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의 관풍(觀風)> 작전명 ‘미라클’을 통해 보여준 대한민국의 저력

<김성의 관풍(觀風)> 작전명 ‘미라클’을 통해 보여준 대한민국의 저력

  • 기자명 김성 소장
  • 입력 2021.09.02 09:00
  • 수정 2021.09.02 09:27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한민국이 한없이 자랑스럽고 믿음직스럽기 그지없다. 총성과 포성이 오가는 이국땅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리 외교관과 군인들이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민간인 390명을 아무런 사고 없이 구출해 26일 우리 땅을 밟게 한 작전명 ‘미라클(miracle. 기적)’은 정말 ‘기적같이’ 이루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뒤늦은 가을장마에, 하루 2,000명을 오르내리는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에, 대통령이 되겠다고 여야 정치인들이 아등바등 아귀다툼하는 짜증나는 판국에 너무나 시원한 청량제가 됐다.

숱한 기적 남겨준 외국인 협조자 구출작전

한국에서 며칠을 보낸 아프간 어린이들이 이젠 공포에서 벗어나 밝고 호기심 어린 눈길로 창문 너머 한국의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도 우리를 흐뭇하게 하고 있다.

‘미라클’이라는 이름이 붙은 대한민국의 아프간 내 한국협조자 구출작전은 매 순간 하나하나가 기적처럼 진행됐고 우리 역사에서 많은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첫째, 우선 카불이 탈레반들에 의해 점령된 상황에서 비밀리에 아프간 내의 협조자들을 구출하는 작전을 계획하고 실행했다는 점 자체부터 과거에 찾아볼 수 없었던 일이었다.

둘째, 23일 새벽에 출발한 대한민국 공군 수송기들이 아프간 어린이들을 위해 매트리스와 분유 젖병 기저귀까지 준비한 것은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준비의 ‘치밀함’을 보여주었다.

셋째, 15일 아프간을 탈출했던 김일융 참사관 등 외교관 2명이 “다시 구하러 오겠다”는 현지인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돌아나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험지에 들어간 용기는 우리 외교사(史)에서 영원히 회자되어도 부족함이 없는 ‘사명감’의 상징이었다.

넷째, 평소에 파악해 두었던 협조자들의 명단을 가지고 집결지를 알려주고 모이도록 한 점은 관계자들이 군대 생활이나 민방위 훈련 같은 것을 통해 ‘체화(體化)된 경험’이 있었기 때문으로, 일본 등 다른 나라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다.

다섯째, 협조자 가족들이 카불공항에 진입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버스 6대를 빌려 미군과 탈레반이 공동경비하는 공간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뛰어난 ‘순발력’이 아니면 안 될 일이었다. 유리창이 검게 칠해진 버스 안에서 15시간을 기다렸다고 하니 이 또한 얼마나 위기의 시간이었겠는가.

사명감·치밀함·순발력 유감없이 보여줘

여섯째, 수송기를 조종하는 조종사들이 전력부족을 우려해 에어컨을 끈 채 한증막 속에서 협조자들을 기다렸는가 하면, 탑승 가능 총중량 23만kg에서 아슬아슬하게 170kg 만을 남기고 협조자들을 가득 탑승시켰다는 후일담은 군 관련자들의 ‘희생정신’을 보여준 것이라고 하겠다.

일곱째, 이 미라클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모든 언론이 작전의 성공을 위해 보도를 자제한 점도 ‘언론의 자율성’을 잘 보여준 것이었다. 인접국인 일본의 언론이 일본인과 협조자 500명을 구출할 계획이라며 자위대 비행기가 출발하기도 전부터 떠들어 대고, 결과적으로 작전에 실패한 것과 비교해 보면 우리 언론의 자율적 협조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제대로 보여주었다.

여덟째, 지난해 중국 우한의 교포들에 이어 아프가니스탄 협조자들까지 따뜻하게 맞아 준 진천군민들의 ‘배려’도 높이 사야 한다.

아홉째, 더욱 놀라운 일은 대한민국 국민의 ‘나눔정신’이다. 진천군민들의 이같은 선행이 알려지자 진천군 홈페이지를 통해 특산물을 구입하려는 ‘돈쭐’(돈으로 물건을 많이 사서 ‘혼쭐’을 낸다는 좋은 의미의 신조어)운동이 전 국민 사이에 벌어진 것이다.

결국 이 작전은 우리 대한국민의 심성(心性)과 능력을 국제사회에 제대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긍지를 갖기에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

언론의 자율협력·국민의 ‘나눔정신’도 기적에 一助

전쟁은 인간을 공포에 빠트리고 황폐하게 만든다. 필자는 1991년 걸프전 때 이스라엘 현장에서 목격했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수천년 전 빼앗긴 땅을 되찾았다고 하여 애국심이 강했다. 그런데도 이라크가 매일 밤 스커드 미사일을 당시 수도였던 텔아비브로 쏘아대자 퇴근시간만 되면 안전지대인 예루살렘으로 피난가는 차량 행렬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다. 이라크가 생화학탄을 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긴장은 더욱 고조됐다. 1980년대 제주에서 부산으로 가던 대형 여객선이 새벽에 암초에 부딪혀 좌초됐다. 필자는 취재를 위해 15도 정도 기운 여객선에 올라탔다. 겨우 1시간여를 머물렀는데 신체균형이 무너지면서 어지럽고 매스꺼움을 강하게 느꼈다. 하물며 세월호의 어린 학생들에게 그 공포는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아프간인들도 끊이지 않는 총성과 폭발음, 앞으로 닥칠 탈레반의 폭정과 아이들에게 강요될 반인간적인 교육 때문에 공포에 휩싸였다. 탈출구도 없는 극한 상황이었다. 여기에 대한민국이 손을 내밀었으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과거 우리도 구원의 손길을 받았었다. 1950년 한국전쟁때 외국의 젊은 청년 4만790명이 자세히 알지도 못하는 한국이라는 이국땅에서 오로지 민주주의를 지키려다가 전사(戰死)했다. 군대를 파견하지 못한 덴마크는 병원선을, 멕시코는 닭고기와 콩류를, 우루과이는 담요를 보내오기도 했다. 60세 이상 세대는 미국이 원조해 준 미제 분유에 미국 옥수수로 만들어 학교에서 나눠주던 옥수수빵을 기억하고 있다. 가정에서도 미제 밀가루로 수제비를 해 먹었고, 미제 연필과 지우개를 배급받기도 했다. 그래 ‘미공법480호’라는 이름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1980년 5·18민중항쟁이 끝난 뒤 구금과 탄압, 왜곡만 판치는 엄혹한 환경에서 외국의 인권단체와 종교단체들이 관련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손’을 내밀었기에 용기를 잃지 않고 민주화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러한 처절한 과정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후진국에서 시작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선진국이 된 것이다.

한국은 침략 역사 없는 유일한 선진국 … 끊임없는 ‘미라클 작전’ 필요

대한민국은 다른 선진국과는 달리 외국을 침략하거나 식민지를 둔 적이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였다. 그러기에 우리의 ‘나눔’과 ‘배려’는 침략이나 경제적 야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따뜻하고 순수한 ‘인류애’이다.

하여 이제부터는 선진 대한민국이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미라클 작전’을 펴야 한다. 우리의 미라클 작전이 계속된다면 세계사(史)도 새롭게 평가할 것이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책무가 아닐까 생각한다.

김성(지역활성화연구소장)

저작권자 © 데일리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