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인 측근들이 새겨들을 ‘말솜씨’

당선인 측근들이 새겨들을 ‘말솜씨’

  • 기자명 김삼웅 논설고문
  • 입력 2022.03.3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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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정권)가 있고 정당이 존재하고 국회가 활동하는데 정치가 없었다. 그 자리에 정파 간의 날선 공방이 오갈 뿐이었다. 다행히 지난 28일 저녁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만찬회동으로 신구 권력 간의 막혔던 물꼬가 트였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는 ‘예상된 비상사건’이고,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자칫 불똥이 타이완으로 번질 개연성이 없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정세는 이제 어김없이 다시 신냉전 구조로 굳어져 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과 러시아)이 큰 축을 이루지만 미국 쪽에는 한국과 일본, 중국 쪽에는 북한이 편입되는 형국이다. 열전ㆍ냉전ㆍ신냉전ㆍ탈냉전을 모두 겪은 우리가 아닌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중국에서 타이완으로 불길이 옮겨지면 한반도는 ‘대안의 불구경’이나 해도 되는 형편인가 묻게 된다. 지나친 억측이라면 다행이겠다.
권력교체기에 어느 정도 갈등이 따르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같은 정당끼리의 권력이양이 아닌 정권의 교체에는 더욱 그러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농단으로 탄핵되어 퇴진한 후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10년 주기설의 교체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5년 만에 권력을 내놓게 되었다. 반면에 폐족 상태이던 상대측은 문재인 쪽 인물을 받아들여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이이제이식 수법이랄까. 이런 과정에서 상호 간에 얽히고설킨 감정이 도사리고, 여기에 0.73%포인트의 근소한 득표 차이, 또 임박한 지자체 선거의 샅바싸움의 성격도 작용하는 것 같다. 가히 삼각함수 이상의 셈법이 뒤섞였음을 알 수 있다. 
역대 최소의 표 차이에도 패자가 흔쾌히 결과에 승복할 만큼 성숙해진 우리 민주주의의 현 주소다. 그럼에도 신ㆍ구 권력 간에 불협화음이 계속되고 갈등이 심화되는 모양새는 좋아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지금 내외의 상황은 태평성대가 아닌, 어느 시기보다 불확실성이 심한 때가 아닌가. 
국민의 여론조사에서는 청와대 이전 문제 등 굵직한 이슈의 많은 책임을 당선인 쪽에 묻고 있다. 당선인 측은 스스로 말했듯이 점령군이 아니다. 헌법과 법률에 따른 절차 그리고 관행을 존중하면서 정권을 이양받는 것이 순리다. 그런데 과잉인지 고집인지 아집인지 일방통행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일곱자형 선거공약인 ‘여성가족부 폐지’는 취임하여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등 관련 법률의 개정을 통해 처리할 수 있다. 아무리 선거공약이래도 법치주의 국가인 나라에서 행정수반의 임의대로 정부 기구를 없애거나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막스 베버의 말이다. “정치란 정열과 관찰력을 함께 가지고 굳은 판자에 힘들여 구멍을 조금씩 뚫어가는 작업이다. 이 세상이 자기가 제공하려고 하는 것에 비하여 엄청나게 천하고 바보같이 보여도 ‘그래도 또’ 하고 소리치고 결코 좌절되지 않는 자, 오직 그런 자만이 정치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Mㆍ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여기서 주목할 점은 ‘굳은 판자’이다. 아무리 판자에 구멍 뚫는 일이 힘겹다고 망치로 두들겨 패거나 용광로에 집어넣어 녹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쿠데타 아니면 혁명에 속한다. 힘이 들더라도 다듬고 설득해서 합의를 도출해가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이고 정치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만 해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아 하는 국민이 많은 것 같다. 여론조사 수치로는 찬성보다 반대가 앞선다. 더욱이 지금은 남북관계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다. 대통령 집무실은 청와대냐 용산이냐를 떠나 국가의 1급 위기 관리장소이다. 국가안보와 자연재난 등 예측불허의 상황에 대비하여 촌각이라도 소홀히 하거나 빈틈이 있어선 안 되는 곳이다. 
이런 것을 모를 리 없는 당선인과 측근들이 취임 전에 굳이 옮기겠다는 강경론은 쉬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해서 세간에서는 풍수지리설ㆍ무당설 등 근거 없는 비어가 유언으로 나돌게 되었다.
그렇다고 청와대를 시급히 돌려달라는 국민이 많은 것도 아니고 5월 10일부터 그곳을 산책하겠다고 시위하는 시민도 보이지 않는 터이다. 당선인이나 측근들이 입만 열면 통합과 협치를 말하면서 막상 행동은 일방적ㆍ독선적이라면 정권교체에 대한 의미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또한 대통령 집무실의 이전 비용을 두고 전ㆍ현 권력 간에 액수의 차이가 많지만, 국가의 예비비는 일차적으로 산불화재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재민들과, 그칠 줄 모르고 지속되는 코로나 역병으로 생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을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데 써야 하는 예산이 아닌가? 이것은 선거과정에서 후보들이 공약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평화적정권교체는 우리 국민이 백색독재와 군사독재와 피 흘리며 싸워서 얻은 소중한 가치이다. 그리고 정권이란 5년 임기로 위임받은, 쉽게 비유하자면 전셋집살이와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당선인 주변에는 언행에서 도를 넘는 자들이 많아 보이고, 마치 절대권력을 취득한 것인 양 칼을 휘두르려는 자들이 설친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우리 국민이다. 70여 년 만에 저개발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고, 군사독재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지킨 시민들이다. 이런 국민을 상대로 상식에 어긋나거나 이치에 맞지 않거나 불법 탈법의 처사가 계속되면 국민이 가만있지 않는다. 조선왕조의 극심했던 정쟁에 가만히 있다가 나라가 망하고 그래서 식민지를 겪은 이후에는 독재ㆍ부패정권을 용납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다가는 ‘소금가마니 신세’로 전락한 아픔을 알았기 때문이다. 
흔히 정치를 ‘말로 하는 전쟁’이라 하지만 말에는 각자의 품격과 인품이 따라야 한다. 말로 입은 상처는 칼에 맞아 입은 상처보다 더 아프다고 하지 않던가. 중국인 학자 렁청진(冷成金)이 쓴 ‘지전(智典)’에서 ‘정치인의 말솜씨’의 의미는 새 권력자들이 새겨들을 만하다. 
“우리는 여기서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다음과 같은 사고를 먼저 확립할 필요가 있다. 즉, 정치란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건이 아니라 열정이 필요한 예술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전제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정치를 흥미진진한 것으로, 또 풍부한 매력을 지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정치에 예술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면, 정치인은 무엇보다 먼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예술적 재능을 겸비해야 한다.
이 예술적 재능 혹은 리더십은 주로 탁월한 언어 구사력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역대의 성공한 정치인들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언어 예술의 소유자였다. 그들은 책략가도 아니고 극작가도 아니었지만 자신들의 말솜씨를 통하여 풍부한 정치적 지혜를 보여주었는데, 이것이야말로 후세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다.”

김삼웅(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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