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정치적 관종’ 프로보커터… 김어준과 진중권의 경우

<김주언 칼럼> ‘정치적 관종’ 프로보커터… 김어준과 진중권의 경우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1.04.2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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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한국사회를 규정하는 규정하는 단어로 ‘양극화’와 ‘진영논리’를 꼽을 수 있다.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하고, 이른바 진보와 보수로 갈리는 진영 간의 갈등은 해소될 기미가 없다. 갈등과 불평등을 해소해야 할 정치는 오히려 갈등을 부추길 뿐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정치권에 들어가면 정쟁의 대상이 되고 만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주류 미디어는 물론 인터넷과 유튜브 SNS까지 상대에 대한 혐오와 분노로 차고 넘친다. 공론장은 사라진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른바 ‘정치적 관종(관심종자)’들 때문이다. 
이들은 논리정연한 설명보다 과장된 몸짓과 날것의 말로 사회이슈를 오락화한다. 이른바 ‘관종 콘텐츠’이다. 이슈를 꼼꼼하게 분석하는 대신 원인과 책임을 개인이나 조직에게 돌리고 그들에게 분노와 막말을 퍼붓는다. 그들을 도발해 우리를 결집시킨다. 지적 자극보다 정서적 자극으로 선동하는 콘텐츠가 공론장을 휘젓는다. 콘텐츠 소비자들은 ‘사이다 발언’이라며 환호하고, 생산자는 여론시장의 아이돌로 군림한다. 도발적 퍼포먼스로 주목받고 이를 밑천삼아 여론에 영향을 끼치는 정치적 관종을 ‘프로보커터’(provocateur)라고 부른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서 포퓰리즘을 공부하는 김내훈씨는 최근 펴낸 신간 ‘프로보커터’(서해문집)에서 이들의 행태를 분석했다. 책 제목은 ‘도발하다’는 ‘프로보크(Provoke)’에서 따와 ‘도발하는 사람’이란 뜻한다. 도발로 확보한 주목을 통해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다. 시장의 성패가 품질경쟁이 아닌 주목경쟁에 달려 있는 시대에서 콘텐츠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주목을 끌기 위해서라면 막말로 선을 넘는 행위도 용인된다. ‘인정투쟁’ 대신 ‘주목투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바야흐로 사즉생의 주목경쟁에 나서는 관종들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어려운 이야기보다 단순한 이야기가 눈에 더 잘 띈다. 점잖은 표현보다 욕설섞인 막말이 더 큰 주목을 받는다. 주목 자체가 돈이 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유와 감정을 외주화하는 사람이 늘어간다. 언론매체들은 소셜미디어에 형성된 에코 체임버에서 기삿감을 찾다 못해 스스로 소셜미디어를 모방하려 든다. 이러한 시대에 기민하게 반응해 경제적 이득뿐만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까지 얻으려 하는 사람들이 출현하고 있다.” 김씨가 설명하는 프로보커터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눈길을 끌어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김씨는 프로보커터를 세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싸움꾼형, 음모론형, 그리고 두 유형을 종합하며 ‘관종’이 결합한 삼위일체형이다. 대표적으로 싸움꾼형은 진중권 전 동양대교수, 음모론형은 김어준씨이다.
“‘싸가지 없는’ 발언으로 상대를 도발하고 이에 격동한 상대를 ‘적’으로 설정한 뒤 이를 통해 ‘우리 편’ 추종자를 확보한다.” 진중권 전 교수이다. 김씨는 그를 ‘프로보커터들의 프로보커터’로 규정한다. “처음부터 정치적 반대자를 공격하기보다는 여론의 형세를 살피다가 영합하는 손쉬운 먹잇감 찾기”,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만한 인물을 타깃으로, 그의 기분이 최대한 나빠지도록 모욕적 언사를 던지는 데 주력”, “조롱조의 깐죽대는 어투와 제스처.” ‘모두까기’와 ‘돌려까기’는 그의 전매특허이다. “그를 가장 유명한 논객으로 만든 것은 지식인으로서의 어젠다가 아니라 퍼포먼스 능력”이다.
