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10여년만에 소환된 ‘욕망의 정치’… 뉴타운과 재건축규제 완화

<김주언 칼럼> 10여년만에 소환된 ‘욕망의 정치’… 뉴타운과 재건축규제 완화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1.04.01 10:33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욕망의 정치’가 10여년만에 되살아나고 있다.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뉴타운 공약으로 승리를 따냈다. 한나라당의 후신인 국민의힘은 4.7 서울시장 보선에서 재건축규제 완화란 카드로 서울시 유권자의 욕망을 자극하고 있다. 오세훈 후보는 “취임하면 일주일 안에 재건축 재개발 규제를 풀겠다”고 약속했다. 박영선 민주당 후보는 투기판 서울이 된다고 비판하면서도 ‘35층 룰 규제완화’에 대해 비슷한 목소리를 낸다. 이에 따라 재건축시장이 꿈틀거리는 등 주택시장을 들쑤시고 있다.
오후보는 한강변 ‘35층 룰’(한강변 아파트 층수를 35층이하로 제한) 완화와 안전진단 통과기준 완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규제완화 등 재건축관련 규제를 모두 해제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박후보가 “강남 재개발 재건축은 공공주도를 고집 안한다”고 밝힌 것도 비슷한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3월 들어 재건축시장이 꿈틀거리는 것은 서울시장 선거 여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부동산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서울시장선거 전에 사야 할 재건축아파트 리스트’가 돌아다닌다. 재건축규제 완화를 약속한 후보들의 말을 정리한 게시물도 공유된다.
재건축시장에서는 신고가가 속출하고 있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한달 전보다 10억이상 오른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했다. 이 지역 재건축조합장은 “서울시장 선거를 시작으로 내년 대통령선거까지 시기적 호재를 활용해 재건축사업의 속도를 끌어올리겠다”고도 말했다. 강남구 은마아파트는 한달 사이에 7000만원이 올라 신고가를 경신했다. 서울시장 후보들의 부동산 공약이 시장에 심리적 상승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오후보가 약진하면서 규제의 벽에 가로막혔던 한강변 강남 목동 재건축과 2.4대책 이후 급랭한 비강남권 재개발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강남구 압구정동과 영등포구 여의도동, 성동구 성수동, 양천구 목동 등의 재건축투자 문의가 급격히 늘었다고 한다. 민간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를 통한 주택공급이 대표공약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강변 재건축이 최대 수혜지역이 될 전망이다. 높이 제한을 없애 50층까지 허용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오후보는 불명예 퇴진으로 중단된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도 재가동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효과는 비강남권 재개발시장으로도 불어닥쳤다. 노후 빌라시장이 분위기 반전을 맞았다. 구역지정조차 이뤄지지 않은 재개발시장에도 투자자들이 몰려든다. 오후보가 도봉구 창동 일대를 강남역과 같은 북부수도권 중심지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과열양상마저 나타난다. 취득세율 1.1%인 공시가격 1억원미만 매물은 씨가 말랐다고 한다. 오후보가 구로차량기지를 이전한 뒤 핵심기능을 유치하겠다고 공약한 뒤 실투자금 수천만원 수준이던 빌라가격이 1억3000만원까지 올랐다.
두 후보는 공급중심 공약에 치우쳐 집값안정에는 비중을 두지 않고 있다. 박후보는 주택 30만호, 오후보는 36만호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박후보는 평당 1000만원가량의 반값아파트로 공공주택 30만호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오후보는 재개발 재건축 규제 및 용적률 층수 규제를 풀어 민간공급으로 18만5000호 등 36만호의 신규주택 공급을 약속했다. 두 후보의 공급공약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오후보의 재개발 재건축 공약은 집값상승을 부추길 우려가 크다.
벌써부터 투기성 매매가 잇따르면서 과거 뉴타운 광풍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여영국 정의당대표는 두 후보의 부동산공약을 “부동산가격 폭등을 초래한 뉴타운 시절로의 회귀”라고 비판했다. 여대표는 “LH사태가 일파만파 퍼지면서 한국사회가 부동산 투기공화국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지만 두후보는 LH사태의 교훈을 읽지 못하고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MB의 뉴타운은 강남북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두후보의 공약은 명분도 없이 개발만 외치고 있다는 것이다.
