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의 관풍(觀風)> 보수정당은 보수정신의 상징 ‘병역의무’조차 외면할건가

<김성의 관풍(觀風)> 보수정당은 보수정신의 상징 ‘병역의무’조차 외면할건가

  • 기자명 김성 소장
  • 입력 2021.08.1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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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어떤 지도자가 필요한가(3)

2015년 8월 4일, 우리나라 군 수색대가 DMZ에서 수색작전을 벌이던 중 북한군이 설치한 목함지뢰가 폭발하면서 2명의 하사관이 중상을 입었다. 북한군이 군사분계선 400m 남쪽까지 넘어와 땅 속에 목함지뢰 3개를 묻어두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북한군이 정전협정을 위반한 기만행위였다. 우리 군은 10일부터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였다. 11년만이었다.

목함지뢰 사건이 보여준 ‘병역의무’ 복지정책의 난맥상

20일에 북한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하던 서부전선으로 포탄 1발을 발사하였다. 이 포탄은 야산에 떨어졌다. 우리 군은 북한군 포탄임을 확인하고 155밀리 자주포 36발로 대응사격을 하였다. 우리 군은 전면전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내리는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긴급 소집해 인민군에게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며 완전무장할 것을 명령했다. 북한군 잠수함 70%가 기지를 떠나 자취를 감췄다는 보도도 나왔다. 여야 정치인들은 모두 단호한 대처를 요구하였다. 한반도 전체가 긴장상태에 휩싸였다. 22일, 남측에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북측에선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노동당 비서가 판문점에서 만나 나흘간 50시간에 걸친 고위급 접촉을 가졌다. 그리고 협상 끝에 북한은 목함지뢰 도발에 대해 유감표시와 함께 준전시상태를 해제하기로 했고, 남측은 대북방송을 중단하는 것으로 타결을 보았다.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사건은 정치·군사적으로 긴급상황이 발생했을때 남북의 고위급 접촉과 협상에 대한 하나의 선례를 남기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부상 당한 두 하사관에게는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뒤따랐다. 두 하사관은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져 김정원 하사(23)는 오른쪽 발목을 절단하였고, 하재헌 하사(21)는 두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야당 대표가 위문하면서 두 사람을 위로했다. 더 중상을 입은 하 하사는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추가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하 하사는 치료비 일부를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외부병원에서 30일 이상 치료를 받으면 초과분을 부담해야 한다는 군인연금법 규정때문이었다. 국민들은 분노하였다. 국가를 지키다가 부상당한 군인에 대한 사후조치가 너무 허술하다고 몰아붙였다. 결국 법시행령이 개정되고, LG가 1인당 5억원, 영회배우 이영애가 5천만원의 위로금을 내놓았고, 방산업체인 LIG넥스원이 치료비 전액을 부담하기로 하는 등 국민적 응원이 뒤따랐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투대기했던 원사 이하 국군 56만명에게 1박2일 특별휴가를 주었고, 롯데는 목함지뢰사건으로 전역을 연기했던 장병 98명 중 12명을 특별채용했다.

보수 의원, 부상자를 ‘公傷처리’하자 “나라가 미쳐가고 있다”고 질타

이후 중사로 승진한 두 사람 중 하 중사는 2019년 1월 전역하였다. 어린 시절 야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으나 직업 군인으로 바뀌었다가 뜻하지 않은 사고로 다시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겠다는 장애인 조정선수로 바뀌었다. 그런데 2019년 9월 다시 격분할 일이 생겼다. 그가 전역하자 군은 보훈처에 전상(戰傷)신청을 했다. 그런데 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는 ‘국가유공자법에 관련조항이 없다’며 공상(公傷) 판정을 내린 것이다. 전상은 적과의 교전이나 이에 준하는 작전을 수행하다가 입은 상이(傷痍)를 말하고, 공상은 교육·훈련 등의 과정에서 입은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보훈심사위원회는 목함지뢰 도발을 전투상황이 아니라 공무상 발생한 사고로 본 것이었다. 하 중사는 즉시 재심을 청구했다. 온 국민이 다시 이 문제로 들끓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탄력적으로 판단을 해 줄것을 요청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하 중사를 만나 “영웅대접을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나라가 미쳐가고 있다”고 질타했다. 결국 1개월 뒤 보훈심사위원회는 재심에서 ‘전상’으로 수정 의결했다. 보훈처장은 이례적으로 “이번 보훈심사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은 하재헌 중사와 가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하재헌 중사의 목함지뢰 사건을 이렇게 장황히 소개한 것은 군에는 수많은 위험요소가 잠복해 있고,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도 그 처리 과정이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후로도 자주포 폭발사건, 내무반 내 구타로 인한 사망사건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고가 있었다. 단지 병역의무를 수행하다가 부상당해 인생의 행로를 바꿔야 했던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기가 막힌 일이었다. 그들의 눈에 ‘멀쩡한 병역미필자’들은 어떻게 보였을까? 그렇다면 ‘멀쩡한 병역미필자’들은 군복무 대신에 이에 상응한 태도를 보였을까? 다른 사람의 군대복무 기간만큼 사회에서 정성어린 봉사활동을 하였을까? 군대생활을 하다가 변을 당한던 희생자들의 치유를 위해 노력을 했었을까? 그런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을까?

하재헌씨의 경우에는 그래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두 대통령이 챙겨주었기 때문에 잘 풀린 경우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돌발적인 사고로 인생의 꿈을 바꿔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의 눈에는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군대를 가지 않고서도 건강한 모습으로 떵떵거리며 TV화면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까?

