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반복되는 ‘위험의 외주화’ 참사를 막으려면

<김주언 칼럼> 반복되는 ‘위험의 외주화’ 참사를 막으려면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0.09.1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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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여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작업중 숨진 한국 서부발전 태안화력에서 또다시 사망자가 발생했다. 마모된 스크루를 정비하기 위해 지게차로 차량에 실어 밧줄로 고정하다가 스크루가 떨어져 화물차 기사가 깔려 숨졌다. 숨진 이는 외주업체가 고용한 특수고용직 노동자이다. 외주에 외주를 준 업무였던 셈이다. 김용균씨 사망이후 사회문제로 떠올랐던 ‘위험의 외주화’가 아직도 고질적 문제임이 드러났다. 김씨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구조적 문제가 온존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운수노조는 “안전감독자는 한국서부발전, 정비업무는 시흥기공, 지게차 운전은 재하청업체의 화물노동자로 이어지는 복잡한 고용구조가 책임과 권한의 공백을 만들어내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참극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용균재단은 “위험의 외주화가 유지되는 한, 왜곡된 고용구조가 유지되는 한, 작업자의 과실로 몰아가는 한, 지금과 같은 죽음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하청노동자 사망사고의 책임을 물어 원청을 처벌할 수 있어야 또다른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제정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는 김씨 사망사고 이후 지난해 산업보건의 위촉 및 의료체계 확립, 노동자의 안전보건활동 참여권 보장 등 작업현장 안전강화를 위한 22개 권고안을 내놨다. 그러나 권고안은 사업장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공공운수노조는 “위험업무에 투입되는 하청노동자의 의견이 안전정책에 반영되지 못했고, 응급환자에 대한 신속대응시스템도 구축되지 않아 이번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에는 건설중인 신서천화력발전소에서 변압기 폭발사고가 있었다. 노동자 4명이 화상을 입었고 그중 한명이 사망했다. 다른 화력발전소 기계점검 공사현장에서는 추락사고로 일용직 청년노동자가 크게 다쳤다. 서산 대산공단에서는 폭발사고가 잇따랐다. 대부분 설비안전점검 문제 때문이다. 화학물질 사고의 40%이상이 설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발생한다. 기업들이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비관리 주체가 사업주라서 강제하기 어렵다.
2015년부터 김용균씨가 목숨을 잃은 뒤인 2019년 8월까지 산재노동자 271명중 98%인 265명이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죽고 다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위험의 외주화’는 김씨 사망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김씨가 숨진 뒤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28년만에 산업안전법이 전면 개정됐다. 이른바 ‘김용균법’이다. 그러나 반쪽짜리 법에 머물고 말았다. 시행령에 예외를 폭넓게 인정했기 때문이다.
개정된 산업안전법은 위험한 작업의 경우 정부승인을 받아 하청을 줄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시행령에 예외를 두도록 규정했다. 시행령에는 황산 불산 등 4개 화학물질과 관련된 작업에만 노동부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원청의 안전책임을 강화한 건설기계도 타워크레인과 건설용 리프트 등 4개로 한정했다. 발전소 시설관리 등 유해 위험업무는 여전히 도급이 가능하게 됐다. 안전을 지키지 않을 경우 기업에 대한 처벌수위도 매우 약하다. 금지대상이 매우 한정됐을 뿐더러 위험판단을 사업주에 맡겨 위험환경은 방치되게 됐다.
김용균씨 죽음이후 원청과 하청 업체 책임자 14명이 기소됐으나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38명이 사망한 한익스프레스 이천참사 수사에서 공기단축을 요구한 발주처의 지시가 드러났으나 경찰은 발주처 대표이사를 기소에서 제외했다. 노동부 감독결과 발표에도 발주처는 빠졌다. 진짜 책임자는 빠져나가는 꼬리자르기식 처벌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발주처가 위험을 방치하고 안전을 무시하며 비정규직 고용구조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이유이다. 따라서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 산업현장의 안전불감증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매일 7명정도의 노동자가 죽어나가는 데도 산업재해는 끊이지 않는다.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불감증’ ‘또다시 인재’ ‘책임자 엄벌’ 등의 구호가 난무하지만, 용두사미로 끝날 뿐이다. 자본이 아니라 노동과 사람이 먼저 보호받아야 하는 안전사회가 시급한 이유이다. 산업재해를 예방하려면 중대재해와 사회적 참사에 대해서는 원청과 발주처 등의 책임자를 처벌해 기업이 제대로 법을 지키도록 만들어야 한다.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제정을 주창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그것이다. 
‘기업살인법’으로도 불리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자가 숨지는 등의 사고가 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처벌하자는 게 주된 내용이다. 안전조치 의무 등을 위반한 것이 확인되면 최장 7년이상의 유기징역이나 5억원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정의당 강은미의원 등이 발의한 이러한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하지만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이 법안보다 훨씬 강화한 내용의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전국 248개 단체가 참여하는 법 제정 운동본부는 노동자 시민이 직접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청원에 나섰다.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을 청원인으로 하여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민동의를 청원했다. 김이사장은 고인이 된 아들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너처럼 수없이 억울하게 죽어간 영령들을 위로하고 노동자들이 허망하게 죽는 것을 막는 강력한 법이 되어야 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정치권은 참사현장에서는 처벌강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국회는 아직 법 제정에 나서지 않고 있다. 정부도 과징금을 올리는 법 개정을 추진할 뿐이다. 
시민사회는 산업재해를 단순사고가 아닌 사회적 참사로 규정한다. 사회적 참사 특조위 조사(2020년)에 따르면 ‘기업과 공무원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재발방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시민의 응답이 80%를 넘어섰다. 피해자와 시민까지 책임자 형사처벌을 원하는데도 정부와 국회는 법 제정에 소극적이다.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노동자와 시민이 직접 법안을 발의하는 청원운동을 시작한 이유이다. 운동본부는 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http://omn.kr/1orjx)에 청원을 올리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9월25일까지 10만명이 동의하면 국회에 입법 발의된다. 이후 국회에서 정의당이 낸 법안등과 병합심사를 하게 된다.
코로나19 방역은 세계적 찬사를 받는다. 그런데 왜 세계 최고산업재해 왕국이라는 오명은  씻지 못하는 것일까. 코로나19로 사업장 가동률이 낮아졌음에도 산재사망은 더욱 증가하고 있다. 매년 20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죽어간 그 자리에서 또다른 노동자가 일하다가 죽는다. 산재사망과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같은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원청기업의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통해 예방하는 방안이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운동본부는 노동자와 시민의 참여를 호소했다. “하루에 7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퇴근하지 못하는 현실. 해마다 시민의 대형 참사가 반복되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 이 현실을 넘고자 이제 노동자 시민이 직접 법 제정에 나섭시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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