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대구시 백신사기’ 시장 사과로 끝날 일은 아니다

<김주언 칼럼> ‘대구시 백신사기’ 시장 사과로 끝날 일은 아니다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1.06.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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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의 코로나19 백신 도입추진이 사기사건으로 마무리됐으나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화이자백신의 자체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방역당국은 정상 유통경로가 아니므로 구매하지 않기로 결론내렸다. 화이자도 불법거래로 파악된다며 “법적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대구시는 의료단체가 추진한 것이라며 책임을 돌렸다. 이에 대해 권영진 대구시장의 공식사과를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동장했다. 해외언론의 비판기사가 알려지면서 ‘국제망신’도 사고 있다. 명백한 진상규명과 중앙정부의 감사 요구도 나왔다.
대구시는 메디시티협의회와 함께 외국 민간무역회사를 통해 정부의 공식계약과 별개로 3000만명 분량의 화이자백신 도입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권시장은 “공문도 보내고 협의하면서 진전시켰지만 다음단계는 정부가 해야 할 몫”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화이자 본사가 백신을 유통업체에 공급하지 않는다고 발표함으로써 불법유통, 또는 사기로 판명됐다. 방역당국도 구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구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권시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백신도입 성공여부를 떠나 대구의료계의 노력은 존중돼야 한다”는 답변만 돌아왔을 뿐이다.
백신사기 시도사례는 올해초에만 5번 이상 있었다. 방역당국에 의해 걸러졌지만, 줄곧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료기기 회사나 무역회사가 “해외업체가 백신구입을 도와준다고 했다” “백신물량을 가지고 있다”고 제안해왔다고 방역당국에 밝혔다. 이에 보건복지부가 구체자료를 요구하자 자료는 보내지 않고 구매의향서를 먼저 보내달라고 요청해 사기로 판명됐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백신은 해외직구 상품이 아니라며 사과와 해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은 “대구는 또 다시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 애꿎은 시민만 고통받고 있다”며 권시장의 공식사과를 촉구했다. “가짜백신 해프닝은 세계를 놀라게 한 ‘백신 피싱’으로 국격을 평가절하시켰다”는 비판도 곁들였다. 이들은 권시장이 직접 나와 모든 과정을 소상하게 밝히고 구매의향서를 포함한 서류 일체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대구의 한 시민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창피해서 대구에 살 수 없다”며 권시장의 사과를 요구하는 청원을 올렸다. 청원인은 “더이상 쪽팔려서 대구에서 살 수가 없다”며 “일개 무역회사의 연락을 받고 화이자백신 구매를 정부에게 주선하겠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안될 일을 한 것은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움직인 것이다. 이로 인해 시민은 타도시로부터 손가락질받는 불쌍한 신세가 됐다.” 그는 “홍보는 주도적으로 해놓고 이제 와서 발을 빼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언론은 이러한 대구시의 사례를 ‘반면교사’ 대상으로 지목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국제망신’이라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타이완 민영방송 민시TV(FTV)는 권시장의 화이자 백신 도입 발표장면을 내보내면서 “타이완은 백신이 부족하지만 이런 일이 있어선 곤란하다”고 보도했다. 일본 한류 전문매체 와우코리아도 “사기의혹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급기야 권영진 대구시장은 “이번 사건이 가짜 백신사기사건으로 비화한 것은 저의 불찰”이라며 사과했다. 권시장은 “저의 신중하지 못한 언행으로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되고 대구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정부에 백신도입을 제안하면서 구체적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권시장은 “메디시티대구협의회에서 대구시나 정부의 구매의향서가 필요하다고 요청해서 지방정부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니 보건복지부와 협의하는 게 좋겠다고 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 정확한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코로나19사태 초기 대구시는 신천지교인들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무더기로 발생한 적이 있다. 최근 들어서는 백신접종률이 지방자치단체 중 꼴찌에 머물러 있다. 그만큼 방역에 소홀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러나 권시장은 정부의 방역대책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졌다. 한미정상회담의 성과로 꼽히는 미국의 얀센백신 지원을 비판한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가 어쩌다가 국군장병 55만명분의 백신을 미국으로부터 원조받았다고 감읍해 하는 나라가 되었나? 개념없는 정치야, 무능한 정부야, 비겁한 전문가들아! 이것은 자화자찬할 성과가 아니라 부끄러워하고 반성해야 할 일이다.”
“우리나라 백신방역은 두가지 문제에 봉착해 있다. 하나는 수급부족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적 불신이다. 두가지 모두 정부의 책임이다. 백신수급이 늦었고 부족한 것은 사실 아닌가. 그래서 1차접종을 한동안 중단할 만큼 접종전선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그런데도 방역당국은 문제가 없이 잘되고 있다고만 한다. 국민은 납득할 수 없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백신접종에 대한 불신과 거부로 이어지고 있다. 현장에서는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서 걱정이다.”
권시장의 백신도입 시도는 중앙정계 진출을 위한 무리수라는 지적도 나왔다. 백신공포의 바탕이 된 ‘기승전 반문재인’이라는 진영논리를 활용했다는 추측이다. 지난해 신천지사태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은 대구경북지역의 낮은 백신접종률은 지역의 공고한 정부 불신여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권시장이 개념없는 정치와 무능한 정부, 비겁한 전문가를 싸잡아 공격한 배경에는 백신의 자체도입을 기반으로 중앙정계에 도전하겠다는 욕심이 깔려 있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대구시의 백신사기사건이 해프닝으로 끝내서는 안된다는 대구시민의 원성이 만만치 않다. 의료계가 추진한 일로 선의를 왜곡하고 폄훼한다고 지적한 변명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라는 것이다. 사기당할 뻔한 사람을 구해주니 모욕감을 주었다며 성을 내는 것 같다는 비판이다. 대구가 지역구인 홍준표의원은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는 “사기로 밝혀지고 예산이 지원되었다면 모두 환수되어야 할 것”이라며 “불법예산을 집행한 사람은 국고손실죄로 처벌받을 수 있는 중차대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대구지역 시민단체들은 중앙정부의 대구시 감사와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대구경북보건단체연대회의는 “비공식적 경로로 화이자백신 도입을 추진하다 혼란과 혼선, 국제적 망신거리가 된 권영진시장이 책임마저 떠넘기며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 의혹은 일파만파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며 이렇게 밝혔다. 연대회의는 “화이자백신은 각국 중앙정부와 코백스에만 백신을 공급하고 있어 대구시가 모를리 없고, 몰랐다면 무능과 무지의 극치”라고 “권시장은 아니면말고식 무책임한 태도로 백신도입의 국가적 혼란과 혼선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연대회의는 중앙정부의 정부 합동감사가 대구시를 대상으로 실시중이므로 감사인력을 보강해 관련 감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법과 제도를 위반하고 예산을 편법으로 유용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고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구경실련도 대구시의회가 행정사무조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할 것을 요구했다. “화이자 백신 사태는 권시장의 소속정당인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공개적으로 비판할 정도로 민망하고 심각한 사안으로 대구시민의 자존과 명예를 위해서라도 진상과 책임이 규명되어야 한다.” 대구경실련은 “대구시가 집행한 예산은 없다고 밝혔지만 백신도입 추진 과정에 적극 개입했고 계약금을 지불했다는 의혹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며 “대구시의 주장이 사실이라도 이를 인정할 만한 근거와 신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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