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통합당의 ‘출사표’ 비난과 ‘마이너리티 리포트’

<김주언 칼럼> 통합당의 ‘출사표’ 비난과 ‘마이너리티 리포트’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0.07.0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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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정권 시절인 2008년 YTN의 돌발영상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언론통제의 시발점이었다. 3월5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삼성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로비를 받았다는 정부인사 명단을 오후3시에 공개하기로 했다. 발표 3시간 전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자체조사 결과 거론된 분들이 로비를 받았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라는 기자회견을 했다. YTN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차용해 이를 꼬집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단해 논평하는 웃지못할 촌극에 시청자들은 분노했다. 이명박정권은 당혹했다. 영상은 청와대의 압력으로 홈페이지에서 삭제됐다. 이를 시발로 전방위 언론통제가 시작된 것이다.  
통합당은 이명박정권 시절이 그리운가 보다. 10년이 훌쩍 넘은 시점에서 비슷한 사안이 발생했다. 지난달 25일 통합당은 1일 방영을 시작한 KBS 2TV 드라마 ‘하라는 취업은 안하고 출사표’에 딴죽을 걸고 나섰다. 통합당 미디어국은 “KBS, ‘진보는 선, 보수는 악’ 외치려면 수신료는 민주당에서 받아라”는 논평을 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제소하고 고발까지 검토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뒤가 구린 캐릭터는 보수정당 쪽에 배치하고, 정의로운 캐릭터는 진보정당 쪽에 배치해 ‘진보는 선, 보수는 악’이라는 허황된 구도를 설정했다”는 예단을 근거로 내세웠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새로운 버전인 셈이다.
통합당이 ‘출사표’가 KBS에 편성됐다는 이유만을 들어 KBS를 ‘친여’성향으로 매도하는 것은 근거가 빈약하다. 방송된 내용을 보지도 않고 예단만으로 제소하거나 고발하겠다는 협박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게다가 KBS의 가장 약한 고리인 수신료 문제를 거론한 것은 방송독립을 무너뜨리는 시도로 보인다. 이명박근혜정권은 KBS를 장악하기 위해 많은 기자와 PD들을 일선 제작현장에서 쫓아내고 중징계를 서슴지 않았다. 통합당은 현재의 KBS도 똑같은 상황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제작진은 ‘출사표’가 29살 여성 취준생 구세라의 ‘취업대신 출마를 외친 청년들과 정치만렙 의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명랑 코믹 정치 오피스 드라마’라고 밝혔다. “노머니 저스펙 흙수저인 정치무식자가 구의원이 되어 불량정치인들의 잔치판을 통쾌하게 뒤엎는 바보의 1승”이란 소개도 곁들였다. 통합당이 문제삼은 부분은 애국보수당과 다같이진보당 정치인 캐릭터 소개이다. 통합당은 애국보수당 정치인은 범죄전력을 가진 인물로, 다같이진보당은 정의감을 지녔거나 검소한 인물로 그렸다고 주장한다. “어느 정당을 겨냥한 것인지 초등학생도 알법한 유치한 작명으로 사실상 ‘여당 홍보, 야당 능멸’ 속내를 부끄러움도 없이 드러냈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반박했다. “당적을 가지고 나오는 인물들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대부분 선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지 않다. 정치적 성향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무소속 등장인물 구세라를 전면에 내세워 진보 보수 양측의 비리를 파헤치고 풍자하는 코미디를 추구한다.” 캐릭터 소개는 이렇다. 다같이진보당 소속 여성구청장은 ‘든든한 당이 빽인 욕망의 정치인’ ‘소통이 아닌 쇼통’ ‘구청의 숨겨진 폭군’ ‘피도 눈물도 없이 냉정하다.’ 애국보수당 캐릭터 역시 부정적 묘사가 대부분이다.
