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사법 쿠데타’에서 ‘사법 사기’ 피해자로 뒤바뀐 룰라

<김주언 칼럼> ‘사법 쿠데타’에서 ‘사법 사기’ 피해자로 뒤바뀐 룰라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1.03.1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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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왔던 ‘사법 쿠데타’가 ‘사법 사기’로 급변했다. 연방대법원이 ‘좌파의 대부’로 불리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에 내려진 실형을 무효화했기 때문이다. 룰라 전 대통령은 자신이 “브라질 500년 역사상 사법사기의 최대 피해자”라며 부패수사를 이끈 세르지우 모루 전 법무부장관을 비난했다. 룰라는 수감돼 있는 동안 부인과 동생이 사망했고, 동생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룰라는 “내가 겪은 고통은 수백만의 코로나19 희생자나 가족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며 국민을 위로했다. 
룰라 전 대통령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권주자 지지율 1위를 기록해 내년 대선에서 자이르 보우소나르 대통령을 꺾을지 이목이 쏠린다. ‘좌파 대부’ 룰라와 ‘극우 포퓰리스트’ 보우소나루의 대결에 ‘브라질 판 샌더스와 트럼프의 대결’이 펼쳐질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왔다. 브라질 SNS에는 룰라의 대선가도를 응원하는 ‘#2022룰라대통령’ 해시태크가 늘어나고 있다. 노조 지도자 출신인 룰라 전 대통령은 2003~2011년 집권기간 브라질의 경제성장을 이끌었고, 합리적 사회복지 정책으로 수백만명을 빈곤에서 구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검찰이 룰라 전 대통령 등 집권당과 정부 인사를 구속하고, 여성대통령 지우마 호세프를 탄핵하여 정권을 붕괴시킨 과정은 브라질 민주주의를 위기로 이끈 ‘사법 쿠데타’로 불린다. 검찰과 사법부의 법 기술자들이 야금야금 민주제도와 규범을 침식하여 민주주의를 전복시킨 과정을 뜻한다. 주도자는 세르지우 모루 연방판사였다. 브라질은 연방판사가 수사까지 담당한다. 모루판사는 이탈리아의 정치부패를 소탕한 ‘깨끗한 손’(Mani Pulite)을 모델로 한 ‘세차 작전’(Lava Jato : 세차용 고압 분사기)을 주도했다.
모루는 수석판사로 정치인과 고위공직자의 돈세탁과 반부패 스캔들, 뇌물과 공금유용 사건 수사를 지휘하여 수많은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를 구속시켜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세차작전은  깨끗한 손과 달랐다. 예비구금제도로 구속하고, 분노를 유발하여 불안에 떨게 하고, 언론플레이를 통해 공격했다. 세차작전은 민주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정치적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모루는 노동당과 정부 인사를 무더기로 구속하고, 야당과 합세해 2016년 룰라 대통령 후임인 호세프 대통령을 예산작성규칙 위반을 이유로 탄핵시켜 노동당 정권이 붕괴됐다.
모루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차기 민선정부로 표적을 옮겼다. 호세프를 계승한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은 2017년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됐으나 탄핵소추는 면했다. 식물대통령으로 남은 임기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 모루의 최종 목표는 룰라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당시 지지율 80%의 룰라에 대한 사법공격에 들어가 2017년 돈세탁과 간접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시켜 룰라의 2018년 대선출마를 저지했다. 이에 따라 2018년 군 출신인 우익 포퓰리스트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모루는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법무장관에 임명됐다. 그러나 2020년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연방경찰청장을 해임한 데 항의하면서 사임한 뒤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부패한 우익 포퓰리스트로 공격하고 나섰다. 그는 내년 대선에 나설지 저울질하고 있다. 이처럼 브라질의 민주주의는 과거처럼 군부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는 것이 아니라, 사법권력과 법률지식을 동원한 검찰과 언론의 집요한 공격에 의해 스텔스적 방식으로 무너지는 것이다.
