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주년 맞이한 한국경마, 경마사 자료 수집 나서

100주년 맞이한 한국경마, 경마사 자료 수집 나서

  • 기자명 차혜미 기자
  • 입력 2021.09.16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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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경마유물 기증식 개최 및 감사장 전달. (사진=한국마사회)
근대 경마유물 기증식 개최 및 감사장 전달. (사진=한국마사회)

[데일리스포츠한국 차혜미 기자] 한국마사회가 2022년 한국경마 시행 100주년을 맞이해 대규모 경마사 자료 수집에 나선다. 

지난 3일 도서출판 열화당의 이기웅 대표가 소장하던 근대 경마 유물 2점을 마사회 말박물관에 기증한 바 있다. 이 유물은 함경남도 함흥경마구락부와 함경북도 웅기경마구락부 춘계경마에서 1939년과 1940년에 수여된 우승기념 동기(銅器)로 매병 크기의 작은 항아리에 꽃과 말이 각각 양각돼 있는데 시기, 경마장, 시상자 등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웅기 것은 부조로 ‘賞(상)’이라는 글자가 문양처럼 들어가 있어 시상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해방 후 경마장을 자주 찾았던 백범 김구 선생의 시상. (사진=한국마사회)
해방 후 경마장을 자주 찾았던 백범 김구 선생의 시상. (사진=한국마사회)

해방 후 신설동경마장을 찾은 백범 김구 선생이나 미군정기 주한사령관이었던 하지준장의 시상식 사진에서도 종이로 된 상장과 함께 이와 유사한 형태의 기물이 확인된다. 일본 양식인 화병 형태의 동기가 꽤 오랜 시간 지금의 트로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22년 조선경마구락부의 설립을 기점으로 공인 경마 100주년을 앞둔 한국 경마는 해방 前 경성과 평양, 군산, 대구, 부산, 신의주를 비롯해, 청진 웅기, 함흥 등 9개의 공인 경마장에서 봄과 가을, 매년 전국 순회 경마를 시행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말에는 2차 세계대전의 심화로 대부분의 경마장이 기능을 잃었으며 해방 후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신설동 경마장을 끝으로 꺼져가던 한국 경마의 명맥은 1954년 뚝섬 경마장의 개장으로 다시 이어졌으며 1989년 과천 서울경마공원으로 이전하면서 경주영상을 해외에 수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금은 제주와 부산경남에 지방경마장도 운영 중이다. 

그러나 100년이라는 긴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경마의 역사는 아쉽게도 반쪽짜리다. 한국경마 초기인 해방 전부터 과천으로의 이전하기 전 자료는 대부분 유실됐기 때문이다. 전쟁의 포화와 잦은 수해로 과거 종이 기록물이 대부분이었던 1920~1970년대 자료는 불타거나 물에 휩쓸려가 마필과 경주기록 등도 단편적인 기사에 의존하고 있다. 

1971년 5월 24일 경향신문 기사에 실린 경주마 에이원의 전설적인 기록. (사진=한국마사회)
1971년 5월 24일 경향신문 기사에 실린 경주마 에이원의 전설적인 기록. (사진=한국마사회)

따라서 이번 수집 대상은 희박한 1970년대 이전 경마사 자료가 중심이 될 전망이다. 마권과 각종 홍보물을 비롯해, 과거 경마장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의 물품과 기록물, 마필 관계자료, 상장과 트로피, 사진 등이 포함된다. 이렇게 수집, 선정된 자료는 2022년 5월 한국경마 100주년 기념 특별전을 통해 대중에게 소개될 예정이다. 

말박물관 관계자는 “특별전은 온라인으로도 공개해 역경을 딛고 성장한 한국경마의 역사와 의미를 대중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며 “당장은 기증이나 전시 기간 중 기탁, 임대 등의 방법으로 자료를 수집하지만 추후 경영여건이 정상화되면 전시품 중 근대 문화재 지정 가능성이 있는 자료의 경우, 구매도 고려중이니 많은 분들의 참여를 희망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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