북한 선전매체까지 통합당을 조롱하고 나섰다.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다 헐어빠진 미래통합당이란 당사를 고쳐짓는 것도 고민거리인데 TV련속극에 나오는 부정역의 주인공으로까지 되어 만사람의 조롱을 받고 있으니 그 신세 어찌 가련하다 하지 않겠는가.” 이 매체는 통합당의 “보수당 소속 등장인물을 전부 악역으로 설정했다”는 비판에 대해 “미래통합당이 극대본을 누가 썼으며 누가 연출하였는지 책임을 묻겠다고 복닥소동을 피우고 있지만 긁어 부스럼이라고 오히려 저들의 허물을 동네방네 들고 다니는 꼴이 되고 말았다”고 조롱했다.
 통합당의 예술인과 작품에 대한 딴죽걸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박근혜정권 시절에는 소위 ‘좌파성향’ 예술인들을 블랙리스트란 멍에를 씌워 각종 불이익을 주었다. 이제는 방영되지도 않은 드라마까지 문제삼아 고발 운운하며 겁박하는 것을 보면 과거의 ‘아름답던 추억’을 되새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표적 블랙리스트 예술인이었던 봉준호감독이 아카데미상을 거머쥔 뒤 내세웠던 통합당의 ‘봉준호 마케팅’은 그저 구호에 그쳤을 뿐인가. 틈만 나면 내세우는 표현의 자유는 드라마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일까.
통합당의 이율배반은 봉준호 마케팅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대북전단 살포나 일베 폐쇄 국민청원 등에 대한 통합당의 태도는 이를 잘 말해준다.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는 한반도의 평화와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위협했다. 정부와 민주당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을 추진했다. 그러나 통합당은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반대한다. 탈북민 출신 지성호의원 등은 “대북전단 금지법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역대급 대북 굴종행위”라고 주장했다.
황규한 부대변인도 논평에서 “대한민국 헌법 제21조1항,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며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법을 추진하겠다는 선언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박진 외교안보특별위원장도 “정부여당은 우리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대북전단살포 금지법을 추진하는 것도 모자라 북한에게 전단살포를 중단해달라고 애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의 생각이나 주장과 일치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며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2018년 ‘일베를 폐지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명을 넘어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경원 한국당의원은 폐쇄는 표현의 자유를 후퇴시키는 조치라며 반대했다. 청와대가 차별·비하 사이트에 대한 전반적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나서자 나의원은 “방송장악에 이어 인터넷공간도 장악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여권이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봉쇄됐다고 비난하는 보수정권 시절에도 보수와 친하지 않거나 정반대 성향을 가진 특정 사이트를 폐쇄하려는 시도는 없었다”고 일베를 옹호하기도 했다.
누리꾼은 더 나아가 16년 전 노무현대통령을 조롱했던 한나라당 의원들의 연극 ‘환생경제’를 소환했다. 당시 의원연찬회에서 나경원 주호영 심재철 이혜훈 등 한나라당 의원들은 ‘노가리’ ‘박근애’ ‘저승사자’ 등의 배역을 맡아 연기했다. 의원들은 “육실할 놈” “개잡놈” “죽일 놈” “거시기 달고 다닐 자격도 없는 놈” “사내로 태어났으면 불X값을 해야지” 등 욕설을 퍼부었다.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고발되지는 않았다. 통합당의 정치인 비판 드라마에 대한 법적 조치 발상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제작진을 윽박질러 비판수위를 누그러뜨리려는 ‘위축효과’를 노린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방송은 제작자율성이 보장되어 있다. 방송법은 방송편성에 정치권력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이정현 전 의원이 세월호참사 보도 개입으로 방송법 위반 유죄판결을 받은 것도 그렇다. 이제 통합당은 드라마 내용까지 시시콜콜하게 간섭하려 한다. 정치인에 대한 정당한 풍자마저 봉쇄하려는 시도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 방송은 독립과 제작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존재가치를 상실한다. 방송예정인 드라마에 대한 예단과 간섭은 헐뜯기에 불과할 뿐이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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