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높은 곳에서 아름다운 섬 지키는 착한 등대

가장 높은 곳에서 아름다운 섬 지키는 착한 등대

  • 기자명 박상건 기자
  • 입력 2020.06.09 11:18
  • 수정 2020.06.0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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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 시인의 섬과 등대여행] (89)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 선미도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건 기자] 선미도는 인천에서 56㎞ 해상에 떨어져 있는 섬이다. 옹진군 덕적면 북2리에 속한 이 외딴 섬에는 등대원만 거주한다. 섬 모양은 땅콩 혹은 꽈배기 과자를 닮았다. 섬 면적은 0.801㎢에 불과하고 해안선 길이는 7km다.

선미도등대는 해수면으로부터 223m에 설치돼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등대다. 등대는 1934년 석유 백열등으로 첫 불을 밝혔다. 1987년 12월에 모터를 돌려 불을 밝혔고 불빛을 투사하는 등명기는 우리나라 등명기 가운데 가장 크다.

선미도 등대 전경
선미도 등대 전경

19m 높이의 등대에서 발사하는 불빛은 37km 거리까지 비춘다. 등대 불빛은 12초마다 한 번씩 반짝인다. 선미도등대가 절벽 위에 높이 솟아있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당나라 소정방이 산둥반도에서 백제를 치로 들어올 때도 이 앞바다로 들어왔을 정도다. 선미도등대는 인천으로 들어오는 관문을 밝히고 섰다.

선미도등대는 오늘도 인천항과 중국을 오가는 선박, 북한과 해상교역을 위해 왕래하는 선박들이 주로 이용한다. 등대 주변 해역은 말 그대로 동북아 물류 요충지이자 군사요충지 그리고 어업전진기지의 역할을 한다.

등대 앞바다에서는 밤낮으로 파시가 열릴 정도로 어부들 삶의 터전이었다. 지리적 환경으로 풍랑이 심해 많은 어선이 침몰하기도 했다. 선미도 섬 유래에서도 이런 해역의 지리적 환경을 짐작할 수 있다.

선미도는 옛날에 임금의 총애를 받던 착하고 아름다운 궁녀가 왕비 질투로 외딴섬으로 유배된 채 덧없는 세월을 보내다가 벼랑에 떨어져 죽었다. 그래서 궁녀는 한을 품었고 그 영혼이 구천을 맴돌며 섬에 저주를 내려 악독하고 험난하게 만들어 인간을 얼씬도 못하게 했다. 그러자 궁녀의 영혼만이라도 뭍으로 보내 그녀가 그리던 임금님 곁으로 가게 하고자 젊은 총각을 구해 제를 지내고 선을 베풀라는 뜻에서 선미도(善尾島)가 유래됐다는 전설이 있다.

선미도
선미도

또한 산세가 험하고 풍랑이 심한 섬이래서 악험도(堊險島)라고도 불렸다고 전한다. 악험도의 명성을 잇듯(?) 선미도 등대로 가는 길은 보급품을 옮기기 위해 만들어진 모노레일 옆길을 비집고 올라간다. 무인도 산길은 예나 지금이나 험난하다. 이제는 이승을 뜬 선미도 등대원 정순종 씨가 2003년 ‘등대원의 일기’에 기술한 내용을 보면 산세가 얼마나 험했는지 가늠케 한다. 600m 밀림을 헤집고 오고 간 등대생활을 이렇게 들려줬다.

“등대 보급선이 못 오면 전매청 담배 보급선인 작은 청북호가 오갔다. 이마저 파도가 거세면 운항이 중지됐다. 6.25 때 60여일 만에 보급선이 들어와 1인당 2개월분 쌀 40kg 한 포대씩을 선착장에 두고 갔다. 등대원은 교통부 공무원으로 후방요원이었다. 일종의 군인으로 대우해 특별 식량을 배급해준 것이다. 쌀은 한 달이 못가 바닥이 났다. 갯가에서 채취한 미역줄기로 만든 죽을 먹고 나중에는 이도 하루에 한 그릇 뿐이다. 기아상태, 절망상태가 반복되면서 개나리 뿌리를 물에 담갔다가 독기가 다 빠지면 이것을 씹어 먹곤 했다. 이렇게 개나리를 구워 먹기도 하고 미역이나 홍합과 섞여 죽으로 써먹기도 했다”

선미도를 오가는 보급선
선미도를 오가는 보급선

악험도에서 선미도로 고쳐 부르게 된 데는 “아름답고 착한 섬이 되라”는 뜻이다. 지금은 ‘선한 꼬리 섬’ 선미도(善尾島)로 불리고 인천을 감싸 안은 꼬리 섬들은 모두 역사적 명소의 섬이다. 팔미도, 선미도, 월미도...