‘멀쩡한 병역미필자’, 군대 부상자나 국민을 위해 어떤 봉사를 했나?

1970년대에 32개월의 군대생활을 했던 필자도 그런 ‘멀쩡한 병역미필자’들에 대해 적대적 생각을 가졌다. 당시 필자에게는 매주 있었던 중대 10km 단독군장 구보경주에서 50등 안에 드는 게 유일한 꿈이었다. 50등까지는 날달걀 하나씩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M1소총 대신 가벼운 칼빈소총으로 바꿔 뛰어보는 등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결국 제대할 때까지 꿈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에는 대학에서 교련(군사훈련)을 이수한 사람에게 2학점당 1개월 또는 2개월 제대를 앞당겨주는 제도가 있었다. 필자는 3학년 후학기에 입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교련 5학점을 따지 않았었다. 제대가 가까워질 무렵이 되자 필자보다 늦게 입대한 후배들이 학점 덕분에 앞질러 먼저 제대해 나가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입대와 복교 시기 때문에 몇 개월씩 허송세월해야만 하자 정부와 ‘멀쩡한 병역미필자’들에게 화가 치밀었다. 병역의무를 지킨 국민이라면 아마 대부분 이런 기억쯤은 남아있을 것이다. 국민이라면 군대를 다녀오는 것이 당연하고 명예로운 일이어야 할텐데 ‘멀쩡한 병역미필자’들 때문에 무언가 손해를 본 것 같은 생각이 아직까지 잔상처럼 남아있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어떠했을까? 병역의무 대상자 가운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3명은 장군 출신이었고, 김영삼은 6·25때 학도의용군으로 대북방송을 담당했으며, 김대중은 국군 보조기관이었던 목포해상방위대 전라도 지구 부사령관으로 임명돼 자신이 경영하던 해운회사 선박으로 인민군 게릴라를 소탕하는데 참여했다.(양김의 경력은 네이버 인물사전 참조) 이명박은 1964년 한일협정을 반대하는 6·3시위를 주도해 형을 살면서 병역 면제를 받았고, 노무현은 육군 상병으로, 문재인은 특전부대 병장으로 각각 만기제대하였다. 대통령들이 대부분 병역의 의무를 지킨 셈이어서 다행스럽다.

‘군대 안 간’ 총리를 더 많이 배출했던 보수정권 10년

병역의무는 보수정당 입장에서 보면 중요한 이념적 가치이자 실천 방법 중 하나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보수정당이 집권했던 지난 10년 동안의 행태는 그러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때는 병역 대상인 13명의 장관 후보자 가운데 5명(38.4%)이 병역면제자였다. 박근혜 정부때는 고위공무원 등 공직자 15명의 아들 16명이 우리나라 국적을 포기해 병역의무를 면제받았다. 또 고위층 아들들의 꽃보직도 문제가 됐다. 박근혜 정부때 청와대 민정수석 아들이 경찰부대 운전을 맡긴 것에 대해 담당 경찰관이 “코너링이 좋아 선발했다”고 진술해 국민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전 사건때 현장을 방문했던 집권 보수정당 대표가 피폭현장에서 그을린 보온병을 손에 들고 “북한군의 포탄”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수행한 장성출신 국회의원은 포탄의 크기까지 설명하는 무식을 노출해 국민들로부터 비웃음을 샀다. 이 기간동안 병역을 필하지 않은 총리들도 많이 나왔다. 39대 한승수(중위), 42대 정홍원(병장) 총리만 만기제대를 했을뿐 40대 정운찬(고령(31세)으로 소집 면제), 41대 김황식(부정시), 43대 이완구(입대 후 1년 보충역 판정), 44대 황교안(만성 가려움증) 등은 제대로 병역을 마치지 않았다. 이러한 기본적인 난맥상도 원인이 되어 두 전직 대통령은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고, 보수정당은 20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상대당에게 180석을 내주는 대참패를 당했다. 새로 이름을 바꾼 보수정당은 심기일전하여 새로 태어나겠다고 했다.

병역문제·인재등용 잘못하면 자멸 초래 … 換骨奪胎할 때

조선시대에도 병역기피는 항상 문제거리였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것도 삼정(田政·軍政·還政)의 문란으로부터 시작돼 우국충정을 가진 노블리스 오블리주 인재들을 발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이 광복 76년만에 밑바닥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진짜 비결은 무엇일까. ‘멀쩡한 병역미필자’들의 노력때문일까? 아니다. 젊은 시절 특별한 체험을 하면서 다져진 정신적·육체적 능력을 가지고 국가발전에 기여해 온 대부분의 병역필자(兵役必者)들 때문이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그런데 명색이 ‘좋은 전통’은 지켜나간다는 이념을 바탕으로 한 보수정당이 대통령 자리 탈환에만 눈이 멀어 ‘기(게)나 고동이나 아무나’ 가리지 않고 후보감을 받아들여서야 되겠는가?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얼마 전의 쓰라린 고배를 잊었단 말인가? 유권자에게는 경쟁력 있는 건강한 보수정당이 필요하다. 유권자들은 지금처럼 시류에 흔들리는 정당을 절대 선택하지 않는다. 제발 ‘보수의 정신’을 망각하지 말고 보수정당 ‘다움’을 찾기를 기대한다.

김성(지역활성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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