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말들이’ 정치인 솎아내기

‘한 말들이’ 정치인 솎아내기

  • 기자명 김삼웅 논설고문
  • 입력 2021.07.29 09:00
  • 수정 2021.09.2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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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공자와 제자 자공(子貢)이 나눈 ‘정치인 문답’은 생명력이 길다. 시공을 초월한 진리가 담겼기 때문이다. 사제간의 문답을 풀어보자.
제자: 어떤 사람을 정치인이라 할 수 있습니까?  
스승: 언제나 수치심을 가지고 언행을 욕되게 하지 않고 책임과 사명을 다하면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제자: 그 다음 부류는 어떠합니까?
스승: 일가친척에게 효자 소리를 듣고 주변에서 정의롭다고 칭찬받는 사람이다.
제자: 그 다음은?
스승: 말하면 반드시 실행하고 실행하면 성과를 내는 사람이지.
제자: 오늘날 정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스승: 아! 한 말들이밖에 안되는 작은 기량을 가진 사람들이야 논할 바 못된다.(논어 ‘자로’편) 


다시 정치의 계절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온 나라가 꽁꽁 얼어붙었는데도 정치판은 열기가 넘친다. 내년 3월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유명 무명의 후보들이 자천타천으로 나서 무려 20여 명에 이른다. 헌정사상 초유의 현상이다. ‘한 말들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지도자의 요건은 여러 가지로 열거할 수 있다. 예컨대 마키아벨리는 용기ㆍ확신ㆍ위압적 자질ㆍ권모술수능력ㆍ냉철성ㆍ위선적 자질 등을 제시하고, 정치가는 사자의 용기와 여우의 교활성을 겸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지도자의 속성에 관해 연구한 미헬스는 웅변ㆍ의지력ㆍ열정ㆍ지력ㆍ도덕성ㆍ체력을 들고, 미국의 메리암 교수는 웅변ㆍ용기ㆍ사회적 감수성ㆍ정책ㆍ상징조작능력ㆍ개인조종능력ㆍ집단결합능력을 제시하였으며, 스톡딜 교수는 사회적 감수성ㆍ집단 간 결합의 능력ㆍ조정자적 재능을 들었다.
현대의 산업사회가 다원화ㆍ복합화되면서 정치인의 자질과 조건도 많이 바뀌고 있다. 정치학자들은 이같은 변동사회에서 지도자의 자질에 대해 특이한 관점에서 제시한다. 
로버트 미헬스는 정치지도자의 자질을 ①연설의 재능 ②남성미 ③의지력 ④강력한 자신감 ⑤성의 또는 무욕 ⑥사회적 명성 ⑦투쟁경력을 들고 있다.
막스 베버가 제시한 정치인의 3대 요건은 정열ㆍ책임감ㆍ통찰력이다. 동양에서는 정치인의 특별한 조건이라기보다 지도자의 일반적인 자질을 신언서판(身言書判)에서 찾았다. 평범한 듯 하지만 엄격한 기준이다. 
정치학자 H. D. 라스웰은 지도자의 자질로 집단결합능력을 중시하며, 업무집중능력과 체력 등을 필수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지도자를 3개의 유형으로 분류한다. 
①관료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강박형이며 
②직업적 정치가나 선동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극화형으로서 자기현시성과 연출성을 특징으로 한다. 
③외교관이나 법관에 많이 찾을 수 있는 냉철형으로서 정서생활의 성격적 억압으로 말미암아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 감정적 간여를 하지 않은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는 이와 관련 대중사회의 정치가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능력은 대립하는 이해집단을 조정하는 능력, 그리고 조직화의 능력이라고 제시했다. 
역대 미국대통령 중에 성공한 인물로 꼽히는 루스벨트는 철저할 정도로 정치가로서의 다섯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 용기, 둘째, 인내심, 셋째, 아주 작은 일에서 아주 큰 일을 보고, 극히 사소한 세부 문제를 포괄적인 전체와 연결시키는 능력, 넷째, 이상주의와 확고한 목표에 대한 분별력, 다섯째, 사람들의 마음속에 결단성을 심어 놓는 능력이다.
