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트럼피즘과 ‘힐빌리의 노래’

<김주언 칼럼> 트럼피즘과 ‘힐빌리의 노래’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1.01.1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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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두번째 탄핵이 본격화한다. 트럼프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무장난입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이다. 미 연방검찰은 트럼프 대통령의 선동혐의도 조사한다. 그는 의사당에 난입한 지지자들을 “승리를 빼앗긴 애국자”로 두둔하기도 했다. 25건 이상의 테러혐의에 대한 수사도 진행중이다. 현장에서 소총과 화염병 폭발물 등이 수거됐기 때문이다. 의사당에 시위대가 난입하고 총격으로 사망자가 발생한 충격적 사태는 “미국 민주주의가 무너졌다”는 세계의 우려를 낳았다.
대선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불복을 밝혔을 때 후유증은 예상됐다. 하지만 의사당 난입 사태는 예상을 초월한 것이다. 가장 큰 책임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선거불복과 폭력사태를 선동하고 백악관앞 연설로 시위대를 자극했고 시위대는 의사당 안으로 난입했다. 하원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수정헌법 25조를 발동해 트럼프를 해임시키도록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 하원의원 210명이 이미 탄핵안에 서명했다.
대통령의 선동으로 의회에서 무장폭동이 일어난 사건은 충분히 탄핵사유가 된다. 그러나 임기가 불과 10일도 남지 않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얻을 수 있는 실질적 이득은 무엇인가. 민주당이 임기내 탄핵절차를 마무리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원의 탄핵재판에서 유죄판결이 나올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탄핵은 ‘대통령 트럼프’가 아닌 ‘정치인 트럼프’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임기가 끝나더라도 트럼프 지지자들의 집단화와 세력화는 막강하다. 트럼프는 2024년 대선 재도전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런 흐름을 끊어내자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열광적 지지자들은 백인 보수층이다. 그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든든한 지지층 때문이다. 비판자들에겐 ‘공감능력 부재, 독불장군, 천박한 속물’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낙인찍혔지만, 지지자들에겐 사이다 같은 인물이다. 포퓰리스트 트럼프는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배타적 인종주의와 반세계주의, 노골적 친기업 시장주의, 이민자 수용반대 등을 내세워 지지를 끌어냈다. 이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대선 당시 트럼프 후보의 자기중심적 언행과 세계관, 그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가리키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이른바 ‘트럼피즘’이다. 미국의 극심한 불평등과 양극화, 유색인종과 외국인 이민자 비율이 갈수록 늘어나는 인구 구성비의 변화, 주류 백인의 상실감과 분노, 미래에 대한 불안이 트럼피즘을 낳은 요인으로 꼽힌다. 많은 미국인들은 트럼프대통령 시대가 끝나더라도 ‘트럼프의 유령’(트럼피즘)은 미국사회에 어른거릴 것으로 전망한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트럼피즘이 미국에 끼친 악영향은 매우 많다. 우선 대선불복을 꼽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에서 조 바이든 후보에게 패배했지만 정치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는 대선에서 7235만표를 얻어 바이든 후부에 이어 미국 역사상 두번째로 많은 표를 획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표를 도둑질당했다”며 대선불복에 나선 이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피폐한 삶을 살아가는 백인 보수층을 끌어내기 위해 희생양을 만들었다. 그는 좌파이념과 이주민, 외국인들에게 화살을 돌리고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환호를 끌어냈다. 
트럼피즘 열풍은 미국 중년 백인남성의 분노와 상실감에서 비롯됐다. 2001년 9.11테러 이후 20년 가까이 지속해온 전쟁과 신자유주의 거품경제가 폭발한 2008년 금융위기가 결정적이었다. 리먼사태 당시 4000만명의 노동자가 해고됐고 아직도 1400만명이 일자리를 찾거나 시간제 일자리에 매달리고 있다. 이들은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 ‘임금절벽’에 시달리고 있다. 리먼사태이후 높은 실업률의 원인으로 미국인들은 ‘값싼 외국인 노동력’과 ‘불법이민’ ‘월가 은행가들’을 꼽는다.
트럼피즘에 열광하는 부류로는 ‘힐빌리(hillbilly)’가 대표로 꼽힌다. 백인이지만 하층노동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레드넥(red-neck), 백인 트래시(trash)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대부분 러스트 벨트(rust-belt : 낙후된 공업지역)에 거주한다. 러스트 벨트는 1970년대까지 공장이 밀집되어 인구도 많았고 도시도 발달되어 중산층을 지탱하던 상징적 장소였다. 전통적 민주당지지 지역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조업이 해외로 나가면서 도시는 황폐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에서 이들을 결집시켜 공화당 지지세력으로 전환시켰다.
이들은 왜 트럼프 핵심지지세력이 되었나. 힐빌리 중 한사람이었던 J D 밴스는 회고록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에서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밴스는 어려운 가정환경을 극복하고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한 뒤 실리콘밸리의 유망한 사업가로 자수성가했다. 러스트 벨트에서 태어난 밴스는 마약 중독에 빠지거나 자식양육권을 포기한 부모와 어린시절 가난과 되풀이된 가정폭력, 개인의 우울과 불안을 딛고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면서 성공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출간된 이후 폭발적 인기를 끌어 아마존 1위를 기록했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지난해말 국내에서도 개봉했다.
밴스는 청소년시절 자신이 겪었던 절망과 분노를 이렇게 표현했다. “정부의 복지제도에 기대 어 놀고 먹는 사람들이 사회를 비웃는다. 우리같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매일 일터에 나간다는 이유로 조롱받고 있다.” 꼬박 2주동안의 아르바이트 급료는 티본스테이크를 먹고 싶었던 고등학생을 좌절시킬 만큼 적은 액수였지만, 이웃집 마약중독자는 실업수당으로 일도 안하면서 2주에 한번씩 스테이크를 사먹더라. 앞집서 놀고 먹던 흑인여성은 정부가 준 푸드스탬프로 산 탄산음료 두박스를 들고 와서 할머니에게 싸게 줄 테니 현금을 달라고 하더라.
밴스는 미국 주류층이 외면하는 미국사회의 드러나지 않고 주목받지 못하는 문제점들을 통렬하게 지적했다. “극빈가에 거주하는 백인 노동계층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1970년에는 백인 어린이의 25%가 빈곤율 10%이상인 동네에 거주했다. 2000년에는 40%로 증가했다. 현재는 이를 훨씬 웃돌 게 분명하다.” 미국 주류사회가 외면했던 힐빌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포퓰리즘에 힘입어 자칫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급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를 밴스는 자신의 회고를 통해 담담하게 풀어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라져도 그를 탄생시킨 전제조건은 남는다. 소셜미디어와 가짜뉴스, 이를 활용한 포퓰리즘, 노조를 중심으로 노동자가 단결할 수 있었던 전통산업의 몰락과 거대 테크기업을 중심으로 재편된 산업구조가 낳은 극심한 양극화는 제2, 제3의 트럼프를 키워내는 비옥한 토양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국가가 비슷한 환경 속에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많은 자영업자와 중산층의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반면 대기업은 수출호조로 많은 이익을 낸다. 주식시장은 연일 폭등세로 코스피 3000을 훌쩍 넘어섰다. 정치도 양극단으로 치달아 적과 동지라는 이분법적 진영논리가 횡행한다. SNS와 유튜브 등에는 가짜뉴스가 넘쳐나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이런 판국에 트럼프같은 포퓰리스트가 등장하면 어찌 될 것인가. 어렵게 쌓아올린 민주주의 금자탑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우리 모두 지혜를 모을 때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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