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무게’ 가볍지 않습니다

‘죽음의 무게’ 가볍지 않습니다

  • 기자명 김삼웅 논설고문
  • 입력 2022.05.2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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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의병장 이강년선생을 필두로 수많은 의병, 기미년 3ㆍ1혁명기에 유관순열사를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 해방 후 조봉암선생 등 수많은 민족ㆍ민주인사들의 생명을 빼앗거나 옥고를 치른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 민족의 수난과 겨레의 양심이 공존하는 이곳에서 김재규장군은 1980년 5월 24일 오전 7시, “나는 국민을 위해 할 일을 하고 갑니다. 나의 부하들은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아직 청청한 나이의 쉰 네 살, 10ㆍ26거사를 통해 유신독재자를 제거한 지 6개월 28일만입니다. 이날은 유신독재자의 충직한 후계자 전두환 반란군이 광주에서 민주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하던 때입니다.

그로부터 옹근 4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미국의 인권운동가이자 목사인 마틴 루터 킹은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비명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라고 말했지요. 유신의 심장을 멈추게 하여 민주화의 숨통을 트고 많은 국민의 희생을 막은 ‘10ㆍ26거사’는 독재자의 죽음으로만 인식될 뿐, 거사의 의미와 그 주역은 여전히 ‘내란목적살인’의 멍에를 벗지 못한 채입니다.

유신독재자의 아류들이 지배하는 사법의 3심보다 역사의 심판인 4심을 믿고, 기꺼이 모든 기득권과 개인적인 인연과 심지어 생명까지 내걸면서 거사에 나섰던 ‘10ㆍ26정신’은 42년의 풍상에도 온전한 부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은 여전합니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했지요. 알제리아 전쟁이 한참일 때 신학교수 카잘리스는 “폭력에는 자유케하는 폭력과 속박하는 폭력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이에 서구 대표급의 지성인 뒤베르제ㆍ도메나 등이 동조했지요. 예를 들어, “알제리아 전쟁동안 민족해방전선은 프랑스의 식민지 해방운동에서부터 인민을 해방시키는 폭력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폭력은 정죄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이 특수한 폭력은 묵인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중근의사는 한국과 동양의 평화와 국민들의 해방과 자유를 위해 가톨릭신자의 신분으로 일제 침략세력의 원흉인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하는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를 두고 아직도 일본 일각에서는 암살자ㆍ테러리스트 운운합니다. 이토의 행위는 ‘속박하는 폭력’이고 안 의사가 이토를 처단하는 것은 ‘자유케 하는 폭력’이었습니다.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는 ‘일살십활론(一殺十活論)’을 폈습니다. 대사가 길을 가는데 큰 독사가 까치새끼 10마리를 집어삼키려 듭니다. 대사는 거침없이 지팡이로 독사를 내리쳤지요. 제자가 ‘불살생’의 계율을 물으니 “한 마리 독사를 죽임으로써 열 마리의 죄없는 까치새끼를 살리는 것이 참 불법의 가르침”이라 답합니다.

독일 나치시대의 목사 디트로히 본 회퍼는 독일과 유럽 나아가서는 세계평화를 유린하는 히틀러 제거에 나셨다가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교수형을 당했지요. 그는 말했습니다. “미친 운전사에 희생된 사람의 장례를 치르는 일보다 먼저 핸들을 빼앗는 것이 진정한 목사의 직분이다.”

유신독재자의 최측근 차지철이 부마민주항쟁을 보고 “캄보디아에서는 200~300만 명을 죽였는데, 우리도 반정부 폭도를 그렇게 처단하면 조용해진다”고 했지요. 10ㆍ26 거사가 아니었으면 이것은 ‘실제상황’이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1980년 5월 광주 이전에 부산이나 서울 또는 다른 지역에서 엄청난 사태가 벌어졌을 지 모릅니다. 또한 유신체제는 더 연장되고, 민주주의는 고사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독재자 푸틴 러시아 군대의 우크라이나 시민 살상극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김재규장군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제거” 함으로써 엄청난 국민의 유혈참사를 막았습니다. 본인은 ‘야수의 심장’이라고 겸허한 표현을 사용했으나 실제는 ‘민주혁명’의 거사입니다.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한 이토의 심장을 제거한 안중근의 의거와, 대한민국의 정체인 민주공화제를 짓밟은 유신독재자의 심장을 멈추게 한 거사는 격과 결이 다르지 않습니다.

근대 이후 서양에서는 폭군방벌론이 민주주의의 기본철학이 되고, 동양에서는 2천년도 더 지난 시대에 맹자의 폭군방벌사상에서 나타났습니다. “인(仁)과 의(義)를 해치는 자는 이미 군주가 아니라 일개 야인과 다를 바가 없다. 일개 야인인 걸과 주를 죽였다는 말을 들었지만 군주를 반역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김재규장군의 10ㆍ26 거사는 이런 맥락에서 시민저항권사상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년전 이맘 때 (2020년 5월) JTBC가 ‘10ㆍ26재판 당시 김재규 육성’을 통해 육성 테이프 53개를 공개했습니다. 핵심 내용은 군사재판이 법관들의 ‘법과 양심’에 따라 진행된 것이 아니라, 전두환의 군부실세들이 ‘쪽지’를 통해 재판에 개입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유족이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재판은 여전히 부지하세월격입니다. 다시 한번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점을 사법부는 깨달아야 합니다.

김재규장군께 전하고 싶습니다. 사법부가 늦장을 부리고, 역사의 심판인 4심의 담당자(지식인)들이 유신잔재들의 눈치를 살피고, 선한 사람들의 침묵이 계속되고 있지만, 오래지 않아 역사의 큰 흐름은 반드시 시비곡직을 가리고 ‘국민을 위해 할 일을 하고 간’ 장군의 거사를 고딕체로 기록할 것입니다. 42년 전 장군께서 민주제단에 바친 ‘죽음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김재규장군의 유언 마지막 대목입니다.

나는 아무 누구의 염려 없이 아주 유쾌하고 또 명예스럽고 또 이런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했다는 그 자부와 내가 이렇게 감으로써 자유민주주의는 확실히 보장되었다는 이러한 또 확신과 이걸 가지고 나는 즐겁게 갑니다.

아무쪼록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영원한 그러한 발전과 10.26 민주회복 혁명, 이 정신이 영원히 빛날 것을 저는 믿고 또 빌면서 갑니다.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마음껏 만끽하십시오.

김삼웅(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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