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알프스 ‘카슈미르’에 평화가 찾아오길”

“아시아의 알프스 ‘카슈미르’에 평화가 찾아오길”

  • 기자명 한민정 기자
  • 입력 2020.08.0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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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격전도시 홍콩, 인도・파키스탄 분쟁지역 카슈미르…국제문제 화두로 부상

[데일리스포츠한국 한민정 기자] 지금 아시아의 두 개 이슈와 쟁점이 국제문제의 활화산이 돼 있다. 코로나19 확산 속에서도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분열과 갈등, 긴장지대로 홍콩과 카슈미르 분쟁을 접근하고 있다.

지난해 6월 9일 홍콩 시민 100만 명은 송환법 철회 요구로 촉발된 홍콩문제는 중국정부가 홍콩보안법 시행에 이어 자유선거까지 제한하면서 미국과 갈등이 한층 악화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중국정부의 9월 홍콩 입법회 선거 개입 가능성을 경고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지난달 31일 시진핑 국가주석은 “우리가 맞닥뜨린 많은 문제는 중장기적인 것으로 반드시 지구전의 각도에서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카슈미르 분쟁 평화적 해결 촉구하는 파키스탄 단체들의 기자회견 모습
지난해 10월 카슈미르 분쟁 평화적 해결 촉구하는 파키스탄 단체들의 기자회견 모습

카슈미르는 인도와 중국, 파키스탄 경계에 있는 산악지대다. ‘아시아의 알프스’로 불릴 만큼 천혜의 환경을 자랑하는 이 아름다운 지역이 수탈과 분쟁의 화약고로 전락했다. 카슈미르는 1846년부터 힌두교 정권이 지배했지만, 다수의 주민들은 이슬람교도였다. 1947년 영국이 인도에서 철수할 때 인도반도는 인도와 파키스탄 두 나라로 분리 독립했다.

이때 카슈미르는 대부분 주민이 이슬람교도인 탓에 파키스탄으로 편입을 희망했다. 그러나 카슈미르 지도자 하리 싱은 자신이 힌두교도였던 이유로 여론과는 정반대로 인도로 편입을 결정했다. 이에 카슈미르 이슬람교도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하리 싱이 인도에 지원을 요청하면서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벌어졌고 1965년, 1971년까지 총 세 차례 양국 간 전쟁이 벌어졌다.

1949년 유엔은 휴전을 선언했다. 카슈미르는 북부는 아자드카슈미르로 파키스탄령, 남부는 잠무카슈미르로 인도령으로 분할됐다. 이런 상황에서 1962년 중국이 카슈미르 동쪽을 침공해 아크사이친 지역을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 현재 카슈미르는 파키스탄령, 인도령, 중국령 3곳으로 갈라져 있다.

최근 잠무 카슈미르 주민들은 “지난 70년간 인도의 점령 하에서 국제법과 인간규범에 위배되는 대규모 인권 침해를 받아왔다.”면서 “1947년 이후 50만 명 이상이 죽었고, 지난 30년 동안 1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인도 카슈미르에서 정부군과 반군 간 총격전 과정에서 희생된 바시르 아흐메드 칸에 대한 1일 장례식 모습
인도 카슈미르에서 정부군과 반군 간 총격전 과정에서 희생된 바시르 아흐메드 칸에 대한 1일 장례식 모습

잠무 카슈미르 주민들의 자기결정권은 유엔의 인정을 받았고, 분쟁 당사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이 동의했다. 1948년 4월 21일 유엔 안보리 결의 47호, 1948년 6월 3일 51호, 1950년 3월 14일 80호, 1951년 3월 30일 91호, 1957년 1월 24일 122호, 그리고 1948년 8월 13일과 1949년 1월 5일 유엔 인도 파키스탄 결의안에서 따라 잠무 카슈미르의 미래는 유엔의 뜻에 의해 공정한 국민투표의 민주적 방법을 통해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잠무 카슈미르 지역은 카슈미르 지역에는 3만5000명의 인도군이 파견돼 시민 통제를 시작돼 사실상 자체권이 박탈당했다. 주민들은 “인도정부는 주민들에게 저질러진 악행을 감추기 위해 국제인권과 인도주의 단체들에게 잠무 카슈미르 지역을 ‘No Go Area’로 만들었다”면서 “유엔인권사무소는 인도 측에 수차례 잠무 카슈미르를 방문해 현지 인권상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항상 무산됐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8년 6월, 유엔인권사무소는 주민들에게 자행된 인권침해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인권침해의 진실성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권고했다. 인도가 이를 거부한 가운데 인권침해를 강조한 2019년 후속보고서 작업은 계속됐다.

