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돈 때문에 아마추어가 된 프로구단

[기자수첩] 돈 때문에 아마추어가 된 프로구단

  • 기자명 황혜영 기자
  • 입력 2021.08.06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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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황혜영 기자] 지난달 20일 프로축구 K리그 여름 이적시장이 마감됐다. 마감일을 앞두고 국내에서 보기 드문 대형 ‘빅딜’이 성사됐다. 바로 포항 스틸러스의 에이스 송민규의 전북행이다. 이적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약 20억 원 선으로 전해졌다. 포항 공격의 한 축을 담당했던 송민규가 전북 현대의 유니폼을 입게 될 것이라는 최초 보도에 축구 팬들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1999년생인 송민규는 2018년 포항 유니폼을 입고 데뷔했다. 이듬해 27경기에서 2골 3도움을 올렸고, 지난해 27경기에 출전해 10골 6도움을 기록했다. 생애 단 한 번인 영플레이어상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올 시즌도 팀 내 최다득점을 자랑하며 포항을 이끌었다. 올해 첫 A대표팀에도 승선, 현재 올림픽대표팀에도 합류해 활약하고 있을 만큼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포항의 미래이자 프랜차이즈 스타 송민규의 이적을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이적 과정에서 구단은 김기동 감독과 어떠한 협의나 조율 없이 이적을 추진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김기동 감독은 올 시즌 재계약 조건으로 송민규의 잔류를 요구했을 정도로 송민규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김 감독은 이적 소식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보도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축구 커뮤니티와 게시판에는 이를 비판하는 글이 쏟아졌다.

더구나 포항 팬들은 핵심 선수들의 잇따른 전북행에 더욱 분노했다. 포항은 이전에도 김승대, 최영준, 일류첸코 등 팀의 핵심 자원을 전북으로 보냈다. 또 한 명의 에이스가 전북으로 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전북은 올 시즌 22세 이하(U-22) 자원과 측면 공격수의 보강이 간절했고 이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카드가 송민규였기에 관심을 꾸준히 보여왔다. 유럽행을 원하는 송민규는 전북의 제안을 몇 차례나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던 포항은 전북의 과감한 제안에 송민규를 보내기로 결정했고 이 과정에서 김기동 감독은 철저히 ‘소외’됐다.

이러한 논란을 의식한 포항은 SNS를 통해 사과문을 게재했다. 포항은 “구단은 새로운 도전을 원하는 송민규 선수의 의지를 존중했다”라고 했다. 송민규는 매체를 통해 유럽 진출을 원한다고 그간 밝혀온 바 있다. ‘새로운 도전’이라는 표현으로 유럽행을 바라던 송민규가 마치 ‘전북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표현했다. 또 ‘선수의 의지를 존중’했다며 마치 ‘선수의 의지가 강해서 보내준 것’이라는 식의 표현으로 선수 뒤에 숨는 비열함까지 보였다. 구단은 “시즌 중 주요 전력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구단과 선수를 위해 ‘대승적으로 동의’한 김기동 감독에게 고마움을 표한다”라고 마무리했지만, 변명에 불과한 사과문은 팬들의 분노에 불을 지필뿐이었다.

또 다른 논란은 구단 유튜브 채널 ‘포항항TV'에서도 이어졌다. 구단은 지난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조별예선 기간 동안 태쿡 방콕 현지에서 실시간 라이브를 켜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보여줬다. 취지는 좋았으나 라이브를 킨 구단 커뮤니케이션팀 차장은 불쾌한 발언으로 팬들의 비판 대상이 됐다.

그는 경기장 좌석 매진이 안 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면서 “자칭 ‘오래된 팬들이 경기장에 안 와서‘ 4000석도 못 채운다“라며 되려 팬들에게 화살을 돌렸다. 평소 팬들에 대한 인식을 느낄 수 있었던 발언이다. 팬들의 조언과 질문에는 “얼마나 현실성 없는 조언인지”, “왜 물어보는지 이해할 수 없다” 등과 같은 불쾌한 언사를 행했다. ‘커뮤니케이션’ 팀에서 일하지만 팬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의지는 전혀 없어 보였다.

포항 팬들은 구단과 프런트의 수준 낮은 운영 방식에 이미 마음을 돌렸다. 지난달 24일 포항 스틸야드 경기장에는 “감당 안 되면 통째로 팔아라”, “그지구단”, “48년 프로팀에 아마추어 프런트”, “배은망덕한 놈” 등의 강한 메시지가 담긴 걸개가 걸렸다. 팬들은 서포터즈 석에 '프런트 OUT' 종이를 붙이고 경기 시작과 함께 좌석을 비우며 보이콧했다.

돈 때문에 시즌 중 핵심 선수를 팔아버린 구단. 팬들을 기만하고 우습게 보는 프런트의 태도. 이는 팬들이 등을 돌리고도 남을 충분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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