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 플라타너스의 헌신을 흠모한 시인

[시와 풍경] 플라타너스의 헌신을 흠모한 시인

  • 기자명 박상건 교수
  • 입력 2020.09.25 08:25
  • 수정 2020.09.25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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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승, ‘플라타너스’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별이 되고 창이 되는 길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중략)

먼 길에 올 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중략)

수고론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 김현승, ‘플라타너스’ 중에서

 

플라타너스(사진=박상건)
플라타너스(사진=박상건)

이 시는 플라타너스를 대상물로 하여 “네게 물으면”이라는 의인화를 통해 시인의 내면을 투영하고 있다. 이 시는 플라타너스에 감정이입을 통해 고독과 소망을 노래한 사색적이고 명상적이며 자연친화적이다.

플라타너스의 넓은 사랑과 헌신을 흠모한 시인은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 플라타너스와 함께 뿌리내리길 염원한다. 그래서 플라타너스처럼 넓고 푸른 가슴으로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별과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고 싶어 한다.

시인은 플라타너스를 삶의 동반자로서 동일성, 쉬운 단어 활용과 반복적 리듬으로 친밀감을 더했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등하굣길은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이었다. 신작로 양편으로 늘어선 플라타너스 길은 높은 하늘을 이고 시골버스, 오일장 오가는 사람들, 논밭에서 일하다 더위를 피하며 새참을 먹던 시솔사람들 풍경을 떠올려주곤 한다.

그런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이 이즈음 천덕꾸러기 신세라 안타깝다. 간판을 가리고 전선을 훼손하며 전망을 가린다는 이유로 가지와 잎사귀가 사각형 모양새로 싹싹 잘려나간다. 시인에게 영감을 준 창작무대인 광주시 양림동 100년 된 플라타너스는 단독주택 공사로 베어져 나갔다.

다형(茶兄) 김현승 시인은 1913년 평양에서 출생했다. 광주 숭일학교 수료 후 숭실전문학교 중퇴, 조선대 교수와 숭실대 교수를 지냈다. 숭일학교 교편생활 중 학교가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사건연루자 혐의로 파면됐다.

광복 후 광주 <호남신문>, 숭일학교 교감을 거쳐 서정주, 김동리, 조연현 등과 중앙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시인의 작품은 고독과 허무 등 인간의 근원적 문제와 절대적 신에게 더 가까이 가려는 의지를 표출하는 작품을 발표했다는 평가다.

4살 아들이 병들었으나 전쟁으로 약 한번 써보지 못한 채 죽자 이 비극을 ‘눈물’이라는 시로 표현했다. 1957년 ‘플라타너스’가 실린 첫 시집 ‘김현승시초’를 비롯해 ‘옹호자의 노래’, ‘견고한 고독’ 등의 시집이 있다.

글・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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