카슈미르 국경지역에서 인도와 중국이 유형사태를 빚었다(자료=연합뉴스)
카슈미르 국경지역에서 인도와 중국이 유형사태를 빚었다(자료=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지난해 8월5일 인도는 국제법과 안보리 결의 및 파키스탄과 양자협정을 무시하고 분쟁지역을 일방적으로 인도연합으로 병합했다. 지난 1년 동안 잠무 카슈미르는 휴대폰, 인터넷, 유선전화 등이 차단되면서 엄격한 통행금지를 받았다. 주민들은 봉쇄조치로 유아용 식량과 생명을 구하는 의약품을 포함한 필수 물품의 조달에 직면했고 마침내 이 지역의 계곡은 인도주의적 위기를 상징했다.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포위됐고 계곡은 주민들의 감옥 아닌 감옥이 됐다.

당국은 모든 정치 지도자들을 가택 연금과 투옥했다. 1만 명 이상의 카슈미르인들이 구금됐고 경찰서 공간이 부족해 임시수용소에 수감자들이 수용될 정도였다. 잠무 카슈미르수감자들은 인도당국이 시위대를 막지 못할 경우 대량학살을 감행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고 전했다. 미국에 본부를 둔 ‘대량학살 감시단’도 경보를 발령하고 유엔과 그 회원국들에게 집단학살에 대한 경고를 촉구했다.

사실, 370조 및 35A의 폐지는 잠무 카슈미르의 인구 구조를 변경하기 위한 것이다. 잠무 카슈미르 시민사회연합(JKCCS)과 실향민 연합회(APDP)가 최근 발표한 ‘2020 잠무 카슈미르 개편명령’ 등 새로운 법과 정책이 부각되면서 강제적 인구구조 변화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잠무 카슈미르의 거주지 자격기준이 대폭 변경됐다. 카슈미르 사람들의 자기결정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제4회 제네바 협약과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안을 명백히 위반하는 이러한 법을 통해 174만 명의 외부인이 거주권을 획득 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문제는 핵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국제사회를 통한 카슈미르 계곡의 인권침해 중단과 수감자들에게 자기결정권을 부여해야 하지만 국제사회 패권다툼에 묻히는 경향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15일 중국과 인도 군대는 갈완 계곡에서 백병전을 벌여 인도군 20명이 사망했다. 인도는 갈완 북단의 라다크에 군대를 증강했다. 양군 충돌은 45년만이다. 라다크 남쪽에 인도령 카슈미르가 있고 서쪽에 파키스탄령 카슈미르가 위치한다.

데일리스포츠한국2020년 8월 4일자 13면
데일리스포츠한국2020년 8월 4일자 13면

인도 모디 총리는 지난달 3일 히말라야 서부 국경지대의 인도군 기지를 해 “중국의 확장주의의 시대는 갔다. 이것은 세계 평화에 위험을 만들어낸다.”라고 말했다. 인도정부는 지난달 30일 새 교육정책을 발표하면서 정규 교육과정 제2외국어 과목에서 중국어를 제외하고 한국어를 권장과목에 추가했다. 국경 유혈사태로 불거진 인도 국민들의 반중 정서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번 국경 분쟁을 “코로나19로 인한 중국과 인도의 위기 상황을 민족주의로 돌파하려는 시도일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 지역은 지역패권과 관련이 있어서 이른 시일 내 이뤄지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과 인도의 국경 갈등은 곧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 갈등 등 여러 복합적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 국제문제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처럼 아시아를 거점으로 펼쳐지는 미국과 중국 대결, 미중 네트워크로 엮인 해당 국가들의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또 하나’의 지역패권 문제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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