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교수들이 추천한 사자성어로 풀어본 경자년

<김주언 칼럼>교수들이 추천한 사자성어로 풀어본 경자년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0.12.31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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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가 또 저물어간다. 오늘이 경자년(庚子年) 마지막날이다. 지난 1년은 코로나19라는 재앙이 세계를 뒤덮었다.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끝나가는 한해이다. 백신접종이 시작되고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지구촌의 재앙은 종식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언제일지 속단하기는 어렵다. 국내에서는 정치적 양극화가 더욱 심화했다. 총선에서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여야의 정쟁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특히 검찰개혁을 둘러싼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이 1년내내 지속됐다. 국민도 양극단으로 갈라서 서로 헐뜯는 양상이 심화했다.  교수신문은 매년 사자성어를 통해 한해동안 벌어진 한국사회를 표현한다. 스무번째 올해의 사자성어는 ‘아시타비(我是他非)‘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뜻이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한자어로 옮긴 신조어이다. 정치권이 여야로 갈라져 사사건건 서로 공격하며 잘못은 남탓으로 돌리는 상황을 꼬집은 것이다. 교수신문은 교수 900여명을 대상으로 이메일 설문조사를 벌여 아시타비를 선정했다. 후보로 추천된 사자성어들을 보면 한해동안 한국사회를 달구었던 주요이슈들이 드러난다. 
지난해 사자성어는 ‘공명지조(共命之鳥)’였다. 몸 하나에 머리가 두 개인 새를 말한다. 머리 한쪽이 없어지면 혼자 살아남을 수 없다는 뜻이다. 생각이 양극단을 달리더라도 사실을 목숨을 함께 나누는 운명공동체임을 자각하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올해에도 정치권은 물론, 국민도 양극단으로 갈라져 더욱 치열한 싸움을 벌인 셈이다. 아시타비를 추천한 정태연 중앙대교수는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위기와 정치 사회적 대치 속에서 아시타비의 자세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가 됐다”고 꼬집었다.
교수들이 아시타비를 추천한 이유는 이렇다. “조국에 이어 추미애 윤석열 기사로 한해를 도배했는데 골자는 한줄이다. ‘나는 깨끗하고 정당하다’” “진보정권은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 없고 보수세력은 과거를 뉘우치지 않는다” “도덕적 시비에 빠진 적폐청산과 야당의 방어전략으로 추상적 도덕적 차원에 국정이 고립됐다” 아시타비에 따라붙은 한줄 평이었다. 교수들은 정치인뿐 아니라 언론과 검찰  지식인을 질타하는 목소리를 쏟아냈다.
검찰개혁을 둘러싼 ‘추윤갈등’은 한해를 달군 이슈였다. 지난 1월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취임한 이후 ‘검언유착 의혹’, ‘검사접대 의혹’ 등이 터져 나왔다. 두차례 수사지휘권 발동과 헌정사상 첫 검찰총장 징계(정직 2개월)도 잇따랐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두차례에 걸쳐 직무에서 배제됐으나 법원 결정으로 복귀했다. 검찰개혁에 반발하는 검사들의 집단행동도 이어졌다.  여권과 검찰, 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의 갈등은 막바지로 치달았다. 어렵사리 내년초 출범하는 공수처가 검찰을 견제하는 기구로 자리잡을지 주목된다.
2위로 뽑힌 ‘후안무치(厚顔無恥)’도 궤를 같이 한다. “낯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이다. ‘내로남불’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잘못은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담겨 있다. 교수들의 날선 비판이 이어졌다. “임명직이 임명권자를 능멸”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윤석열총장이 대통령의 징계 재가에도 불구하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징계를 무효화시킨 것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능멸’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여권을 향해서는 “586집권세력의 초법적 행태”라고 꼬집었다.