선미도는 오랜 동안 풍화로 굳어진 퇴적암층이 바다 깊숙이 뿌리박은 섬이다. 등대 보급선이 오가는 선착장 주변은 역암 층이다. 맞은 편 덕적도와 500m 떨어져 있는데 두 섬 사이 해협의 물살은 급격하게 소용돌이친다. 이 해협 건너편에 아름다운 몽돌해변이 있다. 이곳 해변은 선미도 등대를 조망하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주변 섬들을 조망하기에 제격인 선미도등대는 콘크리트 원통형 건축기술을 적용했다. 등탑 하부는 사각형 사무실을 함께 구축했다. 대부분 등대는 사무실을 별도로 만들지만 이곳 등대는 사무실 함께 설계돼 사무실과 등대를 수시로 오르내린다. 일본 강점기 초기의 등대들이 모두 이처럼 통합된 구조다.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선미도등대 1층 입구 좌측에 등롱부분으로 올라가는 계단실이 있다. 우측에 축전지실과 반원형 형태의 평면을 지닌 동력실, 공구 창고가 있다. 계단실과 복도는 화강석으로 꾸몄다. 등대 전면은 원형 기둥 사이를 곡선 유리창으로 설치해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자연 채광이 좋다.

등대 보급품
등대 보급품

등대 2층은 등탑 계단실과 사무실, 체력단련실이다. 2층의 넓은 창은 밝은 빛과 넓은 시야를 확보했다. 등롱 속에 설치된 등명기는 우리나라에 몇 대밖에 없는 프리즘렌즈 3등 대형 등명기다. 1941년 일본에서 제작된 등명기로서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선미도 끝자락은 어느 정원사가 잘 가위질해놓은 것처럼 소나무와 소사나무가 단장돼 있다. 해풍에 강한 소사나무는 아담하게 성장해 관상용으로 그만이다. 선미도 정상 8개 능선에는 혼합 활엽수림이 우거져 있다.

선미도 가장자리와 해안가에 초지대가 있다. 섬에 초지가 있다는 것은 목장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곳에 서식하는 식물은 279종. 참취, 큰까치수영, 방아풀, 제비쑥, 고사리, 큰천남성 군락지가 있다. 양지바른 해안가에 핀 해당화도 참 아름답고 밝게 피어 있었다.

이곳에는 10여 년 전까지 만도 홀아비와 딸이 살았다. 덕적군도 일대 무인도는 물이 귀한데 선미도는 물 사정이 좋다. 억겁의 세월 속에서 모진 파도와 비바람에 맞서며 숭숭 뚫린 퇴적암 틈에서 흘러내린 빗물은 층층이 돌과 나무뿌리를 적시며 풍화 층을 형성했다.

주민들은 자녀 교육문제와 연로한 삶 때문에 떠났지만 염소, 꽃사슴, 토끼들은 방목생활을 하고 있었다. 섬에는 그 때 그 사람들 대신에 가마우지, 까치, 노랑할미새, 흰뺨검둥오리가 평화롭게 날았다. 겨울철이면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천연기념물 제243호로 지정된 참수리 몇 마리가 상공을 비행하곤 한다.

해안가로 내려가면 고둥들이 한 주먹씩 잡힐 정도로 널려있다. 여기저기서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청각, 다시마, 미역줄기들도 춤사위를 펼쳤다. 낚시꾼들은 이런 해조류와 암석층이 많은 해역에서 갯바위낚시를 주로 즐긴다. 돔과 우럭과 노래미가 많이 잡힌다.

선미도 여행 후 연계여행 코스로는 목덕도, 굴업도, 소야도 낚시여행과 생태여행이 좋다. 목덕도는 덕적도에서 배를 타고 2시간 소요된다. 무인등대로 전환됐지만 등대의 역할을 음미해보는 것도 좋고 무인도 체험 코스로도 좋다. 굴업도는 오랜 세월 해풍이 깎아 만든 해안 언덕에 희귀식물과 사슴, 송골매 등 보호동물이 서식한다. 천혜의 낚시 포인트이기도 하다.

등대 맞은 편 해무 낀 몽돌해변
등대 맞은 편 해무 낀 몽돌해변

소야도는 생김새가 새가 나는 모양과 같다해 새곶섬으로 부른다. 갯벌체험과 낚시가 가능하다. 문갑처럼 생긴 문갑도, 흰 상어 이빨을 닮은 백아도, 민어 어장과 갯벌이 넓어 굴이 많이 나는 굴업도 등은 낚시 섬으로도 좋고 갯벌과 가는 모래가 많아 유유자적하기에 좋다. 덕적도는 경관이 빼어난 2개의 해수욕장과 야생화와 함께 선미도를 바라보며 펼쳐진 아름다운 몽돌해변, 수많은 낚시 포인트 섬을 거느리고 있다.

선미도로 가는 길은 인천 연안부두에서 여객선을 타고 덕적도에서 내려 개인 배를 타야 한다. 배편 문의는 인천항여객터미널(1544-1114) 대부항여객터미널(032-886-3090)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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