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의 천변풍경> 저무는 '코로나 해'에 아버지를 보내며

<이수경의 천변풍경> 저무는 '코로나 해'에 아버지를 보내며

  • 기자명 이수경 기자
  • 입력 2020.12.3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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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이라 사진 찍는 것도 흔하지 않았던 시절.

아버지가 집 앞에서 초등 저학년생이었을 듯한 여동생, 남동생을 양쪽에 어깨동무하며 환하게 웃던 사진이 기억난다. 유난히 햇살도 좋았던 것 같다. 손뜨개 조끼를 입었던 것으로 보아 초봄이었을까, 초겨울이었을까?

사진은 누가 찍었을까? 난 왜 안 찍혔지? 당연히 그 시절 집에 사진기는 없었으니, 누군가 외부 손님이 사진기를 가져와 찍은 것 같다. 이 사진은 내 기억 속에만 있다. 지금 어디 있는지 찾을 수는 없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면 이 사진이 환하게 떠오른다. 엄마에겐 그닥 좋은 남편은 아니었지만, 자식들에겐 꽤 다정했던 아버지. 그 시절 시골 아버지답지 않게 잘 안아주고 무릎에 앉히고, 뽀뽀도 하곤 했던 것 같다. 아버지의 까칠한 턱수염 감촉이 느껴진다.

당시 농촌에서 5남매를 모두 대학에 보내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맏이던 언니 또래는 대학에 간 경우가 거의 없었다. 아마도 아버지의 학구열이 한몫했을 것이다. 장남 장손은 으레 농사를 물려받아야 하던 때 아버지는 공부를 하고 싶어 당신의 할아버지 몰래 집에서 꽤 떨어진 도시의 명문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녔다. 유학을 한 셈이다.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국민학교 시절부터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이 못 푸는 산수 문제를 척척 풀었다고 한다. 훌륭한 교육자가 꿈이었다는 아버지는 식비 아껴가며 책 사보느라 건강을 해쳤다고 한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또 하나 떠오르는 장면은 내가 대학 입학하던 날이다. 사전에 오티(OT)가 있었을 테지만 시골에서 가기 번거로워 참석 안 했다. 그래서 대학이란 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대체 모른 채 입학식 당일 아버지와 나는 과사무실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더러 과사무실에 물어보라고 했지만 뭘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겠고 해서 짜증을 냈다. 오티에 참석 안 한 것도, 수강신청이고 뭐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 아버지 탓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때 건강을 해쳐 귀가 안 좋아져 당시에도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다. 아버지가 귀가 잘 안 들리는 것도 화가 났던 것 같다. 내가 짜증을 내도 아버지는 별 말씀이 없으셨다. 그렇게 대학 4년이 지나고 졸업식날 찍은 가족사진도 떠오른다. 아버지는 꽤 미남이셨다.

그리고 영정사진. 2020년 10월 19일 오후 9시 4분 아버지는 향년 86세로 소천하셨다. 2분 정도 늦게 요양병원에 도착한 나는 많이 야윈 아버지 얼굴을 보았다. 정말 돌아가셨나 싶어서 아버지 코앞에 잠시 손등을 대보았다. 정말 숨을 안 쉬는 게 느껴질까봐 빨리 손을 뗀 것 같다.

지난 봄, 지인의 아버지가 요양병원에서 면회도 잘 안되는 상황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새로운 충격이었다. 면회 안 오는 자녀들에게 서운해하며 눈을 감았을까봐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두 달 전 아버지 장례식장에 왔던 친구도 어머니가 편찮으시다고 걱정했다. 친구 어머니도 얼마 전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다. 돌아가셔야 맘껏 면회하는 게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사망 소식을 접한 가족은 뭔가 석연치 않고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지난 28일 기준 코로나 하루 사망자 40여 명. 그 중 요양병원 어르신이 70%를 차지한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코호트 격리되어 죽어가는 요양병원 환자들을 구출해 달라’는 글도 올라왔다. 코로나로 인한 사망이 아니더라도 많은 노인들이 요양병원에서 외롭게 세상을 떠나고 있다. 코로나가 종식돼도 상황은 비슷할 것이다. 올해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5%를 넘어섰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 10명당 1명이 치매를 앓고 있으며 지난 10년 새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노인 복지에 큰 관심과 지원이 시급하다. 맞벌이 등으로 바쁜 현대사회에 집에서 아픈 노인을 장기적으로 돌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관리하는 요양원, 요양병원을 늘려야 한다. 민간시설도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만들어 적절한 비용에 양질의 돌봄, 치료시설로 속히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이렇게 바라는 이유는, 나는 좀더 나은 환경에서 품위 있게 노년의 병상생활을 누리고 싶어서이다. 인생은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침은 더 중요하다. 2020년이 어느새 마침표를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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