김어준은 ‘가장 성공한 프로보커터’이다. 저잣거리의 말투와 언어로 ‘무학의 통찰’ ‘공정한 편파’로 포장한 음모론자-예언가형 프로보커터이다. “도발을 위한 도발로서의 음모론, 정교함이 불필요한 음모론”, “타깃에 대한 터무니없되 센세이셔널한 주장을 큰 목소리와 과장된 제스처로” “위험을 무릅쓰고 밝히려는 듯한 비장미”, “무겁게 다뤄져야 할 논의를 농담처럼 툭툭 던지면서 거증책임은 피하되, 공론장에 논쟁과 소란을 일으키는 것.” 그는 “황우석 사건에서 ‘줄기세포를 바꿔치기했다’는 식의 음모론까지 동원하며 사건의 진상을 흐리는 데 일조했다.” 대중영합적 포퓰리스트와 주류미디어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를 자임-겸임하는 수단으로써 10년이상 줄기차게 펼치는 음모론의 서막이었다. 
‘기생충 박사’ 서민 단국대교수는 2019년이후 전형적 프로보커터의 행보를 걷고 있는 인물이다. 서교수는 최근 문재인 정부 지지층에 대한 도발과 공격을 일삼는 ‘문빠 저격수’로 활약하고 있다. 김씨는 유쾌한 비틀기와 패러디로 주목받은 풍자형 논객이었던 서민교수를 ‘게으르거나 무능한 프로보커터’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문빠’와 ‘대깨문’은 문재인 지지자들 스스로 만들어낸 표현이므로 서민의 문빠타령은 아무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서민이 뚜렷한 실체가 없는 적을 만들어 ‘섀도 복싱’을 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우파 프로보커터로는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 · 강용석) 차명진 윤서인 여명숙 유승준 등이 있다. 제도권에서 퇴출된 정치낭인들이거나 주목과 관심을 위해 무슨 짓이든 벌이는 사이버 렉카, 한줌의 내편을 위해 태극기부대로 전향한 연예인 등이다. 특히 강용석과 윤서인은 ‘태극기 코인과 반페미 코인의 혼종’인 ‘우파 번들’로 소개한다. 김씨는 “미국처럼 민주 진보진영이 도덕적 헤게모니를 상실”하면 극우 프로보커터에게 먹잇감을 던져주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며, “혐오의 언어가 일상언어와 뒤섞이는 순간 프로보커터는 언제든 득세하여 한국사회의 담론 전반을 주도하고 어지럽힐 것”이라고 우려했다.
언론은 프로보커터의 얘기를 확대 재생산하는 데 앞장선다. ‘언제든 인용 저널리즘’이 낳은 폐해이다. “언론이 프로보커터 뒤에 숨어 무책임한 얘기들을 퍼뜨린다. 더 큰 문제는 기성 언론사들이 프로보커터들의 행태를 따라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지난해 ‘인국공 사태’(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논란)때 카톡방의 가짜정보를 언론들이 사실확인 없이 보도했다. 대형 보수매체들이 프로보커터를 인용해 여론을 호도하고, 힘없는 매체들은 조회수를 위해 재생산했다. 언론매체와 프로보커터들의 악순환고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씨는 정부에 대한 진중권의 도발과 막말을 앞다퉈 인용 보도하는 보수언론의 행태를 ‘진중권 저널리즘’으로 규정한다. 정치적 영향력을 누리고 싶어하는 그와 그를 차도(借刀)삼아 상대진영을 공격하는 정파적 언론의 공생관계를 뜻한다. 그러나 진중권이 정부를 향해 근거없는 음모론까지 동원하고 토론회에서 악에 받친 듯한 태도를 보이는 데 대해 ‘프로보커터의 말기적 증상’으로 규정한다. 날로 떨어져가는 주목을 되살리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보수언론도 ’포스트 진중권 저널리즘‘을 찾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고 전망한다.
보수언론은 김어준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보수언론은 김어준의 말을 인용하며 ‘친문논객이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다’는 메시지를 퍼뜨린다. 하지만 이조차도 김어준에게는 도움만 될 뿐이다. 기성언론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언론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우리편’에 유리한 정파적 해설로 불안감을 해소하려 한다고 김씨는 분석한다. 
프로보커터는 극단적 도발로 이익을 챙기는 ‘나쁜 관종’(남의 관심을 병적으로 갈구하는 사람)에 가깝다. 비슷한 부류들은 어그로 인터넷트롤 사이버렉카 등으로 불려왔다. 주목받으면 살아남을 수 있는 신종직업이다. 프로보커터의 도발적 발언은 사이다처럼 시원할 수 있지만, 구정물처럼 구토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들은 공론장을 흔들어 여론형성을 방해하고 오히려 진영논리만을 강화시킬 뿐이다. 시민이 앞장서 프로보커터 문제를 이해하고 공론장오염을 경계해야 할 때이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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