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패배에도 빛났던 전력 질주

[기자수첩] 패배에도 빛났던 전력 질주

  • 기자명 우봉철 기자
  • 입력 2021.12.02 09:00
  • 수정 2022.03.2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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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스포츠에서 팬이 원하는 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승리일 것이다. 그러나 승리 외에도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것이 있다. 그중 하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다.

어느덧 2021년이 끝나가고 올 한해 축구팬들에게 희로애락을 선물했던 K리그1도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전북 현대와 울산 현대가 우승을 다투는 가운데 매 경기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상황. 전북은 도망가야 하고, 울산을 따라가야 하는 시점에서 양 팀 선수들은 매번 혈전을 치르고 있다.

지난달 21일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1 36라운드 수원FC 원정 경기 역시 전북으로서는 반드시 이겨야만 했던 경기다. 경기 전 김상식 전북 감독은 필승 의지를 다졌고, 선수들 역시 결연한 표정으로 경기에 임했다. 원정석을 가득 메운 전북 원정팬 역시 연신 손뼉을 치며 선수들을 응원했다.

원정팬들의 열렬한 응원에도 이날 전북은 먼저 2골을 내주고 끌려갔다. “승리하지 못했던 지난 경기와는 다른 양상일 것”이라고 호언장담 했던 김상식 감독의 표정은 굳었고, 전북 팬들의 응원 도구도 움직임을 멈췄다.

이대로 무너질 것 같았던 전북은 후반전 들어 힘을 내기 시작했다. 결국 후반 31분 문선민이 득점에 성공하며 추격을 알렸다. 인상적인 장면은 득점 직후 나왔다. 골을 넣은 문선민이 자신의 골문 쪽으로 전력질주한 것. 세리머니가 아니었다. 공을 중앙선에 갖다 놓기 위한 질주였다. 기뻐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경기를 재개시켜 동점까지 만들겠다는 각오가 담긴 움직임이었다. 그가 얼마나 승리를 간절히 원하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팬들은 이런 투지를 좋아한다. 경기력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이 보여주는 열정에 감동받는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 선수가 이른바 ‘병장 축구’라고 불리는 설렁설렁 뛰는 모습을 보인다면, 휘슬이 울리기도 전 경기가 끝난 것 마냥 뛴다면 누가 좋아할까. 경기장에서 만난 한 팬은 “경기에서 져도 좋다. 지기 전까지 졌다는 생각이 안 들도록 뛰어준다면 그걸로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패배보다 무승부, 무승부보다 승리를 원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는 게 팬이다. 승부욕을 보여달란 이야기다.

해외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2016-2017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있던 일이다. 당시 아스널은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본머스를 만나 0-3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경기 종료 20분 전 3골을 몰아넣으며 극적인 3-3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 경기서 후반 46분 동점골을 넣은 아스널 공격수 올리비에 지루는 흥분을 못 이긴 나머지 관중석 앞으로 달려가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리고 그런 지루 뒤쪽으로는 아스널 선수들이 남은 시간 역전을 위해 재빨리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당시 팀 동료 알렉시스 산체스가 한심한 표정으로 세리머니 중인 지루를 바라보는 장면도 포착됐었다. 다른 선수들은 역전을 노렸지만, 지루는 무승부에 만족한 셈이다.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이라면, 경기 종료까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면 팬들도 패배를 직감한다. 선수들도 오늘 경기는 졌구나 생각할 수 있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끝까지 불타는 승부욕을 보여준다면, 패배로 침울한 팬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리지 않을까. 사랑받는 만큼 돌려주는 것도 프로의 자세다.

우봉철 기자 wbcmail@dailysports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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