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폰지사기와 라임·옵티머스 사태

<김주언 칼럼> 폰지사기와 라임·옵티머스 사태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0.10.2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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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계 미국인 찰스 폰지는 1919년 국제우편쿠폰이 1차 세계대전 이전 환율로 교환된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해외에서 매입한 뒤 미국에 유통시키면 막대한 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 폰지는 45일후 원금의 50%, 90일후에는 100%의 수익을 지급하기로 하고 투자자를 모집했다. 약정 수익금이 지급되자 투자자들은 재투자하는 한편, 지인을 2차 투자자로 모집했다. 나중에 투자한 사람의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의 수익을 지급하는 다단계 피라미드 방식이 이용됐다. 투자총액은 불어나 그는 몇 개월만에 무일푼에서 갑부가 됐다.
그러나 폰지방식의 국제우편사업을 허용한 전례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환전기간이 약속보다 오래 걸린다는 의혹이 제기돼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그의 사업은 순식간에 몰락했다. 폰지는 1920년 8월 파산했고 사기혐의로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는 1925년 플로리다주에서 유령회사를 차려놓고 같은 방식의 사기행각을 벌이다가 다시 체포돼 징역 9년형을 선고받았다. 다단계 금융사기를 일컫는 ‘폰지사기’란 말이 금융계에서 널리 쓰이게 된 시초이다.
한 세기가 지난 시점에서 폰지사기와 비슷한 금융비리가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라임·옵티머스 사건이 그것이다. 이자율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장한다며 사모펀드로 투자자들을 끌어 모은 뒤 환매중단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수천명의 투자자들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전 재산을 날린 투자자들도 많다. 환매중단 규모는 각각 1조원대에 이른다. 라임은 1조6000억원, 옵티머스도 1조원 규모이다. 금융당국은 펀드를 판매한 은행이나 증권사에게 손해를 보전해주라고 했으나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모펀드는 투자자가 49명 이하로 제한된다. 투자금액은 최소 3억원 이상(현재 기준)이다.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뒤 지분을 매각해 차익을 벌거나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해 수익을 낸다. 펀드를 설계하고 운용하는 주체는 자산운용사이다. 직원이 10명 안팎으로 작고 영세하다. 따라서 은행과 증권사에 판매를 맡긴다. 투자자들은 이들 금융사 직원의 권유로 가입했다가 문제가 생긴 이후 자산운용사 상품이라는 걸 알게 된다. 피해자들이 “은행 상품인 줄 알았다”거나 “증권사 직원 추천으로 가입했다”고 항의하는 이유이다.
금융당국은 2015년 사모펀드 육성책에 따라 규제를 완화했다. 자산운용사 설립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고 자기자본요건도 6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췄다. 이에 따라 운용사는 2014년 10곳에서 2019년 217곳으로 20배 늘어났다. 신생업체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편법·불법운용이 난무했다. 모펀드를 설정한 뒤 수백개의 새끼펀드를 만들어 판매했다. 라임의 경우 모펀드에 달린 새끼펀드가 173개에 이른다. 폰지사기처럼 새끼펀드들끼리 돌려막기를 하다가 환매중단사태에 이른 것이다.
투자자 진입장벽도 낮아졌다. 최소 투자금액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췄다. 투자권유 이전에 투자자의 재산상황과 투자경험 등을 의무적으로 파악하는 ‘적합성 적정성 원칙’도 면제했다. 이에 따라 “전재산을 투자하거나 대출을 받아 금액요건을 맞추는 투자자들”도 심심찮게 나왔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퇴직금까지 투자하는 경우도 생겼다.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자본시장의 사기꾼들까지 대거 들어오면서 거의 무법지대로 떨어졌다. 사모펀드 원본액은 2014년 173조원에서 2019년 412조원으로 급증했다.
라임사태와 옵티머스사태는 사모펀드에서 터진 사고이다. 두 펀드 모두 1조원대의 대규모 환매중단에서 비롯됐다. 라임은 부실펀드의 자산을 멀쩡한 다른 펀드자금으로 사들이며 수익이  나는 것처럼 포장했다. 옵티머스는 아예 보유하지 않은 자산을 내세워 투자자금을 끌어모은 뒤 부실 사모사채에 투자하거나 부동산 개발에 썼다. 펀드 만기가 돌아오면 옵티머스가 운용하는 다른 펀드의 투자금을 끌어와 사모사채를 상환하고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돌려주었다. 전형적 폰지사기 수법인 ‘돌려막기’이다.
금융감독원은 사모펀드 운용사에 대한 조사에 나서 불완전판매와 부실투자 사실을 밝혀냈다. 불완전판매는 금융사가 고객의 부담비용과 위험요인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노인이나 주부처럼 금융관련 전문지식이 부족한 소비자들의 피해가 큰 이유이다. 펀드를 판매한 은행과 증권사들의 ‘옥석 가리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금감원은 자산운용사와 주요 사모펀드를 조사했다. 하지만 눈에 띄는 조처를 하지는 않았다. ‘의도적 봐주기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10년동안 발생한 사모펀드 환매연기는 361건에 달한다. 2011~2017년에는 단 1건도 없었으나 2018년 10건, 2019년 187건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8월까지 164건 발생해 전년대비 32%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5년 규제완화 이후 결성된 부실 사모펀드들의 만기가 돌아오면서 환매연기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라임자산운용과 알펜루트자산운용 등도 규제완화 이후 설립됐다.  
문제는 사모펀드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면서 새로운 부실 사모펀드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라임·옵티머스사태처럼 환매중단으로 묶인 자금은 무려 6조원을 넘는다. 금감원이 51개 운용사를 조사한 결과 환매중단 펀드의 규모는 6조589억원이다. 이에 더해 7263억원 규모의 펀드가 환매중단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산됐다. 옵티머스운용 펀드 2109억 원, 독일 헤리티지 DLS펀드 817억원, 이탈리아 헬스케어펀드 1391억원, 호주 부동산펀드 2420억원 등이다. 자산부실이 인지됐거나 유동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라임·옵티머스사태는 단순한 금융사기를 넘어 정관계 로비의혹으로 번지며 한국사회 태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정권이나 국회의원과의 연결고리를 내세우면 투자유치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정관계 실세를 내세우면 공공기관 투자도 유치할 수 있다.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사고발생에 대비해 미리 검찰이나 금융감독 당국자에게 손을 쓰는 것도 필수사항이다. 라임사태 주범인 김봉현씨 옥중편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두차례에 걸친 김씨의 옥중편지는 일파만파로 번지며 국감때 태풍의 핵으로 등장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국회 법사위 종합국감에서 라임·옵티머스사건에 대한 편파수사 의혹을 내세웠다. 추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옵티머스사건을 무혐의 처분한 데 대해 감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추장관은 라임사태 핵심인 김봉현씨의 옥중편지에 대해서도 “고액의 향응을 받은 검사가 수사팀장으로 투입돼 깜짝 놀랐다는 진술이 감찰결과 사실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옵티머스사건 수사팀을 교체하고 재수사에 나섰다.
금융당국은 지난해부터 다시 규제강화로 방향을 틀었다. 운용사의 자기자본미달 여부를 판단하는 주기를 연 1회에서 1개월 1회로 늘리고 등록말소 조건을 강화했다. 최소 투자금도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올렸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사모펀드사기를 막기는 어렵다. 금융 비전문가인 일반인들의 묻지마 투자를 막으려면 최소투자금을 5억원이상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 ‘선수들의 놀이터’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은행이나 증권사가 사모펀드를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전재산을 날린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보전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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