인간을 알아야 존재의 정체성이 확립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의 연구를 인문과학(인문학)이라고 한다. 둘째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그 인간들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영체 즉 부족이나 민족, 국가와 같은 사회이다. 이의 연구를 사회과학이라 부른다. 셋째 인간의 생존을 영위케 하는 물적 토대 즉 자연환경이다. 이의 연구를 자연과학이라 부른다. 이 외에는 없다.

그렇다면 그 중 어떤 학문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문이다. 우열을 따져 굳이 순위를 매긴다는 것이 가능한 일도, 필요한 일도 아닌 까닭이다. 그럼에도 거기엔 간과할 수 없는(혹은 간과해선 아니 되는) 한 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히 있다. 그 중심에는 항상, 혹은 절대적으로, 인문학(인문과학)이 자리하고 있거나 자리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세상의 주인이 인간이고 그 외 모든 것들은 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들이니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유독 그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모두 물신주의와 배금사상에 물들어 너 나 가릴 것 없이 돈과 권력과 쾌락에 탐익하고 있다. 내게 이익이 되면 거짓도 진실이며. 내가 속한 집단에 이익이 되면 악도 선이 되며, 내가 지지하는 진영에 이익이 되면 불의도 정의이다. 우리들, 그중에서도 특히 정치인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 기만과 선동, 그 어떤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라도 동원해 이를 합리화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권력을 쥐는 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쾌락을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금 우리 사회가 인문학을 천시하고, 인문학자들을 하대하고, 더 나아가 대학이나, 일반 국민 교육에서 인문교육이나 인문학 그 자체를 날로 퇴출시키고 있는 현상은 오히려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인간이 가는 길을 포기하고 짐승이나 물질이 가는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런 시대일수록, 아니 이런 시대임으로 오히려 더 인문학의 중요성을 보다 강조해야 되지 않겠는가. 인문학이나 그 추구하는 바 인문 정신이 그나마 이렇듯 병들고 타락한 우리의 현실을 다소라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즉 우리 정부나 이 나라의 국가 권력은 이제 립 서비스차원으로, 면피성 발언으로 양두구육 인문학의 중요성을 말로만 외치지 말고, 인문학을 통해서 어떻게 경제적, 정치적 이득을 쥐어 짜낼 수 있을까를 도모하지 말고 진정 인문학 그 자체의 순수성을 존중하여 인문학을 융성시키고 우리 국민의 인문정신 함양에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다.

원래 인문학이란 경제 생산의 도구가 될 수 있는 학문이 아니다. 한 인간을 인간다운 인간으로 기르는 일은 그 자체가 자본을 투자하여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는 사업이지 어찌 이로써 그 무슨 경제적 이득을 챙길 수 있다는 말인가. 만에 하나 그 챙길 어떤 경제적 이득이 있을 수 있다면 먼 후일 그 투자의 결과로 실현될 인간다운 우리 사회, 인간다운 우리의 삶, 그 자체일 뿐이다. 그러므로 요즘 우리 경제가 어려우니 인문학을 통해 무언가 탈출구를 찾아보자 혹은 인문학을 돈벌이 수단으로 한번 이용해보자 하는 생각은 애초부터 물신주의에 함몰된 망상이자 천민자본주의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의 핵심 분야라 할 문학이나 역사 그리고 철학에서는 이미 많은 연구 업적들을 남겨 놓은 바 있으니 —학문이 아닌 창작으로서의 우리의 현대 문학을 한번 살펴보도록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떤 시인은 ‘어머님 심부름으로 이 세상 나왔다가/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가는’ 존재라고 한다(조병화, ‘꿈의 귀향’). 어떤 시인은 하늘나라에서 이 세상으로 잠깐 소풍을 나온 유람객이라고 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천상병 ’귀천‘). 어떤 시인은 저 세상에서 공부를 하러 이 세상에 내려온 유학생이라고도 한다.

 

나 귀국하면 여기서 받은 학위로

높은 관직을 탐하지 않으리.

나 귀국하면 여기서 얻은 기술로

큰 돈을 벌려 하지 않으리.

한적한 길가, 사이프러스 시원한 그늘 아래

조그마한 빵 가게를 하나 차려

착한 셰프가 되리.

여기서 구한 사랑과 연민과 용서를 조국으로 가져가

빵으로 구워서

슬프고도 가난한 내 이웃과 함께 같이

나눠 먹으며 살리.

나 죽어서 저승으로 돌아가면 결코

여기서 배운 지식으로 권력을, 명예를 탐하지 않고

일개 셰프가 되리.

사랑과 연민과 용서를 눈물로 반죽한

그 소박한 한 덩이의 빵,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내 이웃과 함께 더불어

아침마다 나눠 먹으며 살리.

머지 않은 날, 이 유학생활이 끝나

나 조국으로 돌아가면……

- 오세영 ‘유학’

 

그렇다면 이제 우리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대충 짐작이 가지 않는가. 어머니가 주신 그 어떤 소명을 충실히 받들어 이 세상을 인간답게 만들 것인가. 그 어떤 기도하는 마음으로 우리 사는 세상을 아름답게 꾸밀 것인가, 그 어떤 참되고도 어진 것을 배워 이 병든 세상을 치유할 것인가.

오세영(시인·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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