 언론에 대해서는 날선 비판이 많았다. 진영논리를 앞세워 정파보도에 치우쳤다는 따끔한 지적이다. “언론의 감정적이고 도를 넘은 보도”로 공론장이 무너졌다는 비판이다. 언론은 “가짜뉴스와 대안적 진실을 앞세운 확증편향”을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심어 주었다. “각자의 입장에 경도된 언론과 논객, 지식인의 왜곡된 정치의식”이 국민의 양극화를 부추기는 수단이 된 셈이다. 언론과 정치인의 편가르기는 국민도 양진영으로 갈라져 대화와 협의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코로나19로 국가적 재난이 초래됐지만 민생은 뒷전이었다. 재난 대응책을 놓고도 사사건건 부닥치기만 했다. 정부의 개혁정책은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이러한 답답함은 격화소양(隔靴搔痒)이란 사자성어로 나타났다. ‘신을 신은 채 가려운 부위를 긁는다’라는 뜻이다. 김병기 전북대교수는 “정부의지에는 공감하지만 피부로 느낄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 답답하다”고 추천이유를 밝혔다. “촛불대선과 총선압승에도 오히려 약해진 집권여당의 개혁의지”와 “검찰개혁 부동산정책 등 주요의제에서 기득권층의 끈질긴 저항”이 원인으로 꼽혔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초점을 맞춘 사자성어로는 첩첩산중(疊疊山中)과 천학지어(泉涸之魚)가 추천됐다. ‘여러 산이 겹치고 겹친 산속’을 의미하는 첩첩산중은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상황과 맞아 떨어진다”는 의견이다. “코로나19 대유행에 조류독감과 돼지열병까지 겹치는 현실”은 잘 맞아 떨어진다. 혹독한 세태에서도 국민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말라가는 샘에서 물고기들이 서로 돕는다’는 뜻의 천학지어를 실천한 것이다. 시민의 연대와 협력, 의사와 간호사 소방대원의 살신성인 정신이 희망의 근거이다. 
코로나19 사태라는 미증유의 재난에 맞서 인류가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은 ‘절처봉생(絶處逢生)’으로 표현됐다. ‘몹시 쪼들리던 판에 요행히 살 길이 생겼다’는 뜻으로 바둑용어로도 쓰인다. 이동철 용인대교수는 “인류의 위기상황에서 온라인교육 전환, 기본소득 논의, 자본주의와 생태주의에 대한 반성이 나오면서 살 길을 모색하고 있다”며 “새로운 문명,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담고자 했다”고 추천이유를 설명했다.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은 ‘불상유통(不相流通)’을 추천했다. ‘세종실록’에 수록된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는다”라는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서로 소통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박소장은 “남북관계와 검찰개혁, 코로나19 등에서 정부와 국민 사이, 정부 부처 사이, 국민 사이 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며 “2020년은 불통의 한해”라고 진단했다. 진영갈등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단절이 전면화하고 일상화한 상황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사자성어이다.
올해의 사자성어 ‘아시타비’를 추천한 최재목 영남대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최근 우리사회에는 ‘내 탓’ ‘내 잘못’ ‘내 책임’이라는 자기성찰을 망각하는 기류가 만연해 있다. 차츰 얼굴이 두꺼워져 부끄러운 줄을 모르게 된 후안무치(厚顔無恥)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머리를 숙이고 ‘잘못했습니다. 사과드립니다.’라는 말버릇도, 반성하는 태도도 모두 사라졌다. ‘저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저쪽이 잘못이고 가짜뉴스이고 거짓말입니다’라는 식의 상대방 비방이나 감정대립의 오만한 언사만 늘어났다. 그만큼 내면이 아프고 병들어왔다는 말이다.”
‘내로남불의 해’가 오늘로 마무리된다. 내년에는 정치권 싸움이 더욱 거세져 ‘내로남불 시즌2’가 열릴지도 모른다. 대선 전초전으로 불리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언론과 지지세력 간 싸움도 극렬해질 것이다. 새해에는 국민 모두 ‘내탓이오’를 외치는 운동이 불길처럼 일어나기를 고대한다. 코로나19 사태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 백신접종이 예정돼 있고 치료제도 개발됐으나 섣불리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선언하기는 어렵다. 코로나19도 하루빨리 종식돼 일상이 회복되기를 기원한다.   
새해 신축년(辛丑年)은 ‘흰 소띠 해’를 의미한다. 흰 소는 신성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새해에는 상서로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대한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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