뉴타운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히트상품이었다. 낙후지역의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명분과 집값상승이란 실리가 함께 한 정책이었다. 은평 길음 왕십리 세곳에서 출발한 뉴타운은 MB의 시장재임 시절 25곳(상업지형 뉴타운 포함할 경우 33곳)으로 늘었다. 후임인 오세훈시장도 뉴타운을 핵심 부동산정책으로 삼았다. 그만큼 효용도가 높았다. 뉴타운설만 돌아도 집값이 들썩였다.
 뉴타운은 유권자들의 내집마련 꿈과 투기 욕망을 자극한 전형적 포퓰리즘 정책이었다. 2008년 4월9일 치러진 18대 총선은 뉴타운 공약이 판세를 좌우했다. 뉴타운 건설은 당시 한나라당 후보들의 공통공약이 됐다. 집값이 뛰자 주민은 환호했고 한나라당 후보들의 지지율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선거결과 40명의 ‘뉴타운돌이’들이 탄생했다. 서울 48개 선거구 중 한나라당이 40석을 싹쓸이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뉴타운 10곳을 추가로 지정하겠다”며 분위기를 띄웠다.
뉴타운 공약으로 강북벨트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들은 줄줄이 낙마했다.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김근태후보를 비롯하여 진보신당 노회찬후보까지 패배의 쓴잔을 들어야 했다. 선거가 끝난 뒤  당시 오세훈시장은 집값안정을 이유로 “뉴타운 계획을 유보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부동산시장은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강북벨트를 중심으로 부동산가격이 급등해 2008년 4월 첫째주 서울의 아파트값 상승률은 노원구가 1.13%로 1위, 도봉구가 0.67%로 2위를 기록했다.
뉴타운 사업은 오래가지 않았다. 총선 5개월후부터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파국이 시작됐다. 짧은 기간에 지나치게 넓고 많은 지역을 사업지구 지정한 것부터 문제였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생활권 정비라는 취지는 사라지고 재개발 투기사업으로 변모했다. 무분별하게 뉴타운지구를 지정하면서 세입자 비율이 시범뉴타운 59%, 2차뉴타운 66%, 3차뉴타운 77%로 높아져 전월세난이 가중됐다. 급격한 재개발로 지역공동체는 파괴돼 낙후지역 개발이라는 서민의 단꿈은 ‘원주민 재정착률 20%이하’라는 문제를 일으켰다.
2011년 8월 무상급식 찬반투표의 무산으로 오 시장이 사퇴하면서 뉴타운 사업은 파산을 고했다. 보궐선거로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은 뉴타운사업의 후과를 수습하기 위해 전면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박시장이 2013년 9월13일 ‘창신 숭인 뉴타운지구’를 해제하면서 실패한 사업으로 판명났다. 뉴타운사업은 신개발주의 아이콘 이명박과 오세훈이 쏟아낸 주술과도 같았다. 저성장시대에서 허망한 신기루에 불과했다. 뉴타운지구가 처음 지정된 2002년 10월부터 해제가 시작된 2013년 9월까지 서울시민은 한바탕 미몽을 꾸었는지도 모른다.
2008년 총선에서 나타난 뉴타운 광풍은 ‘욕망의 정치’로 불린다. 현실에서 단기간에 실현되기 어려운 욕망에 따른 투표행위를 말한다. 현재의 이익이 아니라 미래의 기대에 표를 던지는 행위이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지적한 “채워지기 어려운, 아니 채워질 수 없는 욕구를 표출하는 행위”라고나 할까. ‘욕망의 정치’는 가치보다 욕망, 공공성보다 사익성, 국가보다 시장을 특권화하는 세계화시대 정치의 전형이다. ‘경쟁에 의한, 경쟁을 위한, 경쟁의’ 신자유주의와도 대응하는 비극의 정치이기도 하다. 김호기 연세대교수의 분석이다.
서울시장 보선에서 나타난 후보들, 특히 오세훈 후보의 부동산공약은 유권자들의 욕망을 부추긴다. 10여년 전 뉴타운 공약으로 소속정당의 승기를 잡은 ‘토건 포퓰리스트’ 오후보의 선거전략이 이번에도 먹힐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저작권자 © 데일리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