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마크달고 세계무대 나서는 재일교포… 마사회 유도단 김임환·조목희

태극마크달고 세계무대 나서는 재일교포… 마사회 유도단 김임환·조목희

  • 기자명 황혜영 기자
  • 입력 2021.08.12 15:52
  • 수정 2021.08.1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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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몬트리올 그랑프리 63kg급 우승한 조목희 (사진=국제유도연맹)
2019년 몬트리올 그랑프리 63kg급 우승한 조목희 (사진=국제유도연맹)

[데일리스포츠한국 황혜영 기자] 일본의 귀화 유혹을 뿌리치고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아 화제가 되었던 추성훈과 안창림처럼 한국마사회 유도단에도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재일교포 선수들이 있다. 남자 -66kg급 김임환 선수(세계랭킹 12위. 이하 ‘김’)와 여자 -63kg급 조목희 선수(세계랭킹 30위. 이하 ‘조’)다. 재일교포 3세로 항상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지내왔다는 그들은 각 2016년, 2019년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대한민국 유도 국가대표로 시합에 나섰다. 도쿄 올림픽과 광복절을 맞아 재일교포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 모두 전국체전에 ‘재일동포 선수단’으로 한국에 방문했다. 그곳에서 많은 재일교포 선수들과 교류하며 대한민국 국가대표의 꿈을 키워왔다. 하지만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Q. 재일교포로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거 같다, 우리나라 유도 선수로 활약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김: 경계인으로서 ‘재일교포’라는 건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힘들다. 일본에서는 한국인, 한국에서는 일본인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되는 것을 줄곧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조: 원래 일본에서 태어나고, 일본에서 자란 제가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사실 몰랐다. 전국체전에 재일동포 선수단으로 출전한 것을 계기로, 대한민국 국가대표로서 올림픽 역시 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것을 목표로 해왔다.

Q.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느낌이나 인상은? 언어나 문화에서 적응에 힘들진 않았는가?

김: 고등학교 때 전국체전에 참가하며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했는데 일본과 비교해 물가 특히 택시비가 저렴했던 것을 기억한다. 이후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생활하며 언어나 문화가 다른 점은 조금 고생스러웠지만, 선생님들이나 동료, 주변 분들이 많이 도움을 줬다. 주말에도 ‘뭐하냐, 밥은 먹었냐’고 챙겨주시는 등 많은 분들이 마음 써주셔서 지금까지 잘 적응하고 있다.

조: 사실 많이 힘들었다. 같은 팀 사람들이 많이 도와줬지만, 한국에 왔던 첫해에는 전혀 한국말을 할 줄 몰라서, 같은 재일교포 선수의 존재가 컸다. 만나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위안이 되는 존재였다.

김임환는 “태어난 건 일본이지만 국적은 한국, 그리고 대한민국 국가대표다”라는 설명을 지금까지 ‘수백 번, 수천 번’해왔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들은 언제나 ‘한국인’으로 자긍심을 가지며 ‘태극마크’의 무게를 느끼는 국가대표다.

Q. ‘한국인 김임환’, ‘한국인 조목희’로서의 정체성을 언제 체감하는가?

김: ‘한국인 김임환’은 언제나 체감하고 있다. 특히 국가대표로 시합에 나갈 땐 그 정체성을 뼈저리게 체감한다. 

조: 항상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특히 대표선수로서 가슴에 태극기를 다는 순간 그 무게를 크게 느낀다. 

Q. 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두 선수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의미인지, 또 대한민국 국가대표의 의미는?

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저의 뿌리이자, 조상들이 만들어 낸 기적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태극기를 달고 처음 시합에 나갔을 때 정말 기뻤고, 그 책임감 역시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조: 광복절은 재일한국인으로서 꼭 알아야 할 역사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자랐다는 것과는 상관없이, 국가를 등에 지고(대표해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영광이고 자랑으로 생각한다.

Q. 선수 생활 중 가장 짜릿했던 순간, 가장 영광의 순간은 언제인가?

김: 2019년 도쿄에서 세계선수권이 열렸는데 일본에서 열린 만큼, 시합에 가족과 친척, 선생님 등 많은 분들이 오셔서 응원해줬다. 그것이 힘이 많이 되어 남자 66kg급 은메달을 획득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시합하는 모습을 가족들에게 직접 보여줄 수 있어 기뻤고, 저 자신에게 또 대한민국 유도에 좋은 성적으로 보답할 수 있어 기뻤다.

조: 포디움에 서서, 제일 위에 태극기가 올라가는 것을 보며 애국가를 들었을 때 가장 짜릿하고 영광스러웠다.

아쉽게 이들는 도쿄올림픽에 선수로 참가할 수는 없었지만 -73kg급 동메달 안창림을 계기로 재일한국인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Q. 두 선수를 비롯한 재일교포 선수들의 활약으로 재일한국인 학교 등에 대한 관심이나 후원도 많아진 거 같다. 감회가 어떠한가?

조: 지원문제 같은 것들이 언론에서 많이 이야기 되고 있는데요. 관심을 모으고 있는 지금, 재일한국인학교의 현황을 많은 사람들에 전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재일한국인에 대한 존중이 있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 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많이 이야기 하고, 노력하고 싶습니다.

2019년 세계선수권대회 66kg급 은메달 김임환 (사진=국제유도연맹)
2019년 세계선수권대회 66kg급 은메달 김임환 (사진=국제유도연맹)

Q. 안창림이 동메달을 걸어준 사진이 SNS에서 화제가 됐다. 안창림과의 우정이 특별한 거 같다. 두 사람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김: 저희 어머니가 창림이 학교 선생님이라는 인연을 가지고 있다. 특히 중학교때 저는 유도 명문중에서 단체전 전국 3위하는 정도의 선수였고, 창림이는 당시엔 유도를 그리 잘하진 않았다. 창림이는 저를 알고 있었다. 이렇게 오래된 인연이다 보니, 창림이가 도쿄올림픽 준결승에서 졌을 때 처음으로 남의 시합을 보고 울었다.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 고생해온 친구가 올림픽에서 빛을 발해서 저 역시 기분이 좋았다.

도쿄올림픽은 끝났지만 선수들의 뜨거운 열정을 기억하기에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2024년 파리올림픽을 기대하게 만든다. 김임환 역시 앞으로 이어지는 세계대회를 목표로 “다시 몸을 만들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조목희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유도선수로서의 인생1막을 마무리 짓고 어학 공부를 위해 괌에 간다. 괌에서 유도클럽 코치를 병행하며 대학에 다니면서 영어 공부를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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