그는 또한 단점도 많이 갖고 있었던 것으로 지적된다. 그것은, 만사에 느린 점, 이중성(비판자들이 단순한 부정직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일부 대인 관계에 있어서 솔직성의 철저한 결여(그러나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청탁을 물리치지 못하는 점, 임시변통적 수법을 좋아하는 점, 말이 많은 점, 아마추어적 기질, 그리고 지나친 보수성향이라고 불린 점 등이다. ‘아마추어적 기질’이란 어떻게 보면 그런 것이 분명히 있기는 했다. 그러나 미국의 역사상 그만큼 능력이 뛰어난 실천적 정치가가 일찍이 태어난 적이 없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루스벨트에 필적하는 인물이 영국수상 처칠이다. 정치지도자는 재능과 함께 임기응변력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날 신문기자가 윈스턴 처칠에게 물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독자를 위해서 고견을 듣고 싶은데… 어떠한 청년이든 정치가가 되기 위한 바람직한 자격은 무엇일까요?”
처칠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것은 내일, 내주, 내월 그리고 내년에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를 예언할 수 있는 재능이다.”
여기에서 일단 말을 끊은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후일에, 그 예언이 맞지 않았던 이유를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는 재능을 소유하고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다.”
정치지도자가 갖춰야할 자질의 여러 형태를 종합하면 용기ㆍ확신ㆍ자신감ㆍ열정ㆍ웅변ㆍ체력ㆍ의지ㆍ지력ㆍ도덕성ㆍ사회적감수성ㆍ개인조종능력ㆍ집단결합능력ㆍ임기응변능력ㆍ냉철성 등이라고 하겠다.
역사상 최대로 성공한 두 사람의 정치인으로 중국의 한고조와 로마의 아우구스티누스를 든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초인적인 인내심과 성실성이었다고 분석된다. 
인내심과 성실성을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으로 치는 데는 많은 전문가들이 일치한다. 토마스 칼라일은 ‘영웅숭배론’에서 “모든 영웅의 특성은 깊은 인내심과 진정한 성실성에 있다”라고 하여 두 가지를 강조한 바 있다.
공화국(republic)의 라틴어 어원인 레스 푸블릭카(Res Publica)는 ‘공공의 소유물’을 뜻한다.  국가를 국민 전체가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라도 법률적 요건만 갖추면 정치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대개 정치는 준비가 필요없다고 생각되는 유일한 직업일 것이다.”(Bㆍ스티븐스)라는 말처럼 준비도 능력도 없이 뛰어드는 ‘한 말들이’는 결국 자신과 나라를 해치는 일이 된다. 재임 중 탄핵되거나 퇴임 후 감옥에 간 정치인이 반면교사다.
정치지도자에게는 여유있는 자세와 넉넉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위기관리는 긴장 속에서 대응할 수도 있지만 여유있는 마음으로 해결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일 수가 있다.
우리는 1917년 러시아혁명의 어려웠던 시절에 레닌의 침착함, 1932년 공황 때에 보인 루스벨트 미국대통령의 밝은 미소, 프랑스가 나치에 패배한 후 국민을 다시 규합하는 드골의 리더십,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의 여유에서 지도자의 ‘자질’ 이외의 것을 느끼게 된다.
정치인이 물론 도덕가일 수는 없다. 정치를 의미하는 영어의 Politic이 ‘술책을 논하다’ ‘교활한’이라는 뜻을 포함하는 데서도 찾을 수 있듯이, 정치의 비극적 본질은 어쩌면 정직보다는 간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지 모른다. 오죽했으면 먼로(WㆍBㆍMunro)는 이런 말을 남겼을까. “정치는 수학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정치에 수학이 있다고 하면 둘(2)에다 둘(2)을 보태면 반드시 넷(4)이 되지 않고 22가 됨과 같은 수학이다”라고.
아무리 정치가 간교하고 정치인이 불신의 대상이라고 해도 정치는 있어야 하고 지도자는 필요하다. 정치지도자는 ‘필요악’의 존재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법철학자 켈젠은 민주주의 순수이념은 ‘지도자의 부정(否定)’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이 말은 오히려 만인이 지도자와 같은 수준까지 향상하고자 하는 염원의 표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선정국을 앞두고 후보들의 자질과 능력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을 꼼꼼히 살피면서 ‘한 말들이’를 솎아내는 일이 민주공화국 주권자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김삼웅(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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