사법쿠데타 과정은 넷플릭스의 다큐 영화 ‘위기의 민주주의 : 룰라에서 탄핵까지’에 담겼다. 사법권력 행사와 언론 및 재벌 권력과의 관계를 다뤘다. 영화는 브라질 정치는 군부와 재벌 등 소수가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아들에게서 손자로, 손자에게서 증손자로’ 기득권을 대물림한다. ‘정치의 역사는 가족의 역사’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몇몇 가문은 언론을, 다른 가문은 은행을 장악하고 있죠. 모래와 시멘트, 자갈과 철을 소유한 가문도 있어요. 이들은 모두 민주주의와 법치에 진력을 내곤 합니다.”
룰라의 후임인 지우마는 브라질 최초의 여성대통령이었다. 지우마 대통령은 룰라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이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은 집요했다. 재벌과 자본이 소유한 언론, 그리고 검찰 동맹의 습격으로 지우마 대통령은 탄핵을 당한다. 야당은 부정부패가 아닌 정책 집행과정의 사소한 잘못을 빌미로 탄핵을 단행한 것이다. 지우마는 물러나면서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죽음”이라고 항변했다.
룰라 전 대통령의 수사와 재판을 담당했던 사람은 모루였다. 그는 룰라가 2008년 아파트 취득과정에서 건설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기소했다. 룰라는 구체적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고 재판과정에서도 아파트가 그의 소유라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1심 재판에서 9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상고법원에서 12년으로 늘어났다. 모루의 표적수사와 수사정보 유출, 언론의 악의적 보도는 민주진영에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검사들은 사건을 구경거리로 만들려고 했다. 언론은 룰라의 집을 급습해 수색하는 장면을 중계하기도 했다.
“누군가 요제프K를 무고했음에 틀림없다. 그는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날 아침 체포됐기 때문이다.” 룰라는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카프카의 소설 ‘심판’ 첫 구절에 비유했다. 요제프K에게 가해지는 사법제도 굴레에서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는 결백에 대한 확신밖에 없다. “그런 소송에 걸려 있다는 것은 이미 패소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걸세.”-‘심판’의 한 구절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 에지손 파킨 대법관은 “연방검찰 부패수사팀의 수사와 연방법원 판결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지구 반대편에 자리한 브라질과 한국은 공통점이 많다. 두 나라 모두 식민지 지배를 거쳤다. 오랜 군부독재 끝에 민주정권이 들어섰다. 그러나 기득권 카르텔이 공고해지는 과정에서 검찰과 사법부, 일부 언론이 활약한다. 국민은 분열하고 극우와 보수기독교가 득세한다. 중심에는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통해 검찰권과 사법권을 무소불위로 휘두른 검찰과 사법부가 자리한다. 브라질은 연방판사가 수사까지 담당하는 사법제도로 한국보다 권력이 강했다. ‘검찰주의자 윤석열’이 검찰개혁에 저항하며 보여준 검찰권 남용은 브라질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윤석열 검찰은 검찰개혁을 주장해온 법무부장관에 대항해 일가족 수사를 벌였고, 청와대 수사로 대응했다. 향응받은 검사는 불기소하고, 측근의 검언유착사건 수사를 방해하며, 한명숙 전총리 관련 모해위증 혐의는 수사하지 못하게 하는 등 제식구 감싸기에는 적극 나섰다. 보수야당과 보수세력의 지원사격과 보수언론의 전폭적 비호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윤총장이 사퇴한 뒤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1위로 올라선 것도 이들의 지원 덕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검찰개혁에 한발 나아갔다.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통해 집중된 수사권을 분산시킨 것이다. 그러나 검찰개혁의 궁극적 목표인 수사와 기소의 분리는 아직 달성되지 못했다. 민주당 일부 의원이 중대범죄수사처를 설치해 수사와 기소의 완전 분리를 추진하자 윤총장은 자진사퇴라는 길을 택했다.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려는 데 대한 항의표시였다. 야당과 보수언론은 윤총장 띄우기에 나섰다. ‘그릇이 매우 크고 최고권력까지 갈 수 있는 형국’이라는 사주까지 보도해 윤총장을 차기 대권주자 1위로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윤총장이 정치일선에 나설지는 오롯이 그의 몫이다. 그러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검찰권력이 그리워서 정치를 택하려 한다면 잘